어린 아이들의 표현들을 살펴 보면 우리는 가끔 성인들의 섹스와 연관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그런 표현을 아이들이 사용한다 하더라도, 대체로 모호하다.
아이들에게도 성적 에너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아이의 성적 에너지, 즉, Libido는 종종 무의식적이며, 그런 충동들에 관심을 아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의식적인 수준으로 노출시켜봤자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우선 아이들의 성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인 내용이 아닌, 아이가 자기 자신이나 타인들에게 명백하게 해로운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즉, 요즘 인식되고 있는 '경계 교육'이다. 나와 타인 사이의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고 나는 매우 소중하며 부모라도 함부로 나의 몸을 허락 없이 만져서는 안되며, 나 역시 타인의 허락 없이 타인의 몸을 만져서는 안되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부모는 성적인 표현들 앞에서 지나치게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아이들을 나무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부드럽게 다뤄 민감한 아이들이 적절하지 못한 감정을 키우게 만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성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아이들을 바라봐서는 안된다. 어른들의 눈에는 어린이들의 많은 행위들이 전혀 성적인 동기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단지 놀고 싶은 충동이나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아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어하는 욕망은 성적 자각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정신의 작동이다. 자신의 기원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며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에게 전하려는 성 지식에는 형식적이거나 특별한 것이 없이 자연스럽고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이가 보인 호기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많은 연구에서는 아이들의 성 교육은 최대한 아주 일찍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현명하고 친절한 '어머니'가 진정한 이 교육을 시킬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만이 그런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아이와의 친밀한 관계에서의 어머니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이의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질문들에 대해서는 똑같이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대단하도록 하자. 그러면 아이의 생각이 어떤 신비나 금기를 엮어내는 일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고 병적으로 왜곡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아이를 대하는 최선의 태도는 규정된 바가 없다. 특히나 성교육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도 여전히 성교육에 대해서 곤란을 겪는 부모들은 너무도 많고, 성교육의 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는 더욱 더 커지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좋은 성교육 책들도, 강사님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그만큼 유해한 미디어도 증가하고 있으니, 부모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하다. 이것이 성적 계몽과 교육이 예전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