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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화 Jun 02. 2024

진료실의 청소년들.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이제 막 고등학교에 올라간 B는 나에게 말했다. 질염으로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지난 번 방문 시 진행했던 질 분비물 검시 상 클라미디아 감염으로 진단된 것이다. 클라미디아는 성병이라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무증상인 경우가 많은데, 운 좋게 진단이 되었고, 골반염으로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바로 치료를 하기로 했다.

B는 혼자 지내는 아이였다. 엄마와 아빠는 B가 보는 앞에서 매번 싸웠으며 그 끝은 이혼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그 일로 B의 엄마는 유방암에 걸리게 되었고 유방암 치료로 호르몬 치료를 하게 된 이후, 성격이 더욱 더 괴팍해졌다.

"너만 없었으면, 너가 내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구나. 네 아빠랑 똑같아."

이런 이야기를 귀가 아프게 들어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엄마는 엄마의 남자친구인랑 따로 살고, 자기는 원래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친구인 C군을 사귀게 되었는데, 이 남자친구란 녀석도 집에서 쫒겨나다시피 나온 가출 청소년이었다.


"클라미디아는 우리 남자친구도 치료해야 해요. 치료 확인 될 때까지 금욕입니다. 섹스 금지! 알았죠?"

크게 아쉬워 하는 한 숨을 내쉬던 남자친구를 향해서 나는 섹스 금지를 선포했다. 콘돔은 안되냐며 발끈하길래, 웃기지도 않는 반항이라는 뜻으로 나는 빙그레 웃으며 'No'라고 말했다.

"클라미디아 치료 제대로 안하면 불임도 될 수 있다고요."

그랬더니 C군이 눈이 똥그래졌다. 불임이라니! 선생님, 그럼 자기는 고자가 되는 거냐며 나에게 되물었다. 아직 불임과 발기 부전의 차이를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오히려 잘 되었단 생각도 들어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건 절대 안된다며 치료 될 때까지 절대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했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을 보면, 한심하게 보이거나 그저 그런 가출 청소년, 문제아로 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B는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았다. C군 역시 제대로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해서 무식하고 엉뚱한 행동들을 하지만 진료 시간 내내 눈을 빛내며 열심히 내게 질문하고 마지막에는 90도로 꾸벅 인사까지 잘 하고 나갔다. 안타까웠다. 부모의 역할이 큰 청소년기에 방치되는 아이들이 강남 바닥 이 가까이에도 있다니.

나를 만나고 B양은 담배도 끊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그들이 하는 걸 같이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도 이제는 담배는 피지 않겠단다. 기특했다. 가끔이라도 너무 힘들고 외로우면 병원으로 와서 이야기하라고 했고, 아이는 내 말을 듣고 배시시 웃으며 기뻐했다. 쉽게 달뜨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 내 손을 잡아주던 선생님들 덕분에 그 시간을 잘 지낼 수 있었기에, 이제는 내 손을 내밀어 줄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눈이 부시도록 밝게 빛나야 하는 어린 청소년들이 자기만의 꽃을 제대로 피울 수 있는데 내가 힘을 보태고 싶었다. 받은 행운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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