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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집 K Jan 31. 2024

엄마는 왜 결혼했어?

그냥 남들 다하니까 했지. 우리 땐 그랬던 것 같아.

햇살이 따스한 가을날이었다. 오랜만에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올라온 엄마는 하룻밤 우리 집에서 자고 우리와 식사를 하고 내려가시겠다고 하셨다.

친구 모임 때문인지 불편한 발에 높은 구두만 신고 오신 엄마와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오래 걷지 않아도 되는 곳이어야 했지만 이렇게 가을볕이 아름다운데 어디 공원이라도 가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동네 최애 카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브런치를 먹고 우리는 동네 공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서 인지 공원에는 가족단위로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은 따뜻한 햇살에 목이 타던 우리 가족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손에 들고 그런 가족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늘 20살 때부터 엄마에게 결혼하지 않겠노라 말해왔고 엄마 역시 그러라고 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내가 짐(?)이라는 둥, 치워버려야 한다(?)는 둥 은근슬쩍 결혼의 뉘앙스를 풍기는 말들을 해왔다.

공원을 뛰어다니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어릴 적 내 동생과 나의 모습을 이야기하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결혼했어? 내 친구들 얘기 들어보니까 이유가 다양하던데.”

“왜?”

“아니 그냥… 요즘 집값도 그렇고 결혼이 그냥 둘이 좋아 죽는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아기 낳으면 온전한 인간, 인격체로 키울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내 몸 아프고 힘든 거 무섭고 그러니까… 그냥 궁금해서”

“글쎄… 엄마 때는 그냥 다들 하니까 결혼하는 거였지 뭐. 그게 마치 인생의 순리인 것처럼. 성인이 되고 주변 사람들도 결혼하고, 결혼 안 한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애 안 낳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남들 하는 대로 살았지 뭐. 우리 땐 그랬던 거 같아. “

“으 나는 못해. 나는 엄마처럼 희생하고 살 자신이 없어.”

“아이고~ 그러려면 더 열심히 돈 벌고 모으며 사셔야 합니다요 아가씨~”


그러면서 우리는 요즘 집값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요즘은 부모님 도움 없이는 결혼도 힘들다 이런 얘기들을 했고 엄마도 거기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엄마 때는 다들 결혼하고 다들 그렇게 사니까 살았는데 요즘은 집이다 뭐다 돈 드는 일들도 많고 생활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보니 결혼을 결심하는 거 자체가 쉽지 않을 거라고.

나는 돈도 돈이지만 아직 나 스스로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이기적인 존재임을 내가 너무 잘 알아서 그래서 결혼 자체가 매우 무섭고 두렵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특히나 엄마처럼 남들 다 하니까 해야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안 들고. 지금껏 남들 하니까, 남들이 대기업 좋다 하니까, 남들이 좋은 대학 가는 게 좋다고 하니까 그렇게만 살아온 내게 결혼은 그 무엇보다 무겁고 신중하게만 다가오는 아젠다였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그 가치관이나 기준도 없고.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솔직히 얘기하자 엄마는 “그래, 그럴 수 있지”하면서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엄마, 내 말에 공감하면서 왜 자꾸 결혼하라 그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쪽쪽 들이키셨다.


“가자! 엄마 기차 늦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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