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엄마 S의 결혼 이유
대학 동기인 S는 얼마 전 아이를 낳았다. 내 친구나 그녀의 남편이나 쌍꺼풀이 있고 눈매가 좀 짙은 편이었는데 아이는 그 둘의 눈을 똑 닮은 커다란 눈망울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제 갓 100일을 넘긴 그녀의 귀여운 아들을 다음 주에 보러 가기로 했는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해 보일 것 같다.
그녀와 나는 한창 취준생 시절인 2014년에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칼 졸업 후 모 기업 공채에 합격해서 회사를 다녔으나, 이해할 수 없는 접대 문화와 회사의 여러 사항들이 맞지 않았고 이로 인해 건강마저 심하게 안 좋아지게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치료 후에 중고신입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계속되는 최종 면접 낙방에 의기소침해졌지만, 늘어난 대학생활을 즐기자며 모 야구단 마케터로 한참 야구에 흥미를 붙이며 취준 생활을 계속했다.
같은 대학이지만 학교 다닐 때는 한 번도 마주 친척 없던 우리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대학 내내 cc로 장기 연애를 했고, 취준 시절에 헤어졌다는 것이다. 서로 멘털이 많이 나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각자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 각각 좋은 회사에 합격해서 회사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내 주변 지인들의 소개팅 스토리 중 약간은 소설적인 요소가 있는 커플이었는데, 둘의 직장이 같은 지역에 있어서 헬스장에서 내 친구를 눈여겨봤던 그녀의 남자친구가 회사 선배이자 내 친구의 친구인 여성분의 결혼식에서 내 친구를 보고 소개팅을 해달라 했다는 그런 이야기.
무튼 그렇게 만남을 시작한 그 커플은 2년 정도 만나고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준비를 하던 그녀에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계기? 딱히 계기 같은 건 없는 거 같은데... 그냥 나나 오빠나 둘 다 결혼할 나이 즈음이고 특히 오빠는 30대 중반이니까 얼른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하기도 하고 그래서 결혼해야겠다 싶었지."
평소에도 이성적인 사고를 많이 하는 S는 그냥 때가 되어서 한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했다. 딱히 이 사람이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도 번듯한 공기업이고, 본인도 30대 초반으로 혼기 찬 나이이고, 양가 부모님도 슬슬 결혼했음 하니 준비한다는 이야기.
"아, 근데 그건 있어. 왠지 오빠가 나 몰래 사고는 안칠 것 같더라. 평소에도 뭐 하나 구매하거나 의사결정할 때 굉장히 꼼꼼히 따져보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 하려고 하고, 이런저런 면들 봤을 때, 성실하기도 하고. 뭐 주식, 도박 이런 걸로 나 몰래 크게 사고는 안 칠 거 같고, 그래서 그냥 적당히 믿고 의지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그녀의 말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되게 깊은 의미(?)가 있는 말로 느껴졌다.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단순히 앞에 말한 주식, 도박, 바람 등의 사건 사고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신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그동안 보여준 행동, 말, 사고방식 등에서 비롯된 신뢰. 그리고 그 신뢰가 가져다주는 안심과 평안함. 지금 생각해 보니 몰래 사고는 안 칠 것 같다는 말은 그저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 줄 것 같다는 믿음을 표현한 말이지 않았을까.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요즘 시대에 내 삶을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으로 이끌어주는 배우자.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서 내 친구 S는 평범하게 아주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