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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집 K Feb 28. 2024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는지

결혼 관련해서 가장 내 마음을 크게 울린 말

같은 직장 동료였던 언니 Y와 함께 퇴근하던 길이었다. 언니는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크게 결혼에 뜻이 없다 했다. 그간의 연애들도 긴 연애보다는 짧은 연애가 많았고 몇 번의 상처를 입은 뒤에는 좀 더 자기중심적이 되어서 상대방에게 못되게 굴기도 했었다고 했다.


그랬던 언니가 결혼을 준비한다.

자기도 모르게 어어 하다 보니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고, 같이 어떻게 살지, 드레스는 뭘로 할지, 상견례는 언제 할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청첩장을 나눠주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 언니의 마음을 바꾸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약간 뭘 해도 화가 안 난달까? 1년 정도 만나면서 싸운 적도 없긴 한데 무슨 짓을 해도 어구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면서 화가 안 나는 거야,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내고 헤어지자 했을 일들까지도. 그러면서 생각해 봤는데 아 이 사람은 내가 이만큼 참아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사람이면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고."


"언니는 그 사람이 마냥 귀엽나 봐요."


"응, 귀엽기도 하고 그냥 뭐든 다 해주고 싶다 해야 하나. 남자친구가 손재주가 되게 좋아서 이런저런 소품들을 잘 만드는데 나중에는 그런 거 할 수 있는 공방을 차려주고 싶더라고. 그렇게 그냥 뭐든 다 해주고 싶었어. 그리고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는데 저 사람은 요리를 잘하고, 나는 그걸 잘 먹고 잘 치우면 되니까 그것도 좋고."


연애할 때 그 사람이 귀여워 보이면 답이 없다더니 언니는 남자친구에게 푹 빠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언니가 말한 그 사람을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는지 라는 말은 결혼과 관련해서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울린 말이었다.

상대방이 남자답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존재여서, 믿을 수 있어서, 혹은 내가 끝까지 보살필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닌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는지가 결혼 결심의 척도가 된다는 게 신선했다.

곱씹어보니 결혼을 한다면 가장 현실적으로 고려해봐야 할 것이 그  참을성, 인애심이었다.


연애의 설렘은 얼마 가지 않고 편안함이 남은 사이에도 갈등은 무수히 생긴다. 다만 그 갈등을 꿍하고 속으로 감추고 표현하지 않는 그런 참을성이 아닌, 진짜 그 사람에 대한 역치로서의 참을성. 물론 상대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언행을 한다면 그런 경우는  참아줘서는 안 되겠지만, 대부분의 연인들은 사소한 걸로 싸우고 그게 커져서 헤어지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내가 저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참고 받아들이느냐는 결혼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참아줄 수 있는 상대방을 만났던 적이 있을까.

그렇게 인애심을 발휘하며 받아줬던 사람이 있었을까.

나를 혹은 상대방을.


아마 내가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고민하게 된다면, 저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아직 그 참을성의 기준을 잡지는 못했지만, 그때쯤에는 그 기준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말해야지.


나는 너를 이만큼 참을 수 있어, 그러니 결혼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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