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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구좋아하는 K과장 Feb 14. 2024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케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갑내기 커플의 결혼 이유

입사 동기 H는 늘 자신은 결혼에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누구를 만나던 어떤 사람을 만나던 늘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장기 연애를 했던 남자친구도, 그와 헤어지고 소개받았던 남자들에 대해서도 그녀는 늘 '결혼'이 가장 키워드였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결혼'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다보니 더블 데이트도 해보고, 서로 연애나 결혼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우리는 '결혼'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많이 달랐다. 나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꼭 결혼을 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큰 편이었고, 그녀는 무조건 결혼을 할 것이고, 몇 살쯤 하고 싶고 이런 구체적인 생각들이 있었다. 다만 그 결혼 상대에 대해서 조건, 사랑, 외모 등 어느 한쪽에만 급격히 치우친 기준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이 부분도 채워지고, 저 부분도 채워지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육각형 인재를 찾고 있는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결혼한 사람은 저런 육각형을 모두 꽉 채운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현재의 남편과의 연애 과정을 모두 옆에서 지켜본 나는 그녀가 진짜 그와 결혼을 하게 될지 궁금했었고, 그녀가 나에게 청첩장을 주던 날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의 어떤 점 때문에 그와 결혼을 하고 싶었냐고.


"나도 실은 고민 많이했지.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도 많이 생각나고, 그 친구랑 이래저래 계속 얽히게 되다 보니까 지금 남자친구랑 남몰래 속으로 비교했던 면도 있어. 그와 다시 만나게 되면 서울 노른자위 땅에 있는 아파트가 이미 그 사람 소유고, 금전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을거고, 서로 대화나 장난 치는 것도 잘맞고..."

"응 그런데?"

"근데 그 사람은 딱 거기까지더라고. 친구. 너무 잘 맞는 친구 같은거야. 뭔가 '남자'로 안느껴지더라고. 근데 지금 남자친구는 나한테 '남자'로 느껴졌어."


응? 남자로 느껴져야 연애하는 거 아니야?


"뭐랄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졌달까. 전에 만났던 친구는 그런 면은 별로 없었어. 나한테 의존하는 면도 있었고, 때론 나에게 윽박지르고, 나를 고치려는 면들이 있었는데 그런게 너무 부담스럽고 괴로웠어. 근데 지금 남자친구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오롯한 존재로 느껴지더라고. 이런데서 남자친구가 되게 남자같이 느껴졌던 것 같아."


옆에서 내가 지켜봐온 그녀의 연애 모습도 그러한 면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된 사람은 큰 키에 그녀를 지켜주는 존재 같은 느낌이었고, 세심한 면도 있고, 이런 저런 면에서 어른스러운 결정도 내릴 줄 알고, 확실히 내 친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근데, 그런 남자로 느껴지는 면도 있는데, 가끔은 되게 아들같다?"


음....? 다들 결혼하면 남편을 큰아들이라고 표현한다더니 결혼도 하기 전에 벌써...?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고. 뭐 잠이 많아서 나와의 약속에 늦는다던지, 내가 집에가서 깨운다던지, 뭐 이럴 때가 있었는데, 그때 되게 아들 같더라고. 그리고 한번은 남자친구가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끙끙 앓던 적이 있었는데, 그날 내가 옆에서 걔를 케어하면서 잘 자는지, 약도 챙겨 먹이고, 전기 장판 온도도 올려주고, 이불도 안차고 자는지 잘 보면서 체크하고 그랬느데, 그날 내가 60살이 되어도 이 사람을 이렇게 케어할 수 있겠다, 케어해 주고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거야. 그래서 그때 알았어.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되겠다, 결혼하고 싶다 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결혼 결심에 대해 들었던 다양한 이야기 중에 제일 신기한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경우, 책임감이 있는 남자의 모습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했거나, 그의 다정한 면에 반해서, 아니면 나를 평생 책임져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내 친구의 이야기는 그와 반대였다. 그가 자신을 케어하고 책임져 주기 보다 본인이 그를 감당하고 케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만히 그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사람은 모두 늙고 기력이 없어지게 되는데, 그 때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을텐데, 그때도 누군가를 케어할 수 있겠다, 케어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구나 라고 그녀의 결심히 이해가 됐다. 생각해 보니 나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은연 중에 이 사람이랑 80먹어서도 농담 따먹기 하면서 지내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 않나. 내 친구 H의 경우에는 그게 사람에 대한 책임감으로 생각을 했던 거고.


뭔가 결혼에 진심이면 물질적인 조건들을 더 중요시 할거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확 깨준 H의 이야기였다.

하긴 평생의 반려자인데, 늙어서 힘없을 때 보기 싫어지고, 서로 외면하는게 아니라, 서로서로 케어하고 보듬으면서 살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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