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일까?
오아시스의 글 연재가 중단된 이후, 글쓰기를 손에 놓고 있었다. 지인에게 브런치를 추천해주면서도, 정작 내가 지원해 볼 생각을 못했었다. 그러다 시간이 날 때마다 SNS의 영상과 글들을 보는 것이 너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난 오아시스의 글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신청하자마자 바로 수락이 되고, 오아시스의 지난 글들을 다듬어 올렸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글을 쓸 수 있겠지.'라는 호기로운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역시나 오아시스에서 마지막으로 썼던 글을 다듬어 올린 뒤로는 글을 쓰지 못했다. 사실 자리에 앉아 글을 차분하게 써내려 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긴 했다. 물론 이것도 핑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휴식시간이나 SNS를 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8월부터 11월 중순까지 바쁘게 보냈다. 학원을 다니면서 면접 스터디 3-4개에 참여했다. 앞만 보고 달렸던 일정이 11월 중순에 끝났고, 최근 그 결과가 발표도 났다. 최종 결과는 불합격, 애매한 예비번호. 결과가 발표 나기 전까지는 발표가 나면 마음 놓고 쉬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무계획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약속이 없는 날은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밥도 먹고 싶을 때 먹고,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보고 싶었던 드라마와 영화들을 다운로드하여 놓았지만, 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보다 말고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재미난 것도 없었다.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한 순간에 사라져서 그런지, 허무함과 공허함 때문인지, 자유로운 시간은 전보다 많아졌는데 어느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발표가 나면 좀 다르지 않을까 했는데, 발표의 결과가 좋지 않아서일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는 것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고, 이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지만, 막상 무언가 집중해서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우왕좌왕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후배를 만났다. 근 일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후배를 만나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요즘은 어때?"
"하고 싶은 게 없어.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다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 그러네. 하루에 12시간 이상 잠만 잘 때도 있어. 내가 너무 게을러진 것 같아. 이렇게 시간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지."
"뭐 어때, 언니. 그 게으름을 그냥 즐겨. 그게 나쁜 건가."
게으름이 나쁘지 않다는 후배의 마지막 말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게을러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게으른 사람은 나태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게으름'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뇌와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일상, 현대사회에서는 치열하게 살아야만 성공할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사회 풍조 속에서 '게으름'은 존재해서는 안되고, 게으름을 극복하여 벗어나야 한다는 글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게으름은 나쁜 것일까? 후배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근 몇 달간 수면시간을 줄이고, 약속도 미루고,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바쁘게 보냈던 날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금 이 상태가 게으른 것처럼 느껴진 건 아닐까. 온전한 쉼보다는 쉬면서도 무언가를 계속 생각해야 했던 날들이 더 익숙해서 말이다.
때론 게으름도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이 게으름 피우는 시간일 수도 있다. 이 게으름을 통해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잠시 무엇인가를 내려놓는 연습을 할 수도 있다. 지친 내 마음과 몸을 어떻게 쉬게 하는지 몰라, 게으르다는 이유로 더 나를 닦달하고 지치게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온전한 쉼, 휴식하는 법을 몰라서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힐링'과 '휴식', '나를 쉬게 하는 법'의 주제의 자기 계발서, 에세이가 많이 등장했다. 그만큼 현대인은 지쳐가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쉬는 법조차 글로, 타인이 행했던 방법으로 배워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내가 게을러진 것 같을 때, 내게 쉼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지쳐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걸 수도 있다. 게으름이 오히려 오아시스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잠시 게을러지면 어떤가. 에너지를 다 소진해서 일상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는 것보단 게으름을 즐기는 것이 더 현명하게 나의 일상을 유지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