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글쓰기 프로젝트의 여섯 번째 글 (2020.09.27)
한동안 할머니의 병간호로 외출하는 일이 없었다. 집에만 있다 보니, 날씨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낮에는 책상 앞의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의 모습으로 날씨가 맑은지 흐린 지를 알아차리고, 밤에는 살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온도로 여름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9층인데, 아주 뜨거운 한여름이 아닌 이상 베란다 앞, 뒤 문을 열어 두면 바람이 관통하면서 집이 시원한 편이었다.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기 시작하면 “여름이 지나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30도가 넘어가는 무더위가 아닌 날들을 제외하고는 선풍기를 오래 사용하지 않다 보니 선풍기의 사용 빈도로는 가을이 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9월의 중순이 훌쩍 지나 10월이 다가오는 시점에서야 나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다.
병간호를 하면서 낮과 밤이 바뀌어 여느 때와 같이 늦게 일어난 토요일 오후, 창 밖으로 본 하늘의 모습을 보니 밖에 나가고 싶어 졌다. 새파란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들과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유독 예뻐 보였다. 하루하루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나에게는 평일이나 주말이나 똑같은데, 이 날은 ‘주말이니 밖에 한 번 나가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늦은 오후였지만,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섰다.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살랑살랑 몸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더운 바람이 아닌 선선한 느낌의 바람, 여름에 부는 바람과는 다른 가을바람을 말이다. 바람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였는지, 집 근처 카페가 아닌 거리가 조금 있는 카페로 행선지를 정했다. 도보로는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지만, 목적지까지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풍경들을 보니 가을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다. 짙어진 나뭇잎들의 색깔과 노랗게 변해가고 있는 감나무, 길 가에 핀 코스모스들을 보니, ‘가을이 왔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고 밤 9시가 넘어서야 건물 밖을 나오다 보니 계절의 변화를 뒤늦게 알아차리곤 했었는데, 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계절의 변화를 늦게 알아차리는 나를 보니, 시간의 흐름에 너무 무덤덤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가을이란 계절은 제 때에 또 자신이 왔음을 자연을 통해 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가을이란 계절에 미안함이 들었다. 사계절 중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어하니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계절은 봄과 가을인데, 좋아하는 계절이란 말이 무색하게 가을이 온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도 자전거를 탔다. 왠지 더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햇볕이 아직은 강했던 낮보다 밤이 더 진한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에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바람,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의 결이 있다. 이조차도 추석 연휴가 지나고 단풍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사라질 테니, 그전에 가을을 즐겨야겠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이상하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은 변하지 않고 매년 똑같이 흘러가고 있을 텐데, 체감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각 계절의 시작도 못 알아차리고, 어느 순간 봄에서 여름이, 여름에서 가을이, 가을에서 겨울이 되었다고, 한 해가 지나갔다고,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가을이 왔음을 이제서라도 알아차렸으니, 가을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올해의 가을을 잘 보내도록 해야겠다. 올해는 ‘언제 가을에서 겨울이 되었지.’라고 말하기보다 ‘이제 가을을 보내줄 때가 되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