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너의영화리뷰_02 할머니는 왜 바다에 다이아를 던졌을까
예전엔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참 드물었는데 요즘은 예전에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어 진다. 확실히 나이가 들었다.
오늘은 넷플릭스 덕에 98년에 개봉한 영화를 다시 한번 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이름은 '타이타닉'이다.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이기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많은 이들이 입덕 한 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는 무려 3시간 14분이라는 긴 시청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다. 개봉했을 당시 고작 열 살이었던 터라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은 4D 재개봉 때였다. 몇 년도 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3D나 4D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타이타닉이라면 실제 물이 튀고 바람이 불면 감정이 더 극대화되지 않을까 하여 표를 샀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나이나 그때의 상황,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똑같은 그림도 슬플 때 기쁠 때 가져다주는 느낌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타이타닉에서 나만의 베스트 컷은 꼬마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할머니가 다이아몬드를 바다에 던지며 짧은 탄식을 뱉는 장면'이다.
어렸을 때는 그냥 그렇게 비싼 다이아몬드를 던져버린 할머니가 왜인지 멋있어 보였고, 한 편으로는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바다에 던졌을까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역시 이 장면에서 뭔가 모를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로즈는 잭을 만나 노예선 같이 느껴진다던 타이타닉에서 꿈 같이 황홀한 자유를 느꼈다. 하지만 로즈에게는 잭의 사진 한 장이 없었고 노름에서 표를 우연히 얻은 잭은 타이타닉 승선자 명단에도 그 이름이 없다. 잭은 오직 로즈의 기억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유일하게 저 바다 깊이 가라앉아 버린 타이타닉을 그리고 그가 실존했다는 것을 외치고 있는 매개체였을 것이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흘러가버린 사랑이 실존했다는 유일한 물증. 그래서 할머니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팔 수 있는 보석이 아니었다.
그 아름답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는,
잭이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기억의 한 조각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그렇게 소중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왜 바다에 던져버렸을까?
로즈가 손녀와 함께 여러 사람에게 잭과의 사랑에 대해 그리고 타이타닉에서의 생활과 그 시간에 대해 들려줌으로써 이제 잭은 로즈의 기억에만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로즈 도슨은 잭을 마음껏 추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목걸이보다 잭과의 추억을 더 잘 말해주는 그림을 찾았다. 물론 영화에서는 탐사선의 사람들이 그 그림을 로즈에게 전달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랬을 것이라 믿는다. 떠돌이 무명작가의 그림 한 장이 값을 매길 수 없는 목걸이 보다 더 소중했을 그녀에게 이제 목걸이는 필요치 않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바다에 툭 하고 던진 것이다. 마치 잭에게 전하듯.
그리고 목걸이와 더불어 잭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기에 오히려 "Oh"라는 짧은 감탄사만을 남겼을 것이리라. 아마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놓치고 싶지 않았던 당신의 손을 놓으면서 나는 당신과 한 약속을 지켰어요. 살아남았고 결혼해 아이들을 여럿 낳아 행복하게 살았어요. 당신이 가르쳐 준다던 남자처럼 말을 타는 법도 배웠어요. 잭, 당신은 나에게 자유를 줬어요. 나 역시 타이타닉 호를 탄 것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요. 그동안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이 목걸이를 만졌어요. 이제 당신에게 보냅니다. 나도 곧 당신 곁으로 갈게요.'
로즈 드윗 부카더가 아닌 로즈 도슨은 꼭 이렇게 말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