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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Sep 03. 2020

무니에게 디즈니랜드란

#구너의영화리뷰 06.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포 주의

 만약 당신이 보라색을 좋아하고 마냥 동화 같거나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 내는 감성 영화가 싫다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추천하고 싶다. 단 휴지는 준비하길.

이 영화를 보는 나의 표정은 찌푸림에서 놀라움으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리고 눈물로 변해갔다. 아이들이 침을 뱉고, 아이들 앞에서 거친 욕설을 해대는 어른들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질지 모르지만 무니의 천진난만하고 짓궂은 표정을 믿고 조금 더 영화에 빠져보길 바란다.


 영화의 장면은 전반적으로 아름다웠고, 스토리와 연출은 놀라웠다. 꼬마 무니의 사랑스러움에도 빠졌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겨준 장면들은 핼리가 무니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녀는 아이 앞에서 거친 표현을 스스럼없이 내뱉고 거리에 나앉기 직전에 결국 나쁜 선택을 했다. 그것에 대한 책임으로 무니와 헤어지겠지만, 우리는 그녀를 정말 '나쁜 엄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아동국 사무소 직원들은 무니를 '좋은 가정'에 잠시 위탁하려 한다. 하지만 무니는 이미 좋은 가정에 살고 있었다.

핼리를 좋은 엄마라고 말하기 버거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또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사회적인 기준에 맡는 그럴듯한 어른으로 자라는 것을 기대하기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니가 친구 낸시에게 '가장 좋아하는 나무'에 대해 말한 것처럼 나무는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란다. 멋지게.

무니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에서 낸시와 함께 빵에 잼을 발라먹고 있다


 그리고 무니를 계속 자라게 했던 것은 엄마 핼리였다. 무니만큼이나 보살핌 혹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을 그녀는 다소 거칠지만 아이를 때리거나 억압하지 않았다. 공부나 꿈을 강요하지도 버릇 나쁘게 감싸지만도 않았다. 거창한 지식을 가르쳐 주진 못했지만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결국 절교한) 친구 애슐리에게 무니가 메이플 시럽을 더 달라고 해도 주지 말라고 말하며 아이의 건강을 생각했고, 잘해보고 싶은 남자가 있어도 아이를 싫어하는 성향이라면 가차 없이 차 버렸다. 향수를 못 팔게 되어 화가 났을 때 빠른 속도로 걷는 걸 무니가 힘들어하자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업어주었다. 무니의 절친 낸시의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했다. 우울할 때 대책 없이 비를 맞으며 마리화나를 피우지만 무니가 걱정하자 빗속에서 신나게 놀아주었다. 무니와 헤어질 거라는 것을 예감하자 무니가 좋아하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좋은 리조트에서 투숙객인 척 조식을 먹여준다. 본인은 한 입도 대지 않은 채.

 핼리는 정말 '나쁜 엄마'일까? 

빗속에서 장난치는 핼리와 무니

 무니를 자라게 한 것은 친구와의 우정이기도 호텔 관리인 보비 아저씨 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항상 멀리서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다치지 않게 지켜주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혼내기도 하는 보비 아저씨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보비 아저씨와 낸시 할머니를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문구가 담긴 장면

 영화는 무니가 (바로 옆에 살고 있지만) 한 번 도 갈 수 없었던 디즈니랜드로 달려가며 끝난다. 사실 무니는 디즈니랜드를 갈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물을 보기 위해, 맛있는 걸 먹기 위해 디즈니랜드에 가지만 이미 무니는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낸시와 들판에서 소를 보며, 가장 좋아하는 나무 위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잼을 먹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쓰레기라 부르는 매직캐슬이 무니에게는 디즈니랜드였을지도



 : 플로리다 프로젝트 줄거리 : 

보라색으로 예쁘게 칠해진 싸구려 모텔 '매직캐슬'에 사는 무니는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가장 즐거운 꼬마 소녀다. 무니는 아래층에 살고 있는 애슐리의 아들 스쿠티와 함께 짓궂은 장난을 즐기곤 한다. 평소처럼 '퓨처 랜드'에 새로 이사 온 집 차에 침을 뱉는 (충격적인) 장난을 치는 것을 계기로 무니는 낸시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매직캐슬에 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무니의 엄마 핼리는 집이 없는 장기투숙객이며, 애슐리에게 와플을 시민단체에서 빵을 얻어먹는 신세이지만 딸을 아끼는 마음은 어느 부모 못지않다. 그녀는 자신이 잘하는 '춤'으로 돈을 벌어보려 하지만 여러 악조건에 의해 직업을 가질 수 없다. 그런 상황에 무니는 스쿠티, 낸시와 함께 불장난을 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낡은 건물을 태워버린다. 이 사건 때문에 아동국에서 나와 아들과 떨어져 살게 될까 불안한 애슐리는 더 이상 핼리와 무니를 가까이하지 않고, 핼리와 애슐리는 이웃보다 못한 친구사이가 된다. 불법으로 향수를 판매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그녀가 더 이상 향수를 팔 수 없게 된 후, 그녀는 혼자 멍하니 앉아 담배를 피운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스쳐 지나간 장면이었으나 성매매를 선택하게 되는 스토리를 알고 난 뒤 두 번째 봤을 때는 그녀의 절망이 참 담담하게 표현되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었다.) 성매매를 눈치챈 보비가 화를 내며 말려보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핼리는 보비와 말타툼을 할 뿐이다. 밤에 남자가 왔을 때 핼리는 무니에게 혼자 목욕하는 시간을 준다. 하지만 한 남자가 우연히 화장실에 들어가 무니를 발견하게 된다. 이 일이 있은 뒤 핼리는 그 일을 끝내보려는 듯 애슐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만 이미 성매매에 발을 들인 것을 알고 있는 애슐리는 도움이 아닌 모욕을 준다. 핼리와 애슐리의 싸움은 커지고 누군가의 신고로 아동국에서 매직캐슬을 방문, 핼리는 더 이상 무니를 키울 수 없게 된다. 무니는 처음으로 아이답게 펑펑 울며 자신의 절친 낸시에게 무서움을 토로한다. 낸시가 무니의 손을 잡고 한 번 도 갈 수 없었던 디즈니랜드를 향해 달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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