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너 Aug 29. 2020

그레이스에게 천국의 나무 누비이불이란

#구너의영화리뷰 05. 넷플릭스 오리지널 '알리아스 그레이스' 감상 리뷰

*스포 주의

 공포영화는 못 보지만 스릴러(둘은 엄연히 다르다. 나에게 공포영화는 여고괴담이고 스릴러는 나를 찾아줘 같은 부류이다.)는 좋아하는 나는 넷플릭스를 휙휙 돌려보다 못 보던 스릴러 시리즈가 있길래 손을 대고 말았고, 6편이 모두 끝난 뒤에 TV를 끌 수 있었다.

스릴러답게 지속적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레이스가 과연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매력적인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다 본 뒤에는 그녀가 유죄인지 무죄인 지보다 더 중요한 물음들을 생겨났다. 첫 편과 마지막 편에서 인상 깊었던 누비이불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볼까 한다.


 첫 편에서 이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레이스의 '누비이불에 대한 공상'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침대는 단잠을 연상시키는 평화로운 곳이지만 그때의 여자들에겐 정말 다양한 의미가 있었다.

'누구는 사랑이라고 누구는 모욕이라고 부르는 일이 일어나는 곳인 침대는 생명이 태어나는 곳이고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엄마들이 죽는 곳이기도 해 여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곳이고 그래서 이불에 그렇게 수를 놓아가며 만든다'는 그레이스의 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난 지금까지 침대와 이불이 죽음을 상징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첫 편의 누비이불은 충격이었고, 마지막 편에서는 그레이스가 천국의 나무를 수놓은 누비이불이 나오는데 이는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모두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이불을 만드는 것보다 아가씨들의 이불을 만드느라 늘 부지런했던 그녀는 30년의 수감 생활이 끝난 뒤, 자신이 덮을 자신의 이불을 처음 만들게 된다. 그녀가 자신을 위한 이불을 만드는 장면에서 독백이 이어지는데 처음의 거울 독백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저를 위해 이불을 만드는 건 처음이에요. 무늬는 '천국의 나무'로 할 거예요. 그런데 무늬를 약간 바꾸고 있어요. 천국의 나무 가장자리에 뱀을 넣을 거예요. 뱀을 한두 마리 넣지 않으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빠드리는 셈이죠.

나무는 삼각형 조각들로 이뤄져 있고 색은 두 가지예요. 잎은 어두운 색으로 열매는 밝은 색으로 할 거예요. 나무를 이루는 조각 중에 세 개는 좀 다를 거예요. 하나는 빨강으로, 메리 휘트니의 페티코트를 자른 것이고, 하나는 누르스름한 색으로 제 교도소 잠옷을 자른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는 연분홍색 무명천으로 낸시가 입던 드레스를 자른 거예요. 각 조각을 빙 둘러가며 수를 놓을 거예요. 무늬의 일부분인 것처럼 보이게 말이죠.

그럼 우리는 모두 함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독백을 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천국의 나무 누비이불은 그녀가 평생 겪은 외로움은 아닐까.

그리움의 빨강 조각, 죄책감의 노랑 조각, 욕망의 분홍 조각이 천국의 나무 일부인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여러 감정의 조각들이 그 시절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자신과 메리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버린 순수하고 잔인한 외로움이지 않을까.


 그레이스는 그레이스 막스였지만 사람들은 멍청하거나 영악하거나 예쁘거나 미천하거나 그럼에도 교양이 있어 보이거나 혹은 삐딱하다고 말했고, 그렇게 불릴 때 그녀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표정을 바꾸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모습을 한 여자는 '미쳤다'라고 결론 낸다는 걸 몸소 겪어왔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녀가 이중인격장애와 몽유병을 앓은 것인지 정신이 멀쩡한 채로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다만 어쩌면 소름 끼치는 연기였을지도 모를 그녀의 이중인격장애나 몽유병엔 참 많은 사람들이 가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1800년대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했고 남의 집 하녀로 일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빠져들만한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다거나 어머니가 병으로 빨리 돌아가셨다거나 쓰레기 같은 귀족 남자의 추행에 의해 죽게 된 친구가 있었다는 건 특별한 점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레이스 줄거리:

 그레이스 막스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고 어려운 가정생활을 보낸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 즈음 토론토 부잣집 파킨슨 댁의 시녀로 들어가 이불빨래, 바느질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있다면 '파킨슨 댁'에서 '메리 휘트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일 것이다. 메리는 그녀와 친자매처럼 지내며 세상과 남자들에게 대해 가르쳐 주지만, 주인집 아들 조지 파킨슨과 결혼을 약속받고 밀회를 즐기다 임신을 하게 된다. 조지에게 호소해보지만 내 자식이 맞냐는 말만이 돌아온다. 직장을 잃고 사창가로 내몰릴까 두려웠던 메리는 불법 낙태수술을 받고 목숨을 잃는다. 언니이자 엄마이자 친구였던 메리의 죽음은 그레이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훗날 자신을 메리와 동일시하게 되는 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메리를 죽음에 빠트린 장본인이 그레이스에게도 추근 덕대자 그레이스는 그를 피할 겸 시골의 독신 '토머스 키니어' 댁의 하녀로 들어간다. 그 집에는 '낸시'라는 그의 정부가 안주인 노릇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낸시를 못견뎌하는 맥더못이라는 남자 하인과 함께 기억에서 지워진 살인을 저지른 그레이스는 교도소에 수감된다. 당시 어린 나이에다 여자의 신분으로 감히 살인죄를 쓴 그레이스는 너무나 유명해지고 몇몇의 유명인사들의 '그녀가 누명을 썼을 것'이라는 판단과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그레이스를 석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조던 박사'와 상담을 하게 되고, 그레이스는 늘 상담시간에 바느질을 흐트러짐 없이 해내는 반면 조던 박사는 알 수 없는 그녀의 매력에 빠져 상담시간 내 그녀와의 거리는 점차 좁혀진다. (첫 상담에서 조던 박사와 그녀의 거리는 멀고 사이엔 테이블이 놓여있었지만 점차 그녀와 그 사이의 장애물이 사라지고 거리는 가까워져 마지막 상담에는 나란히 앉게 된다.) 무죄를 밝히기 위해 시작된 상담이었지만 점차 그녀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박사는 결국 그녀의 석방을 위한 보고서를 쓰지 못하고 떠난다. 그녀는 십여 년 더 수감생활을 한 뒤 제이미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과거 제이미의 증언이 그레이스를 유죄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지만 그레이스는 그의 용서와 청혼을 받아들인다. 메리가 꿈꾸던 전원생활을 대신하며 그레이스는 자신을 위한 누비이불을 만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게 IT기술의 미래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