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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Sep 28. 2020

조 마치에게 결혼이란

#구너의영화리뷰7. 이상하다 생각했던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 작은아씨들 (2019) 리뷰. 본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감상 후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벌써 10년 전이 되어버린 대학교 시절, 영상실이라는 곳이 있어 다음 강의까지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시간이 비면 그곳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행복한 시간을 갖곤 했다. 그때 1994년 개봉한 작은아씨들을 봤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은 내게 썩 유쾌한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며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세 가지가 있었기 때문인데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 이 영화를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는 의문마저 들었다.

 하나는 조가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로리가 조의 막내 동생 에이미와 결혼을 하는 것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프리드리히와 결혼할 것 같은 조의 갑작스러운 사랑이었다.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 보다는 세 번째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작은아씨들'을 여전히 좋아했고,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2019년 또 한 번 작은아씨들이 영화가 되었다.

 이미 결말도 알고 있고 그 결말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엠마왓슨'과 영화 레이디버드에서 인상 깊었던 '시얼샤 로넌'이 나온다기에 아무도 청하지 않았으나 나는 나의 135분을 허락했다.


 2019년의 스크린에서도 여전히 조는 무도회를 따분하게 여겼고, 역시 무도회가 따분했던 로리를 만나 둘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둘만의 춤을 춘다. 그렇게 그들의 우정은 쌓여갔다.

누구보다 마음이 잘 맞았던 그들의 우정이 사랑이 되는 것은 누가 봐도 자연스럽고 멋진 결말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조는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다.

 난 결혼을 했고, 조는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내가 달라진 것인지 영화의 대사와 연출이 달라진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나는 그녀의 이상한 선택을 이해한다. 조는 로리가 싫었다기보다 결혼 자체가 두려웠던 거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고, 부자인 로리와의 결혼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교계의 생활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작가의 삶을 살기 위해 사랑을 포기할 정도로 2020년에 살고 있는 나 보다 더 신여성(?)에 가까웠다. 결혼 외엔 여자가 경제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었던 19세기의 조 보다 내가 더 결혼을 당연히 여겼던 것이다.


 조는 언니 메그의 결혼식날, 거절 하기엔 너무 달콤한 청혼을 들으며 이렇게 말한다.



- 테디, 우리 결혼하면 비극일 거야.

-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네가 아닌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

- 테디 들어봐. 넌 사랑스럽고 교양 있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받으면서 살아갈 거야. 그 여자는 좋은 집에서 좋은 아내가 돼 주겠지만 난 못 해.

- 할 수 있어.

- 날 봐! 난 촌스럽고 어설프고 별나

- 사랑해 조.

- 날 창피해할 거야.

- 사랑해 조.

- 그리고 싸우겠지. 지금도 싸우잖아. 난 사교계가 싫어지고, 넌 내 글이 싫어져서 둘 다 불행할 거야. 그럼 결혼을 후회하고 인생이 끔찍해질 거야.

테디... 있잖아 난 내가 결혼할 거 같지 않아. 난 이대로의 내가 좋아. 서둘러 포기하기엔 이 자유가 너무 좋아.

- 네 착각이야. 너도 결혼할 거야.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살고 죽겠지. 넌 그런 사람이니까.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조는 아마 테디(그녀는 로리를 테디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다.)도 결국 그 시대의 여성상을 강요할 것이라는 걸, 로리는 그녀가 매우 정열적이고 원하는 것을 위해선 뭐든 할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둘이 만약 조금 더 늦게, 조가 작가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있을 때 결혼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 영화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조의 거절은 이해했지만 영화에서 로리와 에이미의 감정선을 보여주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리가 조의 막내 동생 에이미와 결혼한 것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오만과 편견에서도 나오듯 아무리 18세기~19세기에는 자매들 중 첫째에게 거절당하면 둘째나 셋째에게 다시 청혼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조가 의미 없이 놀이처럼 건네 준 반지를 그 오랜 시간 끼고 있었던 로리는 그래선 안되었다. 물론 시대상을 억지로 고려해 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의 조에 대한 사랑이 너무 진심 이었고, 다른 사람도 아닌 조의 동생과 결혼하다니!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조의 거절을 이해하고, 로리의 결혼을 존중했지만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건 갑작스러운(적어도 나에겐 갑작스러운 키스였다.) 조와 프리드리히와의 키스였는데 그 부분은 2019년 개봉한 작은아씨들이 깔끔하게 이해시켜주었다.


 1994년 개봉한 작은아씨들과 달리 2019년의 작은 아씨들의 결말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조가 자신의 소설을 세상에 성공적으로 선보이는 루이자 메이 올컷이 진정으로 바랐을 결말이고, 나머지는 시대가 원했기에 루이자 메이 올컷이 타협했을 원작의 결말이다.

 작은아씨들이 자전적 소설이기에, 영화는 조 마치가 실랑이 끝에 결국 출판사의 요구대로 '결혼 엔딩'을 넣는 것을 조건으로 저작권을 지키는 장면을 보여준다.


 어쩐지 조의 성격이라면, 테디를 거절했다면, 그리고 후회했다면, 그리고 그 후회를 숨겼다면, 절대 프리드리히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 텐데! 어쩐지!


 처음 작은아씨들을 본 지 10년이 흘러서야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세 가지 포인트를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게 조 마치에게 어떤 것인지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조 마치에게 결혼은 그녀의 사랑을 이별로 만드는 슬픈 강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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