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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Dec 22. 2020

바이올렛에게 긴 생머리란

#구너의영화리뷰8. NETFLIX 영화 리뷰 - 어느 날 인생이 엉켰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의 삶의 모습이 참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가계 부채 증가, 집콕 챌린지 등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화장하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라는 점이다. 올해 봄, 매일 써야 했던 마스크에 화장품이 묻는 게 싫어 나는 화장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그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관련 글 클릭 - 최근 더 심각해진 국내 상황으로 재택근무를 하니 더더욱 화장은 나에게 머나먼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

 영화 '어느 날 인생이 엉켰다'의 바이올렛 역시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계기로 충동적 삭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 모습이 나와 닮아 조금 더 그녀를 들여다보고 리뷰를 해볼까 한다.


 바이올렛은 고학력의 능력 있는 회사원이면서도 전통적인 여성상에 별 다른 의심 없이 갇혀있는 요즈음의 보통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 남자에게 선택되길 바랐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지기 위해 끊임없이 '완벽함'을 추구해왔다. 특히 바이올렛은 흑인 여자들의 상징과도 같은 곱슬머리가 서구 사회에서 '못난 기준'에 속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긴 생머리에 집착한다. 매일 비가 오는지 습도가 어떤지까지 체크하고, 잘 때도 섹스할 때도 머리가 망가질까 노심초사하는 캐릭터이다.

 이렇게 열심히 머리와 외모를 가꾼 대가(?)로 그녀는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고, 2년 사귄 의사 남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받을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그녀와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고 그녀는 남자 친구와 싸우면서 "2년을 만나도 불편하다."라는 소리에 상처를 받는다.


 며칠 뒤 그녀는 화해를 하기 위해 병원에 찾아가지만, 전 남자 친구가 긴 생머리의 또 다른 여자와 노닥거리는 모습을 보게 되고,  슬픔과 분노에 차 삭발을 한다. (우리의 '아저씨' 와는 다른 조금 다른 삭발신이었지만 삭발로 인해 지금과는 다른 선택들을 하게 되는 점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홧김에 한 삭발이었지만 다시 자신 본연의 곱슬머리를 되찾게 된 바이올렛은 그동안 엄마와 사회의 강요에 의해 따랐던 모습이 아닌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간다.


 점차 자신의 모습을 찾은 그녀는 예전엔 당연히 따라야 한다 생각했던 미의 기준이 점차 불편해졌고, 기존의 틀을 강요하는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우연한 계기로 전 남자 친구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지만 결국 바이올렛은 (머리를 피고 약혼식에 참석해줄 것을 바라는) 남자 친구와의 약혼식에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뒤 곱슬머리가 되기로 결정하고 수영장에 뛰어든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미의 기준' 혹은 '사회적 잣대'는 우리가 의식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오늘도 여러 미디어를 통해 스며들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수백 년 지속되어온 이 '조용한 강요'는 세상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유명인 '테일러 스위프트'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녀마저 44 사이즈가 되기 위해 섭식장애,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것처럼 심하진 않지만 우리도 무심코 화장기 없는 민낯을 부끄러워하고, 남들이 볼 때엔 배에 힘을 주고 걷고 있지 않은가?

 물론 미의 기준이 하루아침에 '뚱뚱한 사람이 제일 멋지다'거나 '코가 낮을수록 예쁘다'로 바뀌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지 않은 내 모습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바이올렛의 말처럼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고, 그 선택은 자유를 줄 것이다.


붙임머리를 하고 싶다면 하면 돼요.

머리를 펴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되고요.

선택의 문제인 거죠. 거기엔 잘못된 게 없어요.

하지만 본인 머리도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해요.

- 영화 어느 날 인생이 엉켰다 中 바이올렛 대사



어쩌면 바이올렛에게 긴 생머리란
모두에게 하나쯤 있는 키높이 깔창, 보톡스, 압박스타킹은 아니었을까


바이올렛의 머리는 엉켜버린 곱슬이 되었지만 엉킨 건 머리카락일 뿐 앞으로 그녀의 인생은 곱슬머리로 인해 당당하게 피어나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 장면에 그녀의 당당한 걸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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