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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Dec 24. 2020

케이트에게 조이란

#구너의영화리뷰9. 사랑의 레시피

 얼마 전 MBTI 성격유형검사가 유행했다. 신기하게 대학생 때(ENFP)와 달라진 최근 나의 유형은 'ENTJ' 혹은 'ENFJ'로 나왔고 이는 대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이다. 영화 '사랑의 레시피' 속 주인공인 '케이트' 역시 자신이 세운 계획과 규칙에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그리고 케이트의 인생이 과연 계획한 대로만 흘러갈까?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난임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즈음(관련 글 클릭) 예측 불가한 상황들에 자꾸 맞닿드리는 케이트를 보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 또한 네 인생이니 부디 즐길 수 있길"


 철저한 계획성에 훌륭한 미각이라는 재능이 더해진 케이트는 능력 있는 주방장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자와는 데이트하지 않기'라는 사랑의 규칙까지 만들어둔 케이트에게 계획에 없던 일이 발생한다. 그건 바로 언니의 죽음. 그로 인해 케이트는 갑작스레 언니의 딸인 '조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조이와 함께 하면서 이상하게 케이트의 인생에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케이트가 일을 쉴 동안 레스토랑에서는 새로운 셰프를 뽑게 되고, 이 역시 케이트에겐 원치 않는 뜻밖의 일이었다. 새로운 부주방장인 '닉'은 케이트와는 달리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이런 부분들이 케이트가 일하는 방식과 맞지 않아 그녀는 일과 일상에서 모두 혼돈을 겪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요리)을 위해 조이를 돌볼 수 있는 보모를 부르지만 마음에 맞는 보모를 찾기란 현실이든 영화든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조이를 주방에 데리고 가게 되는데,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어도 먹지 않았던 조이가 닉과 함께 바질을 가지고 장난친 후 닉이 만들어준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다. 이 모습을 본 케이트는 닉에게 고마움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렇게 케이트, 조이, 닉은 점차 가까워진다.


 케이트가 조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지면서 절대 쓰지 않던 휴가를 쓰며 언니를 함께 추억한다. 며칠 휴가를 쓰는 동안 닉은 케이트 없이도 훌륭히 레스토랑 주문들을 소화하고, 불평하는 손님들에게 까칠한 케이트와 달리 유연한 성격의 닉을 레스토랑 사장은 눈여겨본다. 점차 사장이 케이트 대신 닉에게 주방장의 역할을 주는 것을 보고 닉을 오해한 케이트는 결국 닉과 말다툼을 하는데, 이때 닉이 한 말이 인상 깊었다.


- 어떻게 된 거야? 이틀 동안 쉬고 왔더니 온통 닉 타령이잖아.

- 당신 자리를 제안받았어.

-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어. 당신은 못 믿을 사람이라는 걸.

   당신은 몰라. 난 여기 내 인생 전부를 걸었어.

- 아니 그렇지 않아 이건 당신의 일부일 뿐이야.


 그녀에게 주방장의 자리란 아마 자신이 계획한 로드맵을 따라가 마침내 얻어낸 결과물이 었을 것이다. 비단 케이트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생을 살고 있고 그런 인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지 않았을까?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12년을 공부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취업하기 위해 4,5년을 스펙 쌓기에 열중한다.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하나도 취업을 위한 계획에 속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약 20년 혹은 30년이 지나면 그건 내 인생 전부가 되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닉의 말처럼 회사는 우리 자신의 일부일 뿐이다. 사실 무엇이든 (비중이야 다르겠지만) 우리 인생의 일부일 뿐이다. 많은 조각들이 합쳐져 나를 만드니까. 닉처럼 생각하면 인생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부가 뒤틀리거나 일부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도 내 전부를 잃거나 나 자신을 포기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더 이상 닉이 놀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 조이는 학교를 결석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때문에 케이트는 다시 닉에게 연락을 하고 둘은 조이 엄마 무덤에서 조이를 찾는다. 이 사건으로 케이트는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려는 닉을 붙잡는다. 케이트 역시 레스토랑을 때려치우며 케이트, 닉, 조이가 셋 만의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조이 때문에 케이트는 그녀의 인생에 예측 불가한 상황들이 생겼고 그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결국 그런 상황들 덕분에 계획이 엇나가더라도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케이트에게 조이란
인생의 레시피를 찾게 해 준 정답 없는 요리책이었을지도


케이트처럼 우리의 인생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계획대로 되는 일을 손에 꼽는 것이 쉬울 정도다.

하지만 하나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행동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케이트는 자신의 심리상담사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 삶에 관한 요리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뭘 어떻게 할지 알 수 있게요.

  알아요.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다 알면 무슨 재미야?”이거죠?

- 오 사실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야. 맞춰볼래?

- 몰라요. 말씀하세요.

- 이 말을 하고 싶었어. 그건 니 자신이 가장 잘 알아. 가장 좋은 요리법은 스스로 만드는 거니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박막례 할머니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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