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잘 통하면 잘 통하는 대로 고충이 있다
ep.4
남편과 나는 꽤 많은 것이 잘 통한다.
사소하게 김치찌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것부터 시작해서 물건을 고를 때나 어떤 주제에 대해서 말을 할 때 맞지 않는 부분보다는 맞는 부분이 많다.
어떤 얘기를 꺼내면 '나도 그 말하려고 했는데!'라고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사건건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면 애초에 결혼까지 갈 수 없었을 테고, 결혼 후 생활 습관이 비슷해지다 보니 혹은 서로를 배려하다 보니 닮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싸우면서 맞지 않는 부분이 갈리고 갈려 맞춰졌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됐건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통한다. 잘 통하다 보니 상대방의 기분, 무드를 잘 알아채는데, 문제는 기쁨과 행복한 긍정적인 감정들 못지않게 슬픔이나 우울한 감정도 서로에게 전이가 되는 거 같다.
내가 조금 기분이 나쁘거나 오빠가 조금이라도 우울하면 당사자는 티를 안 내려 열심히 노력한다만 그 감정이 상대방에게도 너무 잘 전달되는 거다.
그리고 서로 싸워서 화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 때문에 생긴 우울함은 서로가 해결해 주기 힘든 부분이라 급속도로 분위기가 다운되곤 하는데 얼마 전이 그런 날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차 문제로 우울해진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화가 난 것은 조금도 없었지만 각자의 세계로 들어가 좀체 우울함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이상하다.
분명 누군가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말했으나 우리는 슬픔까지 잘 통해서 우울함이 배가 된 기분이다.
[혼자만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으로 번지고, 문제가 본질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눈치와 기분까지 살펴야 하는 감정노동으로 확대된다.
모든 걸 가진 사람은 없고,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고,
100%라는 숫자는 허구에 가깝고,
완벽함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존재하기 힘드니까,
안 통하면 안 통하는 대로 미칠 노릇이겠지만 잘 통하면 잘 통하는 대로 고충이 있나 보다.
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억지로 마음을 달래 본다.
그래도 이런 날이 흘러가면 잘 통해서 행복한 날이 가득 채워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