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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Jan 03. 2022

한 달 동안 반짝이던 트리를 정리하며

03 부끄러운 마음이 당신의 즐거움으로 번졌기를

 ep3.


이사를 하면서 남편과 나는 인테리어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엄청나게 거창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체리가 먹고 싶어도 미역국에 넣을 호주산 소고기보다 비싼 가격에, 자취 시절 이후 내 돈 내산 체리는 한두 번 먹었을까? 이런 쫌생이들 수준에서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런 우리가 인테리어 용으로 180cm짜리 트리를 샀다. 이 또한 여러 곳에서 가격비교를 해보고 인터넷을 뒤져 나름 합리적인 가격대의 상품을 골랐지만, 어쨌든 체리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우리 집은 주차가 불편하다는 매우 큰 허점을 지니고 있는 대신 채광과 통풍은 아주 짱짱하다. 통풍에 큰 역할을 하는 베란다는 옥상까지 합하면 총 다섯 개나 되는데, 그중 한 베란다(베란다인지 테라스인지 아직도 헷갈린다.)에 우리보다 큰 트리를 전시했다. 설치가 아닌 전시라고 한 이유는 밖에서도 우리 트리가 예쁜 모습을 뽐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어서다.

 중국산 오너먼트의 반짝이 가루 날림이 실내에 둘 수 없을 지경이었고, 우리의 거실은 180센티의 트리를 놓기엔 좁은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이런 이유로 둘러대기엔 마음 한편이 속 시원하지가 않다. 집이란 걸 처음 사봤으니 '이봐요 세상 사람들~ 트리가 반짝이는 우리 집이 이렇게 예뻐요. 키 큰 트리를 여기다 둘 수도 있답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부끄러운 마음이 담겼다고 해야 솔직한 말일 거 같다.


 타이머 기능이 있는 전구는 우리가 직접 키지 않아도 여섯 시만 되면 불을 밝혔다. 그 덕에 퇴근시간 우리 집 쪽 언덕을 올라오는 몇몇 사람들이 트리를 봤을 테고, 낮이면 옆집(옆집이 어린이집이다.)에서 야외활동을 하며 꼬마 친구들 몇몇도 트리를 봤을 것이다. 이쯤 되니 고작 동네 사람들 몇 명 봤을까 말까 한 정도밖에 안 되는 허영이었나, 또 부끄럽다. 신세계 본점 스케일은 아니더라도 강남 대로변 빌딩 정도는 되어야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만한 허영이 될 수 있구나 싶다.


 이번 주말 트리를 정리하기 전 새똥을 치웠다.

뒷산의 '진짜 나무'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는데 요란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으니 새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동안 싼 똥이 꽤 있었다.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너먼트를 부리로 쪼는 새도 봤었는데 먹지 못하는 열매라 화가 난 걸까 똥을 많이도 싸고 간 것이다.

어쩌면 새들에겐 혼란을 준 트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트리를 본 사람들 중 한 명 에게는
내 부끄러운 마음이 즐거움으로 번졌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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