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여행자의 수줍은 고백
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지만, 이병률 작가의 책 '끌림'에 이런 내용이 있다.
여행지에 물건을 놓고 왔다면 소중한 것이었더라도 돌아가기 힘들겠지만,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소중한 누군가가 그곳에 있다면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그 부분을 눈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마음으로 읽는다. 예전에는 여행의 매력이 '새로운 문화와 풍경을 보고 발견하는 즐거움'처럼 외적인 것에 기울었다면 점점 그 시선이 안으로 향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무엇을 보느냐'에서 그 풍경 안의 사람으로 향하게 되었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때가 더 많았던 나에게 좀 아이러니한 말일 수도 있지만 지난 여러 해의 여행의 결론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파리, 그저 하나의 대도시였던 그곳
로맨틱한 도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파리는 동시에 여행자들 사이에서 극명한 호불호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것과 꽤 괴리감이 있는 현실을 맞닥뜨리면 그 실망이 더 커지기 때문이리라. 나 또한 약간의 환상을 가지고 갔던 파리로의 첫 여행에서 도시의 아름다움만큼이나 민낯도 적나라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또 하나의 멋진 대도시일 뿐'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서울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의 이국적인 도시였음에도, 바쁜 현지인과 그보다 더 많은 관광객, 그 사이 서로에게 무심한 대도시 특유의 쓸쓸함이 열아홉의 나에게도 전해졌던 것 같다. 빛나지만, 멋지고 웅장한 건물과 방사형으로 뻗은 대로에 압도되어 사람의 존재감이 작아지는 그런 대도시였다. 다른 계절에 파리를 다시 방문했을 때도 그 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화려하지만 인간미 없는 무매력의 미녀 같다고나 할까?
그랬던 파리에 따스함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이들이었다.
페루에서 프랑스까지 이어진 인연
무모하게 책 하나 들고 홀로 떠난 페루 여행 중이었다. 작은 도시 피스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는데, 같은 숙소에 머물던 선한 인상의 프랑스 청년 두 명도 나와 같은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당연히 같은 버스를 탈 것으로 생각하고 반가워했지만, 나는 어제 낯선 여행자를 결혼식에 초대해준 현지인들에게 떠나기 전 인사를 하고 싶어서 그들과의 짧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 찰나의 인연은 다음 도시에서 그들이 나를 우연히 발견하고 다시 말을 걸어옴으로써 이어졌다. 얘기를 하다 보니 다음 행선지 또한 동일했고, 그들은 오늘 떠날 건데 이번에는 같이 가겠느냐 물었다. 장거리 버스에 말동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되었지만, 나는 그 사막 속 이국적인 도시 와카치나와 사랑에 빠져있었기에 하루 더 있겠다며 거절했다. 또다시 작별 인사를 하는 나에게 그들은 차에 타기 전 급하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이렇게 자꾸 우연이 겹치는 것도 인연인데 다음 도시인 쿠스코에서도 그게 이어진다면, '모레 저녁 7시에 아르마스 광장에서 만나자'고. 셋 다 쿠스코를 가보지 않았지만, 페루의 웬만한 도시에는 중앙에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 있기에 거기에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야말로 즉석에서 정한 약속이었다.
거의 20시간의 버스 여행을 거쳐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도착하자 피곤함보다도 고산병 증세가 덮쳐왔다. 숙소 주인의 조언대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잠시 눈을 붙였다. 다행히도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약속한 7시의 아르마스 광장에 나갈 수 있었다. '과연 나올까?' 하는 얼굴로 날 기다리는 그들을 보자 마치 원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가웠다. 알고 보니 형제였던 두 사람과 그렇게 임시 여행 친구가 되어 유적지와 마추픽추, 하이킹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제, 동생 아모리(Amaury)는 프랑스의 파일럿 스쿨로 복귀, 형인 로맹(Romain)은 봉사활동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도 여행 전에 한국에서 페루 고아원 봉사활동에 신청했는데 실패했다고 말하자, 로맹은 놀라면서 '내가 가는 봉사활동이 마침 고아원이야!'라며 그곳에 연락을 해주겠다는 거다. 누가 내게 말했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 신기한 인연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의 소개 덕분에 나는 산골마을 고아원에서 어설픈 스페인어로 아이들을 돌보다가 페루를 떠날 수 있었다. 절대적으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구의 반대편에서 이어지는 우연과 고생했던 기억까지 더해져 우리는 어느새 꽤 끈끈한 동료애를 가지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파리는 여전했지만, 파리에 대한 마음은 여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인연은 몇 년 후 유럽 여행에서 다시 이어졌다. 다시 만나서 어색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날 반기며 내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던 로맹의 모습에 사르르 사라졌다. 말로만 듣던 그의 여자친구와 친구들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 때문에 어색하게 영어를 써야 했던 그들과 쿠스쿠스를 먹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던 여름날 밤. 그 밤 이후로 파리에는 따스함의 필터가 씌워졌다.
파리에 있는 내내 내가 혹시라도 불편해할까, 심심해할까 봐 내내 신경을 썼다. 한국 친구들에게는 '혼자 여행하는 씩씩한' 나인데, 로맹에게는 페루에서 비위도 체력도 약해서 정신력으로 하이킹과 봉사 활동하던 내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보였었나 보다. 덕분에 혼자였다면 전혀 몰랐을 퇴근 후 늦은 저녁 먹으러 가는 식당이나 인디 밴드 공연, 생마르탱 운하 옆 숨겨진 바까지 여기저기 갈 수 있었다. 나중에는 동생은 물론이고 누나까지 모두를 만나 저녁을 먹고 강남스타일 노래도 함께 불러줘야 했다.
파리는 똑같았다. 현지인에게도 자비 없이 로맹이 날 만나러 오다 소매치기를 당했고, 몽마르트르에는 여전히 실 팔찌 강매단이 있었으며, 에펠탑은 조명이 들어오기 전 낮에는 다소 삭막한 철탑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파리는 내게 낯설고 차가운 곳이 아니다.
가끔 안부 인사를 보낼 때는 '파리에 오면 누구에게 연락할지 알지?'라고 끝인사를 하며, 언제라도 파리에 도착하면 나와 맛있는 쿠스쿠스를 먹으러 가 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파리를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따뜻한 도시 중 하나로 만들어 줬다.
(이제는 형제 둘 다 결혼을 해서 내가 출장으로 호텔에 머문다고 말해도 '나는 친구 집에서 자면 되니까 파리 와서 엄한 돈 쓰지 마!'라며 집 열쇠를 줘버리던 예전같은 호의는 베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여행에 특별함과 온기를 주는 것은 결국
옆에 있는 사람들도 챙기기 바쁜 현실에 지구 반대편에서 날 생각해주는, 언제든 찾아가면 반겨줄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한가.
세상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아름다운 곳도 많다. 그러나 어린 왕자에게 수많은 장미와 사막여우 중 단 하나의 존재가 특별한 것처럼, '수많은 도시 중 한 곳'이 내게 '의미 있는 도시'가 되는 순간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특정한 형용사로 정의되는 도시가 아니라, 그곳을 새로운 색으로 함께 채색해주는 것은 사람이었다.
처음 혼자 떠난 이유는 어쩌면 모든 결정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한 개인주의적인 것이었을지 몰라도, 돌이켜보면 그 도시를 떠올릴 때 피어나는 감동과 기억의 조각에는 사람의 온기가 배어있었다. 여행의 나날 속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모두가 나에게 그 도시에 특별한 기억과 감정을 각인시켜놓았다.
내가 이미 몇 번이나 간 파리로 또 떠나게 된다면,
코로나 이후 다시 언젠가 홀로 여행을 떠난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사람이겠지.
그곳에 있을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또 아직 만나지 못한 그 인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