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빌딩에 나가는 것은 엄청난 결심이야. 너의 자유 시간을 온전히 여기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해.”
처음 보디빌딩 대회 출전을 고민할 때 코치가 한 말이다. 그때는 ‘대회에 나간다면 당연히 거기에 집중해야겠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을 테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지.’라고 끄덕였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집중과 전념은 무척이나 막연한 개념이었다. 마치 면접장에서 외치는 ‘열정과 최선’처럼. 대회가 다가오니 그 전념이라는 말은 헌신이라는 말에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회사를 제외한 나의 모든 개인 시간은 보디빌딩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보디빌딩을 준비하게 되면 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 것들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목록에 하나둘씩 자꾸만 새로운 것들이 추가되어 나를 놀래켰고, 소셜 라이프는 그 중 하나였다. 물론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에 직접적으로 ‘친구들을 못 만납니다.’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우선순위, 한정된 시간, 식단 같은 요소들이 맞물려 결과적으로 내 예상 이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가장 먼저 식단의 문제가 있다. 오늘 먹어야 할 영양소와 섭취량이 정해진 상태에서 외식을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회식이나 외식 약속이 있다면 최대한 그 끼니를 빼고 다른 두 번의 식사에서 만회하려고 노력하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그저 약속을 잡을 때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잡거나, 식당의 메뉴에서 가장 나은 메뉴를 고르는 게 최선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회사는 점심시간은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혼자 또는 친한 이들과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먹으러 가거나, 도시락을 싸와서 해결할 수 있었다.
술은 가급적 피해야하지만 친구들과 있다보면 한 잔이라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평소 먹지도 않던 연어나 샐러드 안주 등을 시키고 한 잔으로 기분만 내는 식이었다. 마냥 적게 먹는 절식이면 차라리 쉽다. 근육을 만들려면 정해진 단백질 칼로리는 섭취해야 하다보니, 하루는 안주로 나온 치킨 텐더에서 껍질을 벗겨 살코기를 내가 먹을 수 있게 해주며 눈물 겨운 우정을 증명해준 친구도 있었다. 이 일련의 번거롭고 구질구질한 일들을 겪다보면 자연스럽게 약속을 자발적으로 적게 잡게 되곤 했다.
식단 외에 물리적인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대회가 가까워질 수록 그날의 운동은 빨리 끝날지 몰라도 다른 준비할 것들이 많아졌다. 초반에 근육을 만든다고 비교적 게으르게 했던 유산소도 더 해야했고, 포즈와 잡다한 준비는 갈수록 늘어났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누군가 날 만나자고 하면 그 사람이 내 일정 사이에 맞춰주는 수 밖에 없었다. 데이트하고 싶어하던 한 분은 퇴근 후 내가 다니던 피트니스 센터 앞에서 기다려 차 한잔을 마신다거나, 피트니스 센터 일일권을 끊어 방문하거나, 조깅할 때 함께 뛰는 것 중 선택해야만 할 정도였다.
오히려 헬스장 사람들과의 내적 친밀감만 커져갔다. 내 운동하기 바빠 친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보는 사람들과는 목례도 하곤 했고, 테이블에서 닭가슴살을 먹고 있으면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