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가 얼마 안 남았을 때, 코치는 내게 왜 소셜 미디어에 사진을 올리지 않냐고 물었다. 응원을 해주러 올 서포터 친구들에게도 소식을 알리고, 대회 관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히는 게 좋지 않냐는 것이었다. 코치와 함께 있다가 얼떨결에 대회 관계 번역도 도운 적 있을 정도로 내가 대회 관계자들에게 잘 보이길 원했던 것 같다. 어떤 코치든 그런 마음이 안 들겠냐마는, 그 이유로 이런 내가 답답해 보였었나 보다. SNS만 켜도 운동하는 몸매 좋은 이들의 사진이 넘치는 시대에 살면서 그럴싸한 사진 하나 안 올리고 있었으니.
실시간으로 내가 무엇을 하는지 올리는게 민망하기도 하고, 진지하게 말하면 위험하다고까지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회 준비를 하던 3개월 동안은 그런 성향이 없었더라도 물리적으로 정말 시간이 부족했다. 특정 운동이 안돼서 물어보려고 한다거나 기억해야 할 특이점 등이 생길 때 실용적인 이유로 메모를 가끔 남기기는 했다. 매주 진행상황을 보려고 주말 공복에 여러장의 기록용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개인적인 기록은 할 여유가 없었다. 운동 방법이나 기구 사용법, 포즈 등 외워야 할 것들이 계속 나오다보니, 일기를 쓰거나 예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회 준비 완주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에 준비 과정을 올리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노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며 섣불리 떠들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알고 자라왔으니.
여하튼 코치의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대회를 앞두고 겨우 사진 한 장을 올릴 수 있었다. ‘저 대회 나갑니다’.하고.
곧 여러 응원의 메세지들이 달렸다. 그리고 한 친구에게서 DM(다이렉트 메세지)가 왔다. 야외 운동 때 봤지만 겨우 인사만 하던 외국인 여자 친구였다. ‘You inspired me’ 내가 그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 부여가 되었다는 메세지였다. 누군가에게 좋은 자극이나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나 혼자 하는 운동이 그런 것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하지만 그녀에 따르면 평범한 내가 그저 내 (이타적이지도 않은) 목표를 향해 3개월 동안 매진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을 줬다는 사실이 내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그저 혼자 외롭게 싸운다고 생각했고, 나만의 대회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그 모습을 조용히 응원하고 성장하는 것을 대단하게 봐주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저 내가 내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는 모습으로만으로 용기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기분 좋은 책임감과 보람감을 느끼게 했다.
대회에 응원을 와줬던 한 친구는 대회가 끝나고 따로 내게 연락을 해왔다. 대회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며 연신 대단하다고 말해주던 그녀는 결국 다음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했다. 대회 이후로 트레이너로 전업을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저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의 ‘저 사람’을 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날 보고 ‘저렇게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 또한 대회 준비 때 생각하지도 않던 묘하게 기분 좋은 보너스였다. 상업적으로 생각하자면 이게 바로 코치가 내가 수상을 하길 바랐던 이유였겠지.
기쁨과 슬픔이 전염되듯, 그저 나만의 것이었던 목표와 노력이 내 옆 사람에게 물감처럼 퍼지고 영향력의 원이 커지는 특별한 기분이 내 안에서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