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를 꾸미는 재미
혼자 살기 시작한다는 것은 나뭇가지가 땅에 뿌리를 박는 과정과 비슷하다. 다른 나무에 가지로 기생하던 안락함을 버리려면 온갖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가지는 땅에 디딜 수 있는 뿌리가 없다. 어떻게 그 뿌리로 땅의 영양분을 빨아올려야 하는지, 다른 나무와 어떻게 경쟁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나무가 퍼올려주는 영양분을 쫍쫍거리며 섭취할 뿐이다. 그리고 나뭇가지는 그 생활이 자신의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 일부분을 누군가에게 내맡긴다는 것은 물론 좋은 점이 많다. 첫째,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나무에게는 자기의 몸과 같은 귀여운 나뭇가지이다. 둘째, 필사적으로 경쟁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다른 나무와 필사적으로 경쟁하지 않아도 영양분을 받아먹으며 살 수 있다. 비록 가끔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셋째, 영양분을 끌어올리는 나무의 노동력을 무시하고 햇빛을 만끽할 수 있다. 나무가 고생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무가 본체니까 당연히 나무가 다 해야지.
하지만 나뭇가지가 잃게 되는 것 또한 많다. 뿌리로 닿는 흙의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 갈증이 날 때 물을 섭취할 때의 그 행복함과 감사함. 경쟁을 통해 알게 되는 법칙, 자신이 이 세계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하는 어떤 생명인가에 대한 자아정체감. 나뭇가지가 나무에서 꺾일 때에는 그만큼의 고통이 반드시 수반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 후에 나뭇가지는 땅에 뿌리내릴 수 있는 특혜를 가진다. 이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현실에 발 붙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상담을 계속 받으면서도 우울감에 시달리던 나는 어찌 됐든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서 취업성공 패키지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common coffee 의 로고를 일러스트로 만들어드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 표지 디자인을 만들어 인쇄해 방에 걸어놓기도 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포트폴리오가 차곡차곡 쌓일 때 즈음, 친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자유를 향해 독립을 실행한 (독립이라 쓰고 가출이라 읽는다) 언니는 10년째 같은 옥탑방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는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도 잘 버는데 왜 방으로 올라가려면 남의 집 거실을 거쳐가야 하는 곳에서 계속 사는지 항상 궁금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귀찮아서'
그런데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하는 옥탑방 생활과 쌓여가는 옷에 비해 한정되어 있는 낡은 옷장의 넓이는 언니를 위대한 결심으로 이끌게 되었다. 바로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혼자 월세로 가기에는 너무 좁거나 비쌌었고, 또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는 내가 걱정도 된 터라 나와 함께 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순간 '우리가 같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냐면 우리는 평소에는 약간 둔하고 맹한, 그러니까 만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적으로 닥쳐올 때 굉장히 예민해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또, 약간 자기중심적인 것도 똑같아서 서로에게 배려 같은 것은 그다지 기대할 수도 없었다. 또, 두 마리의 고양이가 흩뿌릴 어마어마한 양의 털과 똥, 그리고 화장실 모래로 인한 거실 사막화 또한 걱정이 됐다. 물론 예쁜 내 새끼들이나 마찬가지인 고양이들이었지만, 그래도 진짜 내 새끼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있으니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언니는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투룸으로 되어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전세를 잡자는 것이다. 전세금의 대부분은 언니가 낼 것이므로 언니는 큰 방을, 나는 월세 보증금 정도의 돈을 내고 작은 방을 쓰도록 제안을 했다. 또, 언니는 대출을 해서 전세금의 모자란 부분을 마련할 생각인데, 그 대출금의 이자는 둘이 반반씩 해서 함께 갚는 걸로 했다. 대출금의 이자는 아무리 많이 쳐도 한 달에 15만 원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나로서는 대환영이었다. 이 우울하고 작은 방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이 제안을 승낙했다.
하지만 전세 자체는 매물이 별로 없고, 발품을 많이 파는 만큼 좋은 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고생을 조금 했다. 하지만 집을 구하는 데에 있어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형부 (결혼 전이지만 그 둘은 5년이 넘게 사귀었기 때문에 난 그를 형부라고 부른다)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힙한 삶을 살기 위해서 상수-합정-망원 라인을 고집했던 우리 자매는 곧 우연의 일치로 내가 하우스 셰어를 하고 있는 집의 바로 뒷 집을 계약하게 됐다.
전세를 계약했던 집의 메리트는 큰 방이 아주 넓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방도 흔한 투룸 전세처럼 작은 창고 느낌이 아니라 침실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꽤 넓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집을 택했다. 하지만 그 집은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이 가장 증오해서 인테리어를 끝난 뒤에도 두 콧, 세 콧을 바르는 악몽을 꾼다는 그 체리색 몰딩, 내 미적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괴상한 색감의 화장실 타일, 그리고 철문으로 된 현관문 까지.. 조명은 이곳이 세기말 벙커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조명이었고 콘센트 또한 아주 낡아서 150살 먹은 노인처럼 누렇게 떴다. 그래서 이사를 가기 전 셀프 인테리어 천재인 형부와 함께 우리 두 자매들은 집을 아예 바꿔버리자는 계획을 세웠다.
블로그나 잡지에서 봤던 셀프 인테리어는 뚝딱뚝딱 굉장히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원하는 인테리어 레퍼런스를 찾고 방 크기에 맞게 기획해야 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한다. 자세히 볼수록 못난 집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갈아야 했고 지식은 부족했으므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세 명이서 이 작업을 다 소화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주변의 있는 친구, 없는 친구들을 죄다 끌어모아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했다.
큰 방과 거실, 작은 방. 그리고 생각하면 욕이 절로 나올 것 같은 진한 체리색 몰딩과 창문, 창문틀까지 모두 페인트칠을 해버렸다. 친구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난 후에도 들여온 조립 가구들을 조립하느라 낑낑댔으며 허리가 굽을 지경이었다. 조립 가구가 쉽다는 거 나만 동의 못해? 전동 드릴로 못을 끼워 넣다 손가락을 다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천장에 있던 더러운 조명은 모두 다 떼고 새 조명으로 갈았으며, 문 손잡이도 다시 다 달았다. 화장실 타일 위에 다른 타일을 직접 깨서 덧방 하는 작업까지 했다.
언니는 왜 내 노예(형부) 만 자꾸 부려먹냐며, 너의 노예도 데려와서 일을 시키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마침 마초스러운 일을 하기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가 선뜻 화장실 타일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덕분에 (이 친구는 타일 깨기의 귀재였다)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좁은 거실에는 일자형 식탁을 조립해 넣었고, 전기선을 따로 빼어 조명을 연결해 달았다. 이 모든 수고스러운 작업은 당연히 셀프 인테리어의 귀재인 형부가 담당했다.
또 은근히 사치품을 좋아하고 디자인을 따지는 까다로운 우리의 성격 때문에 인테리어 소품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게 되었다. 나는 특히 내 방의 인테리어에 특히 신경을 쏟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 방은 언니의 방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 활용을 잘 해야 했다.
언니가 예전 집에서 쓰다 더 이상 창문 크기가 맞지 않아 처치 곤란이었던 블라인드를 내 방에 달았고, 작은 방이었기에 조명도 3등 조명으로, 전구는 은은한 카페 조명에 사용되는 LED 볼 전구를 사용했다. 워낙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타입이 아니고 안 쓰는 것은 금방금방 버려버리는 탓에 보관할 짐도 별로 없었으므로 작은 방에 들어가기에는 한층 수월했다.
흰색과 오크색의 나무가 섞인 1인용 옷장과 화장대, 더블 싱글 사이즈의 침대, 그리고 책을 쌓아 올릴 트리 북 선반을 사서 공간을 위로 활용했다. 그림을 그릴 때 유용하고 인테리어 효과도 좋은 이젤과 직접 그린 그림을 그 옆에 놓고 그 옆쪽에는 자취생 필수품인 이케아 책상과 이케아 의자를 세트로 놓았다.
나는 데스크톱을 부모님 집에 두고 왔고, 맥북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상을 훨씬 넓고 깨끗하게 쓸 수 있었는데, 밤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무드등도 하나 함께 구매했다. 그 밖에 좋아하는 사진이나 엽서를 마스킹 테이프로 대충 붙이고 좋아하는 꽃(미스티 블루, 목화)로 장식을 했다. 책상 위에 달린 사슴 그림은 1200M 에서 샀는데 사슴 머리 쪽에 드라이플라워를 꼽을 수 있게끔 잘라져 있어서 예쁜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조명과 무드등을 켜면 내 방은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아늑함이 느껴졌고, 형부와 언니는 정돈이 빨리 된 내 방으로 자꾸 기어들어와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언니는 내 방의 인테리어만 빨리 끝내버린 내가 조금 못 미더운 셈이었다. 언니는 10년 동안 수집병으로 모아놓은 별의별 물건(쓰레기..)을 이사 전에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버릴 물건을 분류하고, 그래도 넘쳐나는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언니는 어림짐작해서 600권이 넘어갈 것 같은 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책을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분명 이사 전에 버릴 물건을 다 버리고 와야 정돈하기가 훨씬 편하다고 누누이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10년 치의 쓰레기를 집안으로 가지고 와서 허둥지둥하는 언니를 형부가 계속 도와줬기 때문에 나는 우선 내 방 정돈과 인테리어를 빨리 끝내버리고 거실 정돈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혼자 책상 조립과 책꽂이 조립 등을 혼자 낑낑대며 마치고 뿌듯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네 방만 끝내 놓으면 다냐고 얘기하는 언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내 방을 건드리지 않고 언니를 도와 정리를 마치고 내 방을 손대야 했던 건가? 그렇지만 나는 그 아수라장을 도와줄 마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언니에게 방 정리는 우선 둘이 마치고 옷 정리와 책 정리를 할 때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