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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Dec 14. 2017

전셋집 인테리어 노가다의 추억

보금자리를 꾸미는 재미


혼자 살기 시작한다는 것은 나뭇가지가 땅에 뿌리를 박는 과정과 비슷하다. 다른 나무에 가지로 기생하던 안락함을 버리려면 온갖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가지는 땅에 디딜 수 있는 뿌리가 없다. 어떻게 그 뿌리로 땅의 영양분을 빨아올려야 하는지, 다른 나무와 어떻게 경쟁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나무가 퍼올려주는 영양분을 쫍쫍거리며 섭취할 뿐이다. 그리고 나뭇가지는 그 생활이 자신의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 일부분을 누군가에게 내맡긴다는 것은 물론 좋은 점이 많다. 첫째,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나무에게는 자기의 몸과 같은 귀여운 나뭇가지이다. 둘째, 필사적으로 경쟁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다른 나무와 필사적으로 경쟁하지 않아도 영양분을 받아먹으며 살 수 있다. 비록 가끔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셋째, 영양분을 끌어올리는 나무의 노동력을 무시하고 햇빛을 만끽할 수 있다. 나무가 고생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무가 본체니까 당연히 나무가 다 해야지.


하지만 나뭇가지가 잃게 되는 것 또한 많다. 뿌리로 닿는 흙의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 갈증이 날 때 물을 섭취할 때의 그 행복함과 감사함. 경쟁을 통해 알게 되는 법칙, 자신이 이 세계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하는 어떤 생명인가에 대한 자아정체감. 나뭇가지가 나무에서 꺾일 때에는 그만큼의 고통이 반드시 수반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 후에 나뭇가지는 땅에 뿌리내릴 수 있는 특혜를 가진다. 이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현실에 발 붙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상담을 계속 받으면서도 우울감에 시달리던 나는 어찌 됐든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서 취업성공 패키지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common coffee 의 로고를 일러스트로 만들어드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 표지 디자인을 만들어 인쇄해 방에 걸어놓기도 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포트폴리오가 차곡차곡 쌓일 때 즈음, 친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자유를 향해 독립을 실행한 (독립이라 쓰고 가출이라 읽는다) 언니는 10년째 같은 옥탑방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는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도 잘 버는데 왜 방으로 올라가려면 남의 집 거실을 거쳐가야 하는 곳에서 계속 사는지 항상 궁금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귀찮아서'


그런데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하는 옥탑방 생활과 쌓여가는 옷에 비해 한정되어 있는 낡은 옷장의 넓이는 언니를 위대한 결심으로 이끌게 되었다. 바로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혼자 월세로 가기에는 너무 좁거나 비쌌었고, 또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는 내가 걱정도 된 터라 나와 함께 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순간 '우리가 같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냐면 우리는 평소에는 약간 둔하고 맹한, 그러니까 만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적으로 닥쳐올 때 굉장히 예민해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또, 약간 자기중심적인 것도 똑같아서 서로에게 배려 같은 것은 그다지 기대할 수도 없었다. 또, 두 마리의 고양이가 흩뿌릴 어마어마한 양의 털과 똥, 그리고 화장실 모래로 인한 거실 사막화 또한 걱정이 됐다. 물론 예쁜 내 새끼들이나 마찬가지인 고양이들이었지만, 그래도 진짜 내 새끼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있으니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언니는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투룸으로 되어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전세를 잡자는 것이다. 전세금의 대부분은 언니가 낼 것이므로 언니는 큰 방을, 나는 월세 보증금 정도의 돈을 내고 작은 방을 쓰도록 제안을 했다. 또, 언니는 대출을 해서 전세금의 모자란 부분을 마련할 생각인데, 그 대출금의 이자는 둘이 반반씩 해서 함께 갚는 걸로 했다. 대출금의 이자는 아무리 많이 쳐도 한 달에 15만 원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나로서는 대환영이었다. 이 우울하고 작은 방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이 제안을 승낙했다.


하지만 전세 자체는 매물이 별로 없고, 발품을 많이 파는 만큼 좋은 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고생을 조금 했다. 하지만 집을 구하는 데에 있어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형부 (결혼 전이지만 그 둘은 5년이 넘게 사귀었기 때문에 난 그를 형부라고 부른다)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힙한 삶을 살기 위해서 상수-합정-망원 라인을 고집했던 우리 자매는 곧 우연의 일치로 내가 하우스 셰어를 하고 있는 집의 바로 뒷 집을 계약하게 됐다.  


전세를 계약했던 집의 메리트는 큰 방이 아주 넓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방도 흔한 투룸 전세처럼 작은 창고 느낌이 아니라 침실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꽤 넓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집을 택했다. 하지만 그 집은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이 가장 증오해서 인테리어를 끝난 뒤에도 두 콧, 세 콧을 바르는 악몽을 꾼다는 그 체리색 몰딩, 내 미적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괴상한 색감의 화장실 타일, 그리고 철문으로 된 현관문 까지.. 조명은 이곳이 세기말 벙커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조명이었고 콘센트 또한 아주 낡아서 150살 먹은 노인처럼 누렇게 떴다. 그래서 이사를 가기 전 셀프 인테리어 천재인 형부와 함께 우리 두 자매들은 집을 아예 바꿔버리자는 계획을 세웠다.


블로그나 잡지에서 봤던 셀프 인테리어는 뚝딱뚝딱 굉장히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원하는 인테리어 레퍼런스를 찾고 방 크기에 맞게 기획해야 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한다. 자세히 볼수록 못난 집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갈아야 했고 지식은 부족했으므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세 명이서 이 작업을 다 소화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주변의 있는 친구, 없는 친구들을 죄다 끌어모아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했다.


큰 방과 거실, 작은 방. 그리고 생각하면 욕이 절로 나올 것 같은 진한 체리색 몰딩과 창문, 창문틀까지 모두 페인트칠을 해버렸다. 친구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난 후에도 들여온 조립 가구들을 조립하느라 낑낑댔으며 허리가 굽을 지경이었다. 조립 가구가 쉽다는 거 나만 동의 못해? 전동 드릴로 못을 끼워 넣다 손가락을 다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천장에 있던 더러운 조명은 모두 다 떼고 새 조명으로 갈았으며, 문 손잡이도 다시 다 달았다. 화장실 타일 위에 다른 타일을 직접 깨서 덧방 하는 작업까지 했다.


창백하게 질려 졸도하기 일보 직전인 집..모든 페인트는 화이트였다.


언니는 왜 내 노예(형부) 만 자꾸 부려먹냐며, 너의 노예도 데려와서 일을 시키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마침 마초스러운 일을 하기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가 선뜻 화장실 타일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덕분에 (이 친구는 타일 깨기의 귀재였다)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좁은 거실에는 일자형 식탁을 조립해 넣었고, 전기선을 따로 빼어 조명을 연결해 달았다. 이 모든 수고스러운 작업은 당연히 셀프 인테리어의 귀재인 형부가 담당했다.


또 은근히 사치품을 좋아하고 디자인을 따지는 까다로운 우리의 성격 때문에 인테리어 소품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게 되었다. 나는 특히 내 방의 인테리어에 특히 신경을 쏟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 방은 언니의 방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 활용을 잘 해야 했다.


언니가 예전 집에서 쓰다 더 이상 창문 크기가 맞지 않아 처치 곤란이었던 블라인드를 내 방에 달았고, 작은 방이었기에 조명도 3등 조명으로, 전구는 은은한 카페 조명에 사용되는 LED 볼 전구를 사용했다. 워낙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타입이 아니고 안 쓰는 것은 금방금방 버려버리는 탓에 보관할 짐도 별로 없었으므로 작은 방에 들어가기에는 한층 수월했다.



흰색과 오크색의 나무가 섞인 1인용 옷장과 화장대, 더블 싱글 사이즈의 침대, 그리고 책을 쌓아 올릴 트리 북 선반을 사서 공간을 위로 활용했다. 그림을 그릴 때 유용하고 인테리어 효과도 좋은 이젤과 직접 그린 그림을 그 옆에 놓고 그 옆쪽에는 자취생 필수품인 이케아 책상과 이케아 의자를 세트로 놓았다.



나는 데스크톱을 부모님 집에 두고 왔고, 맥북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상을 훨씬 넓고 깨끗하게 쓸 수 있었는데, 밤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무드등도 하나 함께 구매했다. 그 밖에 좋아하는 사진이나 엽서를 마스킹 테이프로 대충 붙이고 좋아하는 꽃(미스티 블루, 목화)로 장식을 했다. 책상 위에 달린 사슴 그림은 1200M 에서 샀는데 사슴 머리 쪽에 드라이플라워를 꼽을 수 있게끔 잘라져 있어서 예쁜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조명과 무드등을 켜면 내 방은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아늑함이 느껴졌고, 형부와 언니는 정돈이 빨리 된 내 방으로 자꾸 기어들어와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언니는 내 방의 인테리어만 빨리 끝내버린 내가 조금 못 미더운 셈이었다. 언니는 10년 동안 수집병으로 모아놓은 별의별 물건(쓰레기..)을 이사 전에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버릴 물건을 분류하고, 그래도 넘쳐나는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언니는 어림짐작해서 600권이 넘어갈 것 같은 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책을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분명 이사 전에 버릴 물건을 다 버리고 와야 정돈하기가 훨씬 편하다고 누누이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10년 치의 쓰레기를 집안으로 가지고 와서 허둥지둥하는 언니를 형부가 계속 도와줬기 때문에 나는 우선 내 방 정돈과 인테리어를 빨리 끝내버리고 거실 정돈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혼자 책상 조립과 책꽂이 조립 등을 혼자 낑낑대며 마치고 뿌듯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네 방만 끝내 놓으면 다냐고 얘기하는 언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내 방을 건드리지 않고 언니를 도와 정리를 마치고 내 방을 손대야 했던 건가? 그렇지만 나는 그 아수라장을 도와줄 마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언니에게 방 정리는 우선 둘이 마치고 옷 정리와 책 정리를 할 때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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