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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Dec 17. 2017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때마다 집에서 나오기 전의 생각이 자꾸 났다. 부모님 집에서 나는 방을 나와 작은 케이지에 갇힌 실험실 쥐마냥 거실에서 서성이고 빙글 빙글 돌았다. 가슴이 꽉 막혀있는 듯 했고, 어떤 충동이 자꾸 나를 부채질 했다. 자세히 어떤 충동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안난다. 어떤 폭력적이고 강렬한 충동, 내가 받은 폭력적인 경험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밖으로 토해내야 하는듯한 충동이었다. 어떤 심리학서에서 본 이론이 생각이 났다. 폭력적인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워내지 못한 사람들은 그 폭력성을 몸 속에 지니고 있으며, 남에게 표출이 되면 똑같은 가해자가, 나에게 표출을 하면 자해가, 표출을 하지 않고 있으면 우울증으로 전환된다는 이론이었다. 나는 남에게 폭력을 가하기에는 너무 약하고 소심했고, 자해를 하기에는 너무 겁쟁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남겨진 것은 필연적으로 우울증밖에 없었으리라.


상담보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람들과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사한 집의 정돈이 대충 끝나고 인테리어도 마쳐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되고 나서는 언니와 매일 같이 저녁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형부도 매일 맥주를 사들고 집으로 놀러와 시끌벅적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좋은 점과 나쁜 점은 햇빛과 그림자처럼 항상 같이 따라오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언니는 10년동안 혼자 살았기 때문에 혼자 사는것에 익숙해져서 같이 사는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편이었다.


우리는 똑같은 걱정을 하며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몇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설거지는 격일로 담당할 것, 일주일에 한번 대청소 (거실) 은 함께 할 것, 밤늦게 큰 소음을 내지 않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룰은 지켜질 것 같으면서도 지켜지지 않았다. 고의적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설거지를 담당하는 날 언니는 형부를 초대하여 거한 저녁을 만들었고, 그 후의 설거지는 물론 나의 담당이었다. 둘은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 놀았고, 나는 끝없이 쌓여있는 설거지를 혼자 끝냈다. 언니가 설거지를 담당할 때 후라이팬과 냄비를 자꾸 씻지않았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 두개를 설거지 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봤는데 언니는 ‘너무 커서..’ 라고 이야기 했고 그 말은 나를 약간의 멘붕에 빠지게 했다. 각자의 방을 청소하고 나서 밀대걸레를 빨아놓는 것은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했건만, 본인의 방을 청소하고 나서 걸레를 빨지 않고 그 상태로 방치했고 밤마다 형부가 집으로 놀러왔기 때문에 밤 늦게 소음을 내지 않는다는 약속도 물론 지켜지지 않았다.


언니는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웠고, 나와 달리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고양이들의 위생에 좀 더 신경을 써주며 똥을 치워주고,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거실에 흩뿌려져있는 고양이 화장실 모래를 밟아 아파했을때 언니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이고, 안됐군.’ 물론 언니는 나와 다른 사람이고, 그래서 청결에 대한 기준이 나와 다를 수 밖에 없었을 테지만 나였다면 내가 기르는 고양이니 거실이 그 때문에 지저분해졌다면 미안해하며 치우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어느 날은 빨래를 하고 속옷과 함께 내 옷가지를 거실에 말리고 있었을 때, 언니는 그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미리 주의를 주지 않고 형부를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그 때 나는 약간의 수치심과 함께 언니가 같이 사는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완전히 느낀 것이다.


물론 언니도 나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출퇴근을 하는 바쁜 일상에서 내가 집안일을 조금 더 거들어야 하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본인이 집 보증금의 대부분을 냈고 애를 썼기 때문에 내가 좀 더 희생하기를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보증금 대출 이자에 대한 금액은 정확히 반반으로 나누어 분배하고 있었고, 언니가 큰 방을 쓰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것으로 공평하게 협의를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희생은 하고싶지 않았다. 또, 언니는 이사한 날 내가 언니의 방 정리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불만이 맺혀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둘 다 서로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터졌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싸웠고, 서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언니는 메시지로 나에게 최대한 감정을 억눌러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기분나쁜 방식의 소통법이었기 때문에 문자를 읽고 감정을 다스린 후 답장을 하려고 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기분이 나쁘면 직설적으로 푸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너는 항상 문제가 있으면 문자를 씹는데 그것 굉장히 기분 나쁘다’ 라고 공격했고, 거기에서 2차 빡침에 의해 감정 컨트롤을 가져다 버리게 된 나는 그동안의 불만을 죄다 털어냈고 니가 예의가 없네 개념이 없네 하는 둥의 인신공격으로 개싸움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화해없이 인신공격만으로 끝나버린 카톡 때문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우선 학원을 다녀온 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언니에게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며 사과 문자를 보냈다.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고 물론 둘 다 힘든 점이 있지만 서로 배려해야할 것 같다고 화해를 신청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점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언니는 쾅쾅거리며 형부와 함께 대문을 열고 들어왔고, 자고 있는 내 방문을 힘껏 열어재꼈다.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나는 얇은 잠옷을 입고 있었고 자다 깨서 당황한 상태에서 ‘내일 얘기하면 안될까?’ 라고 했지만 언니는 내 방의 불을 켜고 막무가내로 들어와 ‘아니? 난 지금 얘기해야겠는데?' 하며 발을 쾅쾅 굴렀다.


나는 내 기준으로 너무 몰상식한 상황에서 벙이 찐 상태였다. 언니는 나한테 너는 개념이 없고 싸가지가 없다니, 뭐라니 해댔고 그동안 내가 불편했다고 항의한 것에 대해서 조롱을 했다. 계속해서 화난 코끼리 같이 발을 쾅쾅 굴러댔다. 나는 처음에는 이웃이 있으니 소리를 지르지 말라, 앉아서 이야기 하자고 하며 상황을 조금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러대는 언니 덕분에 무력하게 침대에 앉아있었던 나도 화가 나서 같이 큰 소리를 냈고, 언니는 욕을 서슴치않고 써가면서 나를 자꾸 쳤다. 나는 앉아서 때리지 말고 말로 하라고 했고, 그러면 언니는 알겠다고 하며 다시 욕을 하다가 다시 나를 밀거나 쳤다. 


형부는 저 뒤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때리지 말라고 3번정도 말을 한 후에도 다시 언니가 폭력을 쓰자 나는 언니의 머리채를 잡아 당긴 후 내 방에서 나가라고 말을 했다. 내 방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부모님 댁에 있었을 때 일어난 아빠의 폭력과 너무 흡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거의 공황상태였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토할 것 같았다. 나는 빨리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제발 언니가 내 방에서 나가주기를 원했다. 내가 언니의 머리채를 잡자 형부는 그때서야 내 방에 들어와 상황을 저지시켰고, 언니는 씩씩대며 내 방에서 나갔다. 


언니가 나간 후 형부는 내 책상 의자에 앉아 나에게 언니의 행동에 대한 쉴드를 치기 시작했다. 언니가 나와 함께 살려고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준비를 했다는 둥, 언니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너게에는 잘한다는 둥, 나를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데 공황상태에 있는 상태에서 그 말이 들릴 리가 만무했다. 나는 잠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있는 상태였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창문을 열고 계속 숨을 쉬려고 노력을 했다. 어느정도 숨통이 트인 후 나는 형부에게 그냥 나가달라고 이야기 했고, 왜 이 늦은 시간에 언니와 같이 들어와서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언니에게 미안하다는 화해의 말을 했는데도 밤늦게 들어와 마구 욕설을 퍼붓는 행동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고, 형부는 언니가 이번 일에 대해 너무 화가 나있어서 같이 맥주를 마시고 같이 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니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내가 왜 이해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계속 설득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것은 제발 내 방에서 나가주는 것이었다. 계속 나가달라는 말만 힘없이 반복하는 나를 보며 설득은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형부는 비로소 내 방에서 나갔고, 나는 영하 10도의 밤에 창문을 계속 열어놓고 날이 샐 때 까지 숨쉬기 운동을 해야했다. 


그 날의 일은 사실 부모님 댁에 있었을 때 일어난 일보다 나에게 더 충격적인 일이었고, 자기 집에서 나가라는 언니의 말에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이번 일 때문에 결국 같이 살 수 없을 거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번 년도에만 3번 이사를 해야한다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나 말고는 결국 아무데도 의지할 데가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무서웠다.


서로 얼굴도 보지않고 외면한 채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나날 때문에 언니와 나는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고,  나는 거의 탈진한 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 날 있었던 일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았다. 조용한 일요일 오전, 나는 언니의 방으로 들어가 대화를 다시 시도했다. 언니는 그날 자신이 조금 취해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보낸 사과 메시지는 나를 차단했었기 때문에 나중에야 봤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아무것도 아닌 트러블로 이렇게 싸웠으니,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4월 전까지는 나가달라고 통보했다. 사과는 없었다.


그 날 부터 남는 시간에는 온종일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나는 몇 달 살지 않은 상수동에 많이 정이 붙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가지는 않았다. 언니와 살던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상수 역 앞의 작은 원름을 계약하고 일사천리로 이사날짜를 잡았다. 고맙게도 친한 친구가 이사를 도와준다고 했기 때문에 이사는 한결 수월했다. 내가 이사를 가는 날 언니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정말 혼자' 살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 집에서 나온지 5개월, 언니와 함께 산지 두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 눈이 녹고 거리에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 3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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