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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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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Park May 25. 2020

뉴저지, 팅커벨의 마법 가루를 뿌려 줘

뉴저지 인턴 생활 적응기

저기 어딘가쯤에 이미 와 있다는, 선글라스를 낀 어떤, 그래도 3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계속해서 사장님이라는 호칭, 그리고 어떤 이름이 팀장님과 나의 대화 속에서 오고 가는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그 남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 왔어, 여기 클로이 씨.”


일단 뭐가 뭔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그 선글라스를 낀 남자 앞에 서게 되었고, 이 사람도 나에게 꽤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눈치였다.


“사장님이에요, 클로이 씨.”


사장님이라고? 사장님이라기엔 너무 젊은 거 아닌가? 이사님이라고 해도 젊을 판에 이사님이 아니라 사장님? 알고 보니 그는 진정 사장님이었고, 팀장님과 나의 대화 속을 오갔던 그 어떤 이름 역시 사장님의 이름이었다. 팀장님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 회사는 생각보다 더 수평적인 문화였는 데다가 직원 중에는 사장님의 친 남동생을 비롯해 가족들이 몇 있던 가족 회사여서 아무래도 뭔가 더 캐주얼한 그런 분위기였다.

어쨌든 사장님은 미국에 오니 어떠냐부터 해서 여기 레스토랑은 생굴이 맛있다든지, 맥주를 한잔 시켜보겠냐고 물으며 친근하게 다가와 주셨고, 그래서 조금 어색하지만 그래도 나름 편한 분위기로 그렇게 출근도 하기 전부터 사장님과 낮술을 하게 되었다. 맥주를 한잔 들이켜고 석화가 맛있네요, 하면서 강 너머의 삐죽삐죽한 스카이 라인을 보고 있으니, 그곳이 바로 뉴욕 시티라고 하셨다. 와, 내가 여기 허드슨 강 바로 옆에 야외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뉴욕 시티를 배경 삼아 석화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팔자였던가? 언제부터? 갑자기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우쭐함이 맥주와 함께 나를 조금 들뜨게 만들었다. 간단하게 앞으로 하게 될 일이 어떤 게 있는지 전해 듣고 내가 와서 앞으로 기대가 크다는 조금 부담스러운 말에 허허 웃어 보이고 수다를 조금 더 떤 후에 팀장님이 나를 집으로 바래다주셨다. 이제 이 곳이 내가 머물 곳이라는 사실이 어딘가 나를 안도하게 했고, 내가 내 주변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심지어 여기 미국에 와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대견해지면서 기분 좋게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이제 정말로 회사에 출근을 하는 첫 출근 날이 되었다. 부대표라는 사람이 나를 은행에 데리고 가서 급여가 들어올 수 있도록 내 계좌를 여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부대표라고 해봐야 나보다 두세 살 많을 뿐이었다. 이 사람들은 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참 열심히 많은 것들을 이뤘구나-생각하며 어리바리하게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돌아와서 컴퓨터 셋업을 하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좀 수다를 떠니 곧 점심시간이 되었다. 초반이니까 한 달 동안은 점심을 해결해 주겠다며 팀장님과 이사님과 함께 순댓국을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회사가 있던 곳과 내가 머물던 곳이 한국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어서, 미국이라기보단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1년 살기를 하러 온 느낌이었다. 오후엔 팀장님이 이케아에 같이 가 줄 테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서 사라고 하셨는데, 유치원생인 아들을 데리고 와서는 본인은 아들과 여기서 기다릴 테니 10분 안에 모든 걸 해결하고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까지 이케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한국의 이케아는 아직도 가 볼 기회가 없었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곳의 이케아는 어쨌든 무지하게 넓었다. 그냥 미국이라는 곳 어딘가에 나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길치인 내가 조금만 멀리 갔다가는 지구 미아가 될 것이 뻔했으므로, 대충 근처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만 골라 허겁지겁 뛰어다녔더랬다(심지어 이케아의 시스템이 어떤지 몰라서 진열품을 그대로 카트에 넣기도 했다). 그냥 모든 것이 슉슉 하고 지나갔다.


정신이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을 리셋할 수 있는 기회가 (마침내) 주어진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조금은 복잡하고 조금은 잊고 싶고 부정하고 싶던 그런 나의 모습들을 영영 뒤로 하고 드라마의 천진난만한 여주인공들처럼, 그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로 내 기본값을 설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제부터 나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  내려갈  있다는 생각은, 즐거운 상상을 하면   있게  주는 팅커벨의 마법 가루가 정말로 있었다면 나를 당장에라도 지구 밖까지 날아갈  있게  정도의 그런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강 너머 뉴욕의 모습과 그 날의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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