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민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oe Park May 17. 2020

드디어 뉴저지에 짐을 풀다

뉴저지에서 홀로 서기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마중 나와 주신 팀장님과 먼저 짐을 풀러 계약해 둔 집으로 향했다.

공항이 뉴욕에 있었고, 뉴욕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던 나는 무식하게도 공항에 내리자마자 영화에서 보던 익숙하지만 낯선 뉴욕 시티를 만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차창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뭐랄까, 좀 넓은 차선들과 하늘이 많이 보이는, 그러니까 높은 빌딩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그런 풍경들이었다. 촌스럽게 처음 온 티를 내고 싶지 않았는지, 나는 딱히 질문도 하지 않고 그저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영어로 쓰인 모든 이정표들을 그림처럼 감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비행기에서 잠을 잤다고 해도 집에서처럼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해서였는지, 모든 광경이 조금은 멍한 꿈처럼 느껴졌다. 내가 지금 어떤 뮤직비디오 안에 들어와 있나? 세트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가서 짐만 후딱 내리고 와요. 회사 궁금하지 않아요?”


물론이죠. 물론 궁금했다. 회사는 K-Pop 웹사이트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곳이라고 했고, 구글로 주소를 쳐 봤을 때도 꽤 삐까뻔쩍 해 보이는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인터뷰를 볼 당시에 나를 인터뷰했던 Vice President라는 사람이 -아마 한국 직급으로 따지면 부대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회사 내에 게임을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무척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했기 때문에 내 안에 상상의 나래는 1초마다 얼마 씩 늘어나는 우주의 공간처럼 점점 커져만 갔다.


팀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나니 어느새 앞으로 내가 살 곳에 도착했다. 지금은 시간이 좀 지나서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집주인 내외분이 외출을 가신 중이라 좀 기다렸어야 했던 것 같다. 마침내 만나 뵙게 되었을 때에는 미안하다며 머쓱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셨다. 집주인 내외분은 참 인상이 좋으셨고, 지내는 내내 나를 딸처럼 대해주려고 노력하셨다. 나이 대가 우리 부모님보다 조금 많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것저것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시고 나름대로의 프라이버시도 지켜 주시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늘 나누어 주시곤 했다. 지내면서 이모, 이모부로 불러달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이모와 이모부껜 감사한 마음이 많이 남아 있다. 팀장님과 나, 집주인 내외 분 이렇게 넷이서 간단하게 주스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 회사에 한 번 가보자는 팀장님의 재촉에 또다시 차에 올랐다.


“한국에선 연봉 얼마나 받았어요?”


갑자기 아무 맥락 없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온 질문이어서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당시에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하기 짝이 없던 나는, 그래도 한국보단 여기서 제의 해 주신 게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며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팀장님은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인턴이라 그렇고 일을 잘하게 되면 내년쯤 연봉이 오를 거니까 1년만 한번 잘 견뎌 봐요,라고 했었다. 한국에서조차 고등학교 때 그나마 기숙사에서나 살아 봤지 완전한 자취를 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의 물가는커녕 한국 물가도 몰랐던 나는 그 말 뜻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3만 불. 3만 불이었다, 인턴의 연봉. 물론 미국 안에는 무급 인턴이 널린 데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오는 도시인 뉴욕 및 뉴욕 주변부는 경쟁이 다른 곳보다 배로 치열했기 때문에 인턴이 연봉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운이었을 것이라고 그때도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그것도 나는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외국인이 아닌가. 맨 처음에 에이전시와 일을 진행하려 했을 때, 에이전시에서도 인턴에게 ‘연봉’으로 책정해서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는 많이 드물다고 했고, 연봉을 시급으로 환산하더라도 인턴의 시급 치고는 많이 주는, 거의 최고의 조건이라고 소개를 해주었기 때문에 난 아주 낙천적으로만 생각했었다.


아무튼 집에서부터 회사는 차로 한 1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였고, 차에서 내린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우리 회사는 그 삐까뻔쩍하던 건물의 한 층도 아닌, 어떤 한 사무실 만을 세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이라기보단, 게임기가 있는 정도였달까. 그래도 사무실 하나 치고는 꽤 널찍하고 개방적인 분위기여서 사무실이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들이 다들 내 또래쯤, 혹은 30대 정도로 보여서 그런지 회사 내에 활기도 넘쳐 보였다. 다들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고 내 자리와 책상을 안내받았다. 디자이너는 회사에 나 혼자뿐이었는데도 나름대로 태블릿 펜이며 이것저것 신경을 써 주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장님이 보고 싶어 하니까 이제 사무실 투어는 이쯤에서 마치고 다시 나가자는 팀장님의 말씀에 나는 또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어, 난데, 이제 클로이 씨랑 사무실 들렀다 가. 어디로 갈까?”


아니, 난 사장님을 만난다고 들었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누구를 만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직원이랑 사장님이랑 같이 만나는 건가? 한 번에 너무 여러 명의 사람들을 만난 데다 나는 원래도 사람 이름이나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여기에 분명 한국어로 대화하는 데도 상황 파악을 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대화까지 들으니 정신이 이제는 그만 좀 놓아 주라며 나에게 애원하는 것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JFK 공항, 뉴욕 입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