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민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oe Park May 10. 2020

JFK 공항, 뉴욕 입성?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한, 생시라고 하기엔 너무 꿈같은.

비행기 안에는 늘 각자의 목적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가는 목적지는 같지만 여행을 하러 가는 사람, 출장을 가는 사람, 이민을 가는 사람, 심지어는 그 목적지 마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인 사람.

비행기에 혼자 타는 것은 처음인 데다 내리면 도착할 곳이 뉴욕이라는 사실은 비행기 내에서도 내내 꿈만 같았다. 다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 비행기에 올랐을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 기억상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가끔은 미소였다가 가끔은 울음이었다. 저 사람에게는 한국이 정말 떠나기 싫은 곳이었을까, 아니면 뉴욕에 간다는 사실에 기쁨이 북받쳐 눈물이 나는 것이었을까.

비행기에 대한 공포증은 전혀 없던 당시의 나는 -지금은 정말 웬만하면 비행은 안 하고 싶다- 14시간의 비행이 오히려 14시간 동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온 세상이 도와주는 선물과도 같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그 선물을 최대한 만끽하고 있었다.


“아가씨는 뉴욕에 왜 가는 거야?”


내 바로 옆에 앉아계신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모르긴 해도 우리 엄마 이상의 연배는 되어 보이셨다. 인턴십 하러 간다고 이런저런 설명을 드렸다. 뉴욕은 아니고요, 뉴저지로 가긴 하는데 뉴욕 하고 아주 가까운 지역으로 가는 거예요, 하하. 아주머니께선 “내 딸도 뉴욕에 직장을 다녀서 내가 이번에 딸 보러 가는 거야. 우리 아들은...” 하시면서 입이 귀에 걸린 채로 당신의 자녀 자랑을 한 20분은 늘어놓으셨다.


‘우리 엄마 아빠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교가 많거나 어른들께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사람인 나는, 공항에서 인사를 드릴 때도 웃으면서 그냥 내일이라도 볼 것처럼 별다르지 않게 안녕, 했었다. 엄마 아빠는 뭐 저렇게 신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냐고 그랬었는데. 그렇게 나를 보냈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좀 자랑스러우셨을까? 아니면 오히려 한국 사회에 적응 못하고 도망치듯이 간다고 생각하고 조금은 부끄러워하셨을까? 어릴 때 똘똘하게 자라주던 딸이, 수능으로 두 번이나 실망을 안겨드리고 그렇게 권유하시던 반수나 편입까지 마다하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디자인을 복수 전공해서 결국엔 디자인으로 먹고살겠다고 하더니, 이젠 한국을 떠나 1년 동안은 다른 나라에서 다른 하늘을 보고 오겠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는데. 아니면 혹시 이 아주머니처럼 어쩌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남들은 별로라는 기내식도 맛있게 먹고, 잠도 좀 자고 영화도 좀 보니 어느새 비행기는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진짜 미국에 온건가? 정말 뉴욕에 온건가? 가십걸에서만 보던 그 뉴욕, 영화에서 보던 그 뉴욕에? 정말 모든 표지판이 영어인 그런 나라에 내가 온건가?라는 설렘으로 나는 거의 뛰다시피 비행기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공항에 도착을 해서 온갖 영어로 된 표지판들을 직접 보니 갑자기 까막눈이 된 기분이었다. 너무 들뜨고 긴장해서 어떤 단어도 머리에 와 번역이 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로 가라는 건 대충은 알겠는데 그게 내가 해당사항에 속하는지 아닌지,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해 어떤 줄을 서 통과를 해야 하는지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정말 현지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현지인이랑 대화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내 영어를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난 오롯이 혼자였다. 오롯이 혼자였고 온전히 허당이었다.

결국 줄을 서라며 건성건성 안내하던 어떤 흑인 직원에게 내 여권의 비자 면을 펴 보이며 “Whe... where should I go?” 라며 물었고, 그 흑인 직원은 역시나 무심하게 저리로 가라며 큰 소리를 냈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졸기라도 하다가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시기라도 하면 왠지 모르게 어쩐지 눈물부터 고이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지금이라고 뭐 달라졌겠는가. 나는 눈물이 나려 하는 것을 느끼며 서라고 했던 곳에 가 줄을 섰다. 앞에 섰던 사람들이 차례로 입국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입국 심사관은 내 여권의 비자 면을 확인하고는, “Welcome to New York! Have fun!” 하며 격하게 환영을 해 주었다.


이제 짐을 찾고 공항에 마중 나와 주시기로 했던 팀장님을 찾는 일이 남았다. 일단 입국에 성공하고 나니 다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종종걸음으로 수하물 찾는 곳에 가 내 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짐이 나오자마자 두 개의 캐리어가 내 날개라도 되는 마냥 발걸음은 더더욱 가벼워졌고, 저쪽에서 낯익은 팀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전에 언급하는 걸 깜빡 했는데, 맨 처음, 아주 초반에 인턴십 준비를 진행할 때에, 마침 팀장님이 한국에 나와 계셔서 직접 얼굴을 보고 미팅을 한 적이 있다-. 아 이제 살았다. 내가 드디어 정말 여기에 왔구나. 이제야 그런 것들을 실감하면서 내 얼굴은 뉴욕의 따가운 늦여름 햇살을 양 볼로 맞이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막에서 클로이 찾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