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1 비자에서 H1B 비자로
“클로이 씨, 이제 슬슬 H1B 준비해야죠?”
회사로부터 이제 H1B를 준비하자는 말을 들었다. 이는 전문직 비자인데, 인턴의 신분이 아니라 정규직 직원으로서 회사에게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비자다. 3년짜리 비자이지만 한 번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그렇게 해서 최대 6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비자다. 물론 이 비자에는 제약이 따른다. 비자를 스폰해 준 회사 외에 투잡을 뛰거나 다른 수입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중간에 이직을 해도 안된다. 이직을 할 경우 이직한 회사로부터 다시 처음부터 스폰을 받아 비자 신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 역시 정부로부터 심사 검열을 거쳐야 한다. 어떤 회사고 어떤 규모이며 텍스는 잘 내 왔던 회사인지, 왜 이 직원이 필요한지 등 모든 것이 다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려면 변호사를 통해서 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한데, 변호사 비용은 당시 한 5000 여불 정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비용은 법적으로 회사에서 부담하는 것이며 직원이 부담하면 불법이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딱히 아쉬울 게 없고 주로 직원이 미국에 머물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아 비용을 직원에게 떠넘기는 회사도 은근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행히 내가 다니던 곳은 회사에서 비용을 부담해 주었다. 이민국에 보낼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직원 입장에서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인턴 시작 때부터 있던 J1 비자 때 자료도 다 회사에서 가지고 있어서 내가 준비할 것은 여권, 출입국 증명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만 보면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는데 사실 가장 무시무시하고 진정한 난관은 첫 관문에서부터 있었다.
“클로이 씨, 우리 기도해야 돼요. H1B 비자받는 과정 중에 첫 번째 관문이 제일 세요. 로또예요 로또.”
로또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들어 보니 1차를 무작위 추첨으로 뽑는단다. 열려 있는 자리보다 지원자 수가 많아서 가장 공정하게 뽑는 방식이라고 이 나라에서 고민한 게 로터리인듯하다고. 그래서 아무리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해도, 아무리 대학을 하버드를 나와도 이 단계에서 당첨되지 않으면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단다. 이 비자는 일 년에 한 번 밖에 신청할 수 없고, 4월 1일에 딱 문을 닫아버리고 추첨에 들어간다. 물론 다음 해에 지원한다고 해도 로터리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유학하던 유학생들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심심찮다고. 이게 그렇게 힘든 비자가 아니었는데 최근 몇 년 새에 갑자기 경쟁이 세져서 이렇게 되었다고. 클로이 씨가 지원하는 이번 연도는 경쟁률이 3대 1에서 4대 1은 되는 것 같다는 별로 달갑지 않은 멘트를 덧붙인 팀장님의 표정이 머쓱하다.
그 말을 들은 직후부터 나는 하루에도 수 백 가지의 기분을 넘나드는 마귀할멈의 탈을 쓰게 되었다. 내적으로 소용돌이치는 엄청난 몸부림과 함께. 나와 회사가 아무리 열심히 철저하게 준비해도 뽑기 운이 없으면 짐을 다 싸 들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사장님은 ‘혹시라도 안되면 그냥 남자 친구랑 결혼해버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인 말을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었지만 나중엔 좀 조마조마 하긴 하셨다는 후문을 들었다.
아, 지금까지 언급을 안 했는데 나는 당시에 미국인인 남자 친구가 있었다. 처음부터 이 사람을 언급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역시 남자 친구 덕으로 쉽게 이민 왔네’라고 생각하고 실망하거나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할까 봐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 남자 친구가 있었고, 내가 미국으로 넘어왔을 당시에는 연애 기간이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남자 친구는 꽤 자리 잡아가는 중이었던 자신의 6년여의 한국 생활을 단 며칠 만에 호다닥 접고 나를 따라 미국에 왔지만, 그거에 감동받아하며 결혼을 생각하기엔 아직 내 앞길이 더 걱정이 됐고 내가 뭘 하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그래서 당시에는 결혼을 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리고 적어도 내 혼자 힘으로(?)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발을 들이고 싶었다. 이민이 됐든 인턴십으로 끝나든. 영어도 그래서 잘했다기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을 때 이 사람을 만났다. 남자 친구가 당시에 수년 경력의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그 말은 내가 아무리 개떡같이 말해도 알아서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자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할 때가 오면 내 말이 너무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까, 이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할까 하는 걱정과 긴장감에 바들바들 떨기 일쑤였다.
아무튼 뭔가 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비자 신청이라는 것이 너무 일찍 들어가도 안 되는 거라서 1월 정도부터 준비해서 3월 말에 서류를 이민국에 보냈다. 그러고 나면 4월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로터리의 결과도 빨리 알아야 혹시라도 잘 안 됐을 때 다른 수를 찾는다며 회사에서는 프리미엄으로 -프리미엄이라고 해서 당첨에 더 유리한 게 아니라 로터리에서 당첨이 됐든 안됐든 결과를 비교적 빨리 알려주는 것인데, 추가 비용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자를 신청했다. 다행히 로터리에 당첨이 된다면, 그때부터 회사와 나를 정부기관에서 심사한다. 그것 또한 언제 결과가 나올 지에 대한 기약이 없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잘 풀렸을 경우, 나는 해당 연도 9월 1일부터 전문직 종사자의 신분으로 미국에 체류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심사가 잘 진행되었다는 통보를 받는다고 해도 마지막 관문으로 대사관에서 인터뷰도 봐야 한다. 나의 경우 J1 비자 만료 기간과 정규직 시작일인 9월 1일 사이에 기간이 어정쩡하게 비었는데, ‘Grace Period’라고 해서 J1 비자가 끝난 후 60일 정도 더 미국에 남을 수 있는 체류 기간을 주지만, 변호사 쪽에서는 혹시라도 그걸로 딴지를 걸 수도 있으니 비자가 끝나는 대로 최대한 빨리 한국에 가서 한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때가 되면 한국 떠난 지 1년이 지났을 테니 가족도 보고 올 겸.
그렇게 2016년이라는 해는 나에게 엄청나게 정신없고 소란스럽고 혼란스럽게 밝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