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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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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Park Jun 24. 2020

H1B 비자를 받다

미국에서의 나의 두 번째 신분

"클로이 씨, 로터리 됐나 보다!"


늘 어딘지 머쓱한 표정을 하던 팀장님이 왠지 밝은 얼굴로 반갑게 나에게 오셨다. 정말 운이 좋게도 로터리에 당첨이 된 것이다! 이사님은 축하한다며, 자신의 지인은 이번에 당첨이 안돼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다른 팀장님의 지인분도 이번에 잘 안 풀려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고. 정말 인생은 어디로 튀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 후 몇 달에 걸쳐 서류 심사까지 무사히 마쳤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서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받는 마지막 관문 만이 남았다. 새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시간이 흘러 이제 한국에 다녀올 시기가 되었다. 1년 전 8월 말일쯤에 처음 미국으로 들어왔는데, 꼭 1년 만인 같은 날짜에 한국으로 입국을 하게 되었다. 딱 1년을 채워서 미국에서 생활을 무사히 해 냈다니 스스로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다. 대사관 인터뷰라는 게 엄청난 긴장감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완전히 혼자 대사관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뉴저지에서 같이 살던 집주인 언니도 영주권이었는지 아니면 H1B 비자 연장 신청이었는지, 여하간 같은 시기에 비자 인터뷰를 볼 일이 있어서 한국에서 또 만나서 같이 대사관 인터뷰를 하러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오후 타임 첫 인터뷰 그룹에 신청을 해 두었다. 이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한 언니의 자신감 옆에 나는 바닥에 붙은 껌처럼 납작한 모양을 하고 긴장한 채로 대사관에 도착했다. 나름대로는 대사관 직원들이 바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 먹고 기분이 좋을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서 그 시간대를 정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대사관 직원들도 로봇이 아닌 이상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내 비자의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당시에 휘황찬란하게 머리에 옴브레 염색을 했었는데, 그 마저도 혹시나 밉보일까 봐 최대한 돌돌 말아 뒤로 묶고 나름대로 신경 쓴 듯한 정장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었다. 그리고 최대한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온 안면의 굳은 근육들을 어르고 달랬다.


"굿 애프터눈!"


다행히도 J1 비자 때에 이어 이번 심사관도 기분이 좋았는지, 책처럼 쌓아 간 서류들을 대충 스르륵 보더니 회사가 미국 어디에 있냐는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만 하고는 비자를 내주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 많은 노력과 시간과 돈을 들였다니.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앞으로의 3년은 회사에서 해고당하지 않는 한 최소한 보장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젠 인턴이 아니라 정직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심리적으로도 뭔가 회사에 좀 더 중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좀 더 깊숙이 좀 더 단단히 자리 잡아가게 되었구나 싶은 게 실감이 났다. 가족은 모여 살아야지, 하셨던 부모님도 이제는 딸이 외국에 나가서 아주 살게 될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3주간의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때의 뉴욕은 '환영해 어서 와!' 보다는 '어, 이제 왔어?' 하는 듯한 기분 좋은 바람을 살랑거려 주었다. J1 비자였을 때 뿌려 둔 씨앗이 조금 자라서 이제 흙 밖으로 싹이 보이기 시작한 것과 같은. 아직도 이방인이지만 그래도 이젠 얼굴이 익숙한 이방인이 된 듯한 그런 기분이랄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타지에서의 인생을 그려나가 볼 때가 온 것이었다. 아직 순수했고, 아주 희망적이었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뭐든지 나에게 주어질 것만 같았다. 어떠한 것이든 그 모든 게 전부 실현될 수 없다고 해도 그래도 마냥 좋았다. 그때의 내 모습은 마치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공상에 가득 찬 빨간 머리 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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