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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Park Feb 22. 2022

수많은 약속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너와 내가 만들어 둔 수많은 약속들이 가는 곳은 어딜까

다른 별이 있기라도 한 걸까?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정말 많은 약속들을 한다. 개중에 지켜지는 약속보다는 애초에 안 지켜질 약속이었거나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아직도 강력하게 기억하는 애초에 지켜지지 않을 작정으로 만들어졌던 약속들 중에 하나는, 내가 여덟 살 때 엄마가 주었던 약속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햄스터를 키우게 해 줄게.”


당시 햄스터든 병아리든 토끼든 안 키우는 친구가 없는 데다가 학교가 끝날 즈음에는 거의 매일 무슨무슨 장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학교 앞에 와서 그 귀여운 동물들로 우리를 아주 많이 유혹했던 때였다. 우리 엄마는 당시만 해도 동물은 정말 질색 팔색 하는 분이었고, 그나마 허용되는 건 짖거나 소리를 낼 수 없고, 집안을 어지를 수 없고, 사후 처리가 그나마 용이한(?) 물고기가 전부였다. 동생도 아빠도 나도 다 동물을 좋아하는데 왜 어째서 엄마 한 사람 때문에 동물을 키울 수 없는 건지. 더군다나 어떻게 저렇게 작고 귀여운 햄스터를, 어떤 모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싫어하고 거부할 수 있는 건지, 나의 어린 마음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더랬다. 아마도 엄마는 자꾸만 떼를 쓰는 나의 입을 막을 방법을 모색한 끝에, 고학년 때까지 기다리면 햄스터를 사주겠다고, 지금은 네가 너무 어려서 햄스터를 돌보기 어려우니 그때까지 기다리면 키우게 해 주겠다며 약속처럼 보였던 그 문장들을 나에게 건네셨던 모양이다. 나는 고학년이라는 말이 그래서 도대체 언제냐면서, 4학년부터 고학년인 거냐고, 그럼 4학년이 되면 꼭 사주는 거라고 약속에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정말 몇 년 동안 더 이상 보채지 않고 순진하게 3년을 더 참으며 기다렸다.

4학년이 되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이제 햄스터 사주는 거야? 고학년 되면 사 준다고 했잖아. 드디어 햄스터 키워도 되는 거야?” 하고 물었고, 엄마는 그 약속을 이미 오래 전에 기억 저 너머에 던져버린 듯했다. “내가 언제 키워도 된다고 했니? 나는 그런 적 없다.” 세상에. 나를 3년을 기다리게 해 놓고 그런 적이 없다고? 기억이 안 난다고? 여하튼 모르겠고, 햄스터는 냄새나고 밤에 시끄러워서 절대 안 된다는 말만 돌아왔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싶었으나, 얼마 후에 친구들로부터 누구네 햄스터는 자기들끼리 잡아먹었대- 하는 소리를 듣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방가방가 우리 친구 햄토리, 어디든지 달려가요 햄토리, 만화 햄토리로만 햄스터를 귀여워했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그 약속은 어디로, 어디로 가 버렸을까? 그러려고 태어난 약속은 아니었을 텐데. 기억 안 난다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충격을 받아 길을 잃었을까? 아니면 엄마로부터 상처를 받고 트라우마라는 허물을 나에게 던져놓고 사라진 걸까?


부모 자식 관계 말고도 우리는 절대 멀어질 것 같지 않던,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친구나 연인과 갑자기, 혹은 서서히 멀어지게 되는 일도 경험한다. 지금 나처럼 갑자기 타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거나, 아니면 무언가가 트리거가 되어서 9년 지기 10년 지기 절친했던 사이를 단 한순간에 끊게 되거나. “우리 나중에 아이 낳으면 유모차 끌고 같이 놀러 다니자,” “우리 할머니 되어서도 지금처럼 친하게 지내자.” 분명히 그 당시에는 어떤 약속들만큼이나 선명했던 약속들이었는데 어떤 사건이나 시간에 먹혀버린 그 약속들은? 이전 연인들과 연애할 때, 꼭 결혼할 것처럼 했던 그 수많은 약속들은? 개중에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던 약속들과, 나에게 벌써부터 지켜지지 않을 것이 확연히 보였던 그 약속들은? 남산의 그 수많은 연인들의 자물쇠들 중, 정말 지켜진 약속들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얼마나 많은 약속을  왔나? 내일부터는 운동을  거야, 다음 달부터는 미라클 모닝을  거야. 나는 이게  거야, 저게  거야.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남들에게 했던 약속들보다 우리 자신에게 했던 약속들을  많이 버리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에게 약속을 하면, 지키지 않는다고 한들 어차피 상처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자신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쉽게 약속하고 쉽게 잊어버리거나  약속들을  버린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누구나 아는 말이라는 것은 아주아주 오랜 역사 동안 - 아마도 인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우리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들이 얼마나 많았으며 얼마나 많이 잊혀왔는지, 그게 얼마나 흔한 일인지를 방증하는 것일 테다.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탓하고 벌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단지, 어느 날 갑자기 궁금했다. 이 많고 많은 약속들이, 온 인류가 이 작은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오면서 해 왔던, 지켜지지 못한 수많은 약속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 걸까? 가끔은 잊어버리려고 했던 그 약속들을 다시 지켜보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분명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은 잠시 떠돌다가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그들만의 별로 이동하는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가볍고 무거운 약속들이 이 지구에 다른 것들과 공존하기엔 이 작고 푸른 별이 그 무게를 다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그 약속들이 수놓은 은하수를 보고 싶다. 보면서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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