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싶을 뿐
올해 한 달에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써 올리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아마 내가 올해 들어 지키지 않은 계획 하나를 꼽으라 하면 바로 브런치가 될 거다. 브런치에 한동안 글을 올리지 않으면 작가님을 보지 못했다면서 아쉬워하는 푸시 알림 같은 것을 보내오곤 한다. 참 좋은 장치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 글을 쓰기 위해 와 있는 공간인지라, 그 꿈을 놓을 것 같을 때마다 한 번씩 와서 옆구리를 찔러 주고 가는 느낌이랄까.
오늘은 이런 메시지가 왔다. "작가님, 지난 글 발행 후 구독자가 3명 늘었어요. 그런데 돌연 작가님이 사라져 버렸답니다 ㅠ_ㅠ 기다리도 있는 독자들에게 작가님의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
사라졌다니.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고 여기에 아직 있다. 희미하긴 하지만. 재미있게 살아보겠다고 당차게 시작했던 2022년이, 어쩐지 우울한 얼룩으로 번져가고 있어서 잠시 그 뒤에 숨은 것일 뿐이다. 이따금씩 사라지고 싶은 마음에 주말을 통째로 잠으로 보낸 적도 있다 - 사실 지금도 하루를 통으로 잠으로 보내고 겨우 반짝 정신이 잠시 들 때 쓰는 글이다.
분명 재밌고 신나는 일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실 올해 도전해보고 시작해 보기로 한 것들 중에,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도전을 하고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애석하게도 브런치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작년 이맘때쯤과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훠-얼씬 더 객관적으로 더 나아졌고 더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맞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이 너무 길을 잃었다. 가끔은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초연한 힘을 발휘해 겨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겨우 겨우 가 닿으면, 주말만을 바라 온 인생의 주말이 갑자기 어두운 잠으로 뒤덮인다. 그러고 정신 차리면 또 월요일.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하고 있는 일, 직장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게 꿈의 직장인 줄만 알았던 곳이, 너무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꿈같던 시간은 꿈만큼이나 짧았다.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일한 지 2년쯤 되어가니 아무래도 이 회사를 떠나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직이라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제 경력 좀 쌓이고 좀 겪어봤다고 내 눈높이에 맞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찾기가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오퍼가 온 곳도 있었지만 내가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거절했고, 원하는 조건이 맞지 않아 더 이상 진전이 없거나, 어떤 곳들은 나를 거절했다. 이직 준비를 시작하고 인터뷰를 본지 아직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건만, 그동안 이 회사에서 버티다시피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자꾸 더 조바심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그냥 일은 일일 뿐이지 너 스스로를 거기에 꼭 투영할 필요는 없다고. 사실 개인적으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루에 8시간, 주 40시간이라는 인생을 할애하면서 보내는데 어떻게 일이 그냥 일 뿐일 수가 있지? 어떻게 스스로가 자신이 하는 일로부터 분리될 수가 있는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 그렇게 버티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렇게 시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내가 디자이너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쪽 사람들은 하고 싶은 분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그쪽으로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들 축에 속하니까. 그 점에 있어서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이로부터 얻은 무기력증은 나를 점점 더 사라지기 쉬운 가루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자기 일을 하자니, 겁 없이 훌렁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결혼도 했고 내야 할 빌 (bill)도 많다. 갑자기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를 하자니, 보험비가 비싼 미국에서 감히 회사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엄청난, 정말 엄청난 일인 것이다. 살아나갈 길,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온 가지의 경우의 수를 지금 다 겪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럴 바에 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벌어볼까 싶어 주업 외에 파트타임 일을 잡아볼까 생각도 하고 인터뷰도 봤지만, 역시 재미없는 일은 하고 싶지가 않다. 너무 고집이 센 탓일까? 나는 자꾸만 점점 더 사라져 갔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본 것 중에 스스로를 응원하고 취미 삼아해 볼 겸 아주 작고 개인적인 유튜브 채널을 하나 팠는데,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고 오만 생각이 다 들어서 그런지 대본이 점점 산으로 가는 추세다. 영어로 제작하고 있어서 대본을 수정해 주는 남편 몫이 더 커졌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자리 잡고 그 자리에 꾸준히 있는 것은 역시, 그 일이 무엇이든 생각했던 것보다 에너지가 더 들어가는 법인가 보다. 사라지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사라지지 않으려고 힘이 더 들어가는 것 같다. 지금 이 글 역시 산으로 가는 게 느껴진다. 과연 업로드를 할 수 있을까? 이 산만한 글을 올리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아마도 업로드 후에도 나는 고민할 것 같다.
어쨌든 사라지고 싶어서 사라지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한없이 작은 우주먼지 같은 존재니까 잠시 숨어서 쉬어가는 것일 뿐이다. 숨어서 계속 뭔가를 사부작 거리며 꼬물대어 보기로 했다. 너무 개인적인 일기 같은 느낌의 글들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이 맞을까 싶어 고민하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때,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할 수도 있고, 남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 이런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말이다. 누군가 이런 누추한 모습의 나를 담은 글을 읽고, 뾰족한 답을 얻지는 못하겠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위안이나마 얻을 수 있다면.
이제 이쯤에서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는, 너무 오글거려하며 내려버릴지도 모르는 글을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조금은 어설픈 모양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