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행복은 멀리 있다.
이제 이쯤 되니 해당 분야에 그럴싸한 경력이 쌓였고, 전문직이고, 그래서 인터뷰(면접) 하자는 회사들만 스무 군데가 넘었다. 개중에는 연봉이 내 기준과 맞지 않아 거절한 곳이 몇 군데, 중간에 회사에서 포지션 자체를 없애거나 채용 보류를 정한 곳이 몇 군데, CEO가 물개 박수를 치며 당장 오퍼를 줄 것처럼 했다가 엎은 곳이 또 몇 군데 있었다. 인터뷰를 요청해 놓고 사라진 회사들도 몇 군데 있었고 - 아쉽게도 회사가 잠수 타는 경우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나의 멘탈은 너덜너덜해졌다. 다른 친구들은 다른 직종이기는 해도 그래도 결국엔 이직에 성공했다. 나만큼 파란만장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디지 않고 잘들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그들을 응원했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지만, 내 인생을 도대체 왜 이럴까? 아니, 이렇게까지 안 풀린다고? 싶은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매일 울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났다. 아니, 예전에는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또르르 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엉엉 울게 됐다.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누가 내 이름을 단 저주 인형을 만들어서 열심히 찌르며 저주하는 게 아니고서야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같이 우는 남편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 가득이다. 매일 쓰는 모닝 페이지는 벌써 몇 권째, 우울한 얘기들만 가득하다. 공책에게 미안해질 정도다.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두통과 소화불량, 수면장애 등등을 일으켰다. 잠을 제대로 자 본지가 벌써 반년이 지났다.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풀풀 풍기기도 싫어서 대충 잠수를 타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가깝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는 그나마 사정을 자세히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죄책감이 들어서 최근에는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된다는 건 정말이지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나라서. 그리고 이미 한참 징징대기도 했고. 잘 풀리는 그들을 보면 몰래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그 질투심은 다시 스스로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고 그랬다. 그래서 은둔과 잠수를 택했다. 그래서 그룹채팅의 알람을 꺼두었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점점 더 철저히 혼자를 택하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다.
누구는 그랬다. 그래도 직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남편도 집도, 사랑하는 반려견도 있으니, 그렇게 못나기만 한 상황은 아니지 않냐고. 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나를 동기화시키고 그 일에 열과 성을 다해 일과 함께 나도 같이 성장하는 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에게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었음을 깨달은 이상, 그 어떤 다른 것들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이쯤에서 고통이 없는 결정을 하고 싶었다. 무(無)의 상태가 된다면. 이 세상을 뒤로하면 더 이상 이런저런 것들로부터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혼자였다면 이미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트라우마를 남겨주는 건 안될 일인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행복이 이렇게 멀리 있는 건지 몰랐다. 새삼 깨달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을 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행복은 저 멀리 있다. 소확행 같은 건 약발이 너무 짧아서 별 소용이 없더라. 하지만 몇 달을 울며 힘들어하며 지내다가 오늘 아침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길을 가게 해주려고 우주에서 힘을 써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굳이 돌아가려고 하는 나에게, 그 돌아갈 길들을 다 막아주고 내가 가려고 했던 길대로, 비틀대더라도 걸어가 보라고 나를 일부러 더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동안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빙-빙 돌아서 '언젠가는', '언젠간', 했던 것들을 이제 도망가지 말고 해 보라고 나를 더 벼랑 끝으로 밀고 있는 게 아닌지. 사실 이런 신호(?)들을 전부터 느껴오긴 했었다. 다만 무시하고 싶었다. 현실적인 것들이 나를 두렵게 했다. 자본주의의 꽃인 미국에서 살면 그런 것들이 더 크고 위압적이게 느껴지니까.
'미쳐야 미친다'라고. 어쩌면 이제 한 번 미쳐볼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이 멀리 있게 된 건, 자꾸 돌아가고 미뤄 오던 내가, 나 스스로가 행복을 저 멀리 보내 놓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 먼 행복을 찾기 위해서 나는 여정을 떠날 때가, 드디어 그때가 된 게 아닐까? 비록 이 여정이 아주 길고 또 나는 길치라서 자주 길을 헤매겠지만. 자주 넘어지고, 자주 길을 잃고, 자주 포기하고 싶어 지고, 자주 울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이제 이 여정을 시작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떡상이 일어날 팔자는 아니라는 느낌이 확 오지만, 그렇다고 쭈구리처럼 미루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기력하게 지내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로 숨쉬기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뭔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다가 얼마 후에 또 모든 게 싫다며 울게 되더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래도 혼자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까지 인생이 안 풀릴 일인가 싶은 사람이 그래도 이 세상에 나 혼자는 아니라는 게 아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행복이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고 애써 없는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 대신, 나의 행복이 저기 멀리 있구나 인정하고 같이 각자의 여정을 떠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