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들이 예술형이라던데
콤플렉스를 말해보라고 누군가가 말을 건다면 나는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 더 빠르게 몇 가지를 당장 나열할 수 있다. 콤플렉스라면 말하고 싶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당장 우다다 몇 개 쏟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개중에, 그 와중에도, 그러니까 내가 차마 말하기조차 부끄럽게 느껴지는 콤플렉스 중의 콤플렉스 두 개가 나를 늘 소심하게 째려보고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내가 오른손잡이라는 것이다.
오른손잡이? 왼손잡이로 서럽게 살아 본 사람들이라면 배부른 소리 한다며 환장할 노릇이겠지만 나는 내가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이 어릴 때부터 싫었다. '예술가들은 왼손잡이를 타고난다', '왼손잡이들의 뇌가 오른손잡이들의 뇌보다 훨씬 더 예술성을 가졌다'는 말을 처음 접했던 그 언젠가부터.
좀 억울했다. 나도 연필을 쥘 줄 알 때부터, 내 기억으로는 그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운명이라 믿었는데, 왜? 나에게 1999년부터 지금까지 단짝친구인 내 친구 S가 확인사살이라도 시켜준 듯했다. 우린 어릴 때 같이 그림을 그리고 글 쓰고 노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 애만큼 잘 그리거나 잘 쓰지를 못했다. 그 애는 왼손잡이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대 입시와 무관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지만 그 친구는 어엿하게 홍대 미대를 졸업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대기업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고. 이 모습을 이십몇 년째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왼손잡이로 태어나지 못한 나는 왠지 억울한 거다.
사실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 가족 중에도 있다. 바로 하나뿐인 남동생이다. 우리 엄마 아빠는 첫째인 나에게 본인의 모든 걸 다 쏟아부으시고(?) 여섯 살 터울인 내 동생은 거의 방목하다시피 키우셨다. 그래서 더더욱 내 동생이 어느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 녀석도 그림을 그린다 싶으면 대상의 특징을 금방 잡아서 곧잘 그려오고는 했다. 다행히(?) 그 애는 그림에는 엄청난 취미가 없는 것 같아, 나는 잠시 한눈을 팔았다.
그런데 춤을 잘 추네?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혼자 이리저리 춤 연구를 하더니 여기저기서 공연도 하러 다녔다. 본인 학교뿐만 아니라 남의 학교까지 불려다더니 급기야 소속사에서 연습생 제의가 들어왔다. 사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사기는 아니었고, 데뷔 직전까지 갔다가 동생 본인이 납득 못하는 일이 생겨 마지막에 팀에서 탈퇴를 했다(해당 그룹은 그대로 데뷔를 했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 데뷔 9년쯤 되는 것 같다). 그러더니 대뜸 독학으로 입시를 해서 한 번에 서울예대에 들어갔다. 남들은 춤으로 입시 학원을 다녀도 떨어지는데 그저 한두 달 혼자 이것저것 해 보더니 한큐에 합격이라니. 이 녀석도 왼손잡이다.
사실 왼손잡이의 비애(?)를 어릴 때 꽤 많이 보며 자랐다. 동생이 왼손잡이라서 고생 깨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초등학교에서 아무리 왼손잡이라도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게 하라며 동생이 오른손으로 글씨를 쓸 수 있게 지도해 달라고 부모님께 안내가 왔다. 어릴 적 동생은 뭔가 뚝딱뚝딱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때문에 왼손잡이용 가위도 따로 준비해야 했고, 밥을 먹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어느 쪽으로 자리를 앉을 것인지 매번 신경 써야 했다. 분명 그거 말고도 많았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들은 건 왼손잡이들이 실제로 겪었던 생활에 비하면 우리 집 몰티즈 몽룡이의 발톱의 때만도 못하겠지....... 오죽하면 왼손잡이에 관한 노래도 발매되고 말이다. 누가 보면 나는 배부른 멍청이 정도로 보일 테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른손잡이의 특권을 쥐고 태어났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왼손잡이가 아니라는 것이 콤플렉스라고 말하기에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리라. 오른손잡이가 어떻게 감히.
그리고 그 동생은 그렇게 춤 전공자로 춤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려나 싶었더니만 갑자기 혼자 영상을 독학해서 지금은 영상디렉터로 살아가고 있다. 어린 나이에 비해서 경력이 좋아서 불러주는 곳도 많다. 영상 기법이나 기술적인 지식이야 공부한다고 쳐도, 어떤 영상미를 만드느냐는 본인의 예술적 감각의 영역이 아닌가? 그걸 이 아이는 또 해내고 있었다. 그 예술의 혼이 깃든 왼손으로다가. 어떤가. 이만하면 왼손잡이에 대한 내 치졸하고 옹졸한 질투심과,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가지지 못할 그 특화된 뇌에 대한 선망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이게 내 두 번째 콤플렉스다. 예술가들은 올빼미형이 많다고들 하지 않는가. 아침은 보다 이성적인 시간이고 밤은 감성이 머무는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고 밤 아홉 시면 비몽사몽이다. 반면 내 동생은 올빼미다. 왼손잡이에 올빼미에, 이것이야말로 유전자 몰빵 아닌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나의 남편마저도 올빼미다. 올빼미와 일찍 일어나는 새의 결혼이라. 왜 내 주위는 나 빼고 다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났다는 말인가? 왜 나는 둘 중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났는가?
나는 후천적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사는 중이다. 올빼미가 되어보려고 노력했지만 그건 헛수고였다(바보 같아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만큼 절박했다).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의 발전으로, 다행히(?) 요 몇 년 동안 오른손잡이 아티스트들을 멀리서나마 많이 접하게 되었고, 일찍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하며 갓생을 살아가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인터넷 만세! 웹 2.0 만만세!). 이제 나는 두 가지의, 내가 아티스트일 수 없다는 가장 큰 두 가지의 핑계를 용감하게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콤플렉스라는 카테고리에서 빨간 줄을 그어 목록에서 제외시킬 때가 오고야 만 것이다. 나의 이 지긋지긋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갖다 버릴 시절이다.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할 시절이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고마운 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같이 그림을 그리며 놀던 친구들 중에 아직도 그림을 그리는 친구는 거의 없다. S도 그림을 놓은 지 오래였다가 최근 들어 간간이 그리는가 싶더니 한동안 또 멈춘 듯하고, 여기 미국에서 알게 된 다른 디자이너 친구들도 꾸준히 그리는 친구는 없는 것 같다. 이전에는 그럼에도 그들이 어쩌다 한 번씩 그릴 때마다 장인의 작품이 나오는 것 같고 어차피 나보다 더 잘 그리는 것 같아 주눅이 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스스로가 제법 대견스럽다. 타고나지 못했음 어때,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나는 벌써 이만큼 와 있잖아. 그리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확실하니까.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 아침형 오른손잡이 아티스트 계의 한 획을 그을 날이 오지 않겠어? 굵은 획이든 얇은 획이든 말이다. 꾸준함이 나의 재료가 되어 멋진 그림을 그릴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그렇게 살기로 정한 이상, 나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이미 살고 있다.
나는 아티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