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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Park Sep 09. 2022

적극적이지 않아도

그래도 살아지더라

        어릴 적 나는 꽤나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나서기를 좋아하고 리드하는 것을 좋아했다. 늘 자신감이 넘쳤다. 그대로만 자라났다면 아마 지금쯤 가장 세상 살기 쉬운,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살아야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는다'고 했을법한 그런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지금? 지금은 아마 거의 180도 반대쪽으로 와 버린 것 같다. 주목받거나 리드하거나 회의에서 목소리 높여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장과정에서 나의 기가 죽을 법한 이런저런 트라우마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꼭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넘어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깟 트라우마쯤이야(?) 대충 잘 접어두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일 거라는 걸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변해서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이 모습이 내가 오랫동안 나도 몰래 숨겨왔다가 조금씩 드러난 진짜 모습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 아무리 그래도 외부의 요인도 있고 뭔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겠지.




    여하튼 나는 남들의 흐름에 그다지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지 못한다. 회사에서의 단합대회나 회식도 정말 가까운 친구가 된 직장 동료가 있지 않은 한 참여하기가 꺼려지고, 내가 95% 이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회의 중에 목소리 높여 이야기한다든지, 하다못해 패션 트렌드마저도 궁금해서 들여다 보기는 해도 막상 따라가지는 않는다. 내 삶은 뭐랄까 - 이마트나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마트보다는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그것도 아주 작은 로컬 어느 가게쯤인 것 같다. 요란하게 홍보하거나 이벤트 없이 조용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요즘 브런치에서 볼 수 있는 '트렌드'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일 것이다. 브런치 북을 기획하고 그 기획 의도에 맞게 10편 이상의 글을 쓴 뒤 발간하면, 응모한 사람들 중에서 선정된 작가들에게 꽤 큰 액수의 상금과, 또 어쩌면 출판사들과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 기회까지 준단다. 언젠가 책을 내 보는 게 남 모르게 숨겨둔 꿈인 나에게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해 볼 만한, 솔깃할 만한 '트렌드'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요즘 내 기준에선 생각보다 꽤 자주 이곳에 글을 쓰고 있으니 마음먹으면 - 아, 물론 선정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 해 볼만한, 타 볼만한 물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민하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론은 역시 내 페이스대로 하는 게 더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얽매여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 가며 한다는 건 지금 지긋지긋해하며 다니고 있는 회사만으로 족하다. 어차피 나는 본인이 해이해지는 꼴을 잘 못 보는 사람이라 스스로가 이미 세워 놓은 것들에 맞춰 살기에도 바쁜데 여기에 다른 틀을 또 얹는다는 건 - 어후, 역시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지금 브런치 말고도 이것저것 혼자서 벌여 둔 것들이 있어서 머릿속도 시끄럽잖은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뭔가, 응모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다면, 정말 쓰고 싶어서 쓴다기보다 상금이라는 목표 때문에 나답게 쓰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에잇, 다 필요 없고, 이 마저도 그냥 준비가 안된 스스로에 대한 핑계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트렌드에도 적극적이지 않게 되었다.


내 브런치는 전혀 그래픽 디자이너의 브런치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소박하고 소극적이다. 그럴싸한 사진이나 여타의 '편집 디자인' 없이 그저 글만 줄줄이 써 내려갈 뿐이다. 그렇게 불친절할 수가 없다. 이렇게 소극적일 수도 없을 것이다. 최소한의 것만 남겨 놓은. 브런치 계의 미니멀리스트 대회가 있다면 내가 금메달이라도 딸 수 있을 것 같다. 한두 번 이미지를 넣어 보기도 했지만 역시 왠지 모르게 가공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만두었다. 이럴 거면 직업란에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쓰지 말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뭐, 이곳이 디자인 실력을 뽐내자고 있는 곳은 아니고, 그게 아닌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디자인하려고 브런치에 온 건 아니니까. 이런 나여도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런 불편한 곳까지 오셔서 이런 불친절한 글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크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얼마 전 어떤 이유에선지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성격이 이렇게 바뀌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곳 생활이 힘들 것이라면서, 발랄하게 자신이 어떻게 성격을 고쳐 왔고 지금 얼마나 활발하게 지내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영상이 떴다. 내성적인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고 네트워킹과 사교활동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소리 높여 얘기해야 하는지를 열심히 얘기하더라. 사실 미국의 반은 내성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말이다. 조용한 사람들도 그들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유튜버는 아직 모르는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적극적'이지 못한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시끄러움이 강조된 세상에서 조용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아니, '살아남는' 방법은, 특별한 비장의 무기나 카드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래도 살아지더라'가 아닐까? 대외적으로는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나름의 틀 안에서 살아나가고 싶은 모양으로 삶을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빚어내고 있는 중이다. 겉보기에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으쌰 으쌰 하는 사람들이 성취하는 것이 많아 보인다. 아마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그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물론 속도가 좀 더디거나 더뎌 보일 수는 있다. 남 보기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조용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죽은 물고기처럼 그냥 흐르는 물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오래도록 잔잔히 타는 잔잔바리 불꽃일 수 있을 것이다. 꾸준히, 요란스럽거나 소란하지 않아도 꿋꿋이 또박또박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 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우리 스스로라도 좀 더 대견스럽게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괜찮다고. 남들보다 좀 더 조용하고 소극적이라고 해서 그게 마치 극복해야 하고 바꾸어야 할 문제처럼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크고 화려한 것들에 눈이 쉽게 가지만 사람들이 결국 '클래식' 한 디자인으로 돌아가는 것도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일 수 있지 않을까? 조용히 세심히 다듬은 디자인이 얌전하고 심심해 보여도 더 강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조용히' 앉아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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