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면서
나는 학창 시절에 전 과목 성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좋아하지 않은 과목은 분명 있었지만, 모든 과목이 두루두루 괜찮았다 (화학 빼고... 오.. 나는 화학은 그냥 포기해야만 했다).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소위 기타 과목들에도 흥미를 느꼈다. 기술 가정, 미술, 음악, 중국어, 도덕/윤리와 사상, 경제, 사회문화... 오히려 주요 과목에서 틀렸을 때보다 기타 과목에서 감점이 생겼을 때 마음이 더 아팠달까.
학교에서 추진했던 각종 "대회"들에서도 입상을 많이 했다. 그리기 대회, 글쓰기 대회, 논술대회, 등등등... 엄청 천재적으로 뭐 하나가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루두루 나쁘지 않게 해냈었다. 그리고 다 진심으로 공부하고 참여했던 것들이라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자연스레 나의 관심사 목록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이런 성향은 대학생이 된 나를 경영학과와 시각디자인학을 복수전공을 하는 길을 걷게 했다 (심지어 비실기자로서 시각디자인을 복수 전공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교양 과목에도 엄청난 재미를 붙였다. 상충되는 시간표를 가진 경영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를 어떻게든 해 내기 위해 어떤 학기에는 교양수업을 몰아 들었어야 했는데, 그때 한 과목이 A, 나머지 과목이 전부 A+ 학점이 나오는 불상사(?)마저 벌어졌다. 아빠가 '전공이 교양학일 수는 없냐'는 농담을 던지셨던 기억이 난다.
한데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느끼기 시작한 것은, 나는 뭐든지 두루두루 잘 하긴 하는데 뭐 하나를 천재적으로 잘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경영학과 친구들은 나를 미대 공부 하는 애로 봤고 (난 경영학과로 입학했는데도 말이다), 시각디자인과에서는 나를 '경영학과라는 별'에서 온 외계인 정도로 생각했다. 양쪽 교수님들도 나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차석은 한 적이 있지만 수석은 한 적이 없고, '쟤는 저거 하나는 진짜 기깔난다'고 할 만한 것도 딱히 없었다. 그냥 뭐든지 어느 정도는 하는 애. 아 물론 누가 그렇다고 나한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점점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쑥쑥 잘도 커 갔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려고 할 때도 뭔가 이것저것 다 조금씩 할 줄 알고 두루두루 흥미가 있던 터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디자인 쪽에서도 어떤 쪽으로 가고 싶은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작년 한 해 동안 이직을 준비하면서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고. 나도 나였지만 고용시장에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어느 정도 하는 사람보다는 한 분야를 확실히 우월하게 할 줄 아는 사람들에 대한 수요가 더 높은 듯했다.
지금 일 년이 넘게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도 같은 선상에 있는 것 같다. 촬영, 편집, 내용 다 어느 정도는 괜찮은 것 같은데, 뭔가 남들을 사로잡을, 확 끌어당길 뭔가가 부족한가 보다. 숫자들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기교(?)나 노력 없이 그저 자기가 그림 그리는 과정만 대충 편집해서 업로드해도 그림 자체가 너무 멋져서 구독자 수가 많은데, 나는 그런 한 방(?)이 없는 건가 싶다. 사실은 이마저도 내가 예술 영역 안에서도 많은 것들에 다리를 걸치고 있어서(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 오일파스텔, 연필, 클레이 아트, 다른 스타일의 그림들, 사진, 그리고 글까지...) 헤매고 있는 중이다. 다 어느 정도는 하는데 누구나 '와' 할 만한 경지에 이른 것이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중 하나만 집중해서 파고들기에는 잘하고 싶은 게 너무 많기도 하고. 이해는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 억울하기도 하다. 물론 이것저것 다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런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런 뒤죽박죽 섞인 비교와 열등감이 나를 괴롭히는 와중에 문득 이런 반항심 어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자산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면서 왜 재능은 하나에 올인해야 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아주 상투적인 말이 있지 않은가? 자산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재능도 자산이 아닌가? 어쩌면 물질적 자산보다 더 중요한? 이것도 저것도 다 어느 정도 하면 뭔가 더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야? 요즘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라고들 하지 않는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여러 개라면 뭔가 행복의 크기도 더 커야 하는 게 아니냔 말이다. 나는 이제 그 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만 골라서 한 가지에만 쏟아부으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건가? 그러다가 그 하나가 정말 죽어라 안 될 땐, 그땐 너무 늦어버렸으면 어떡하지? 그때 길을 정말 완전히 잃어버리면? 이런저런 걱정과 답답함에 멘토가 있으면 좋을 텐데 싶다가도 또 어차피 내 인생이고 내가 결정해야 하고 내가 사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럼 또 답을 모르겠고, 도돌이표의 연속이다. 이것저것 다 어느 정도만 잘해서 그것들을 조합했더니 이만큼 큰 성공을 하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마저도 모든 것을 '어느 정도만' 잘한 게 아니고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이 더 캄캄해졌다.
자아 찾기를 한답시고 어린 시절의 나는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하고 싶었나를 돌아보던 중,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갖지 못했던 게임보이 컬러를 사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렇게 친구들이 많이 하던 포켓몬 게임을 이십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와서 하는 중이다. 이 게임에서는 포켓몬을 많이 잡아서, 대결(?) 시에 열심히 경험치를 쌓고 레벨 업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포켓몬들을 골고루 레벨업 시키는 게 한 포켓몬만 주야장천 집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듯했다. 이거 봐! 여기에서도 자산(?)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고 골고루 성장시키잖아! 어쩌면 이게 포켓몬 게임을 타고 나에게 온 메시지인 걸까?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하기로 한 이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다 해보자, 뭐! 시간이 많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매일매일 온 신경으로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이것저것 많이 끼워 넣어서 나의 하루하루는 사실 내가 직장 일을 할 때보다 더 바쁘다. 아침 다섯 시 반 전에 일어나서 남편 출근을 돕고 아침을 먹은 후 여섯 시부터 오후 네시 반, 늦게는 여섯 시까지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들이 빼곡하다. 의심이 많고 걱정도 많고 겁도 많지만, 관심 부자/취미 부자인 스스로를 열심히 신나게 지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일 테다. 이 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 어떻게 고르지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불안해하면서 보이지 않는 생각들보다, 볼 수 있는 행동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한다. "나도 저래 봤는데 안되던데?" 하기보다는 부지런함 속에 아직 숨어 있는 게으름을 마저 좇아내 보려고 한다. 은근한 귀차니즘은 직장 일을 할 때에나 허용되었던 것이고, 이제 나는 그것을 저리 치워버려야 할 테다. 대신 쉬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확실하게 쉬어 주기로. 마음대로 될 일이 몇 개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개수가 몇이 되더라도, 결과가 어떻더라도 즐겁게 해 주기로. 언젠가는 내가 여기저기 담아둔 내 달걀들이 내가 필요한 때에 하나씩 영양분이 되어 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나는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질 테니,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최상급 달걀을 여러 개씩이나, 여러 바구니에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스스로가 황금 알을 낳는 닭이 되는 그날을 목표로 하루하루, 하나하나 다 진심으로 쌓아 나가 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삼십여 년 동안 타온 물살이 있고, 파도와 날씨를 견디며 운행해 온 배의 방향을 하루아침에 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좀 무거운 짐들은 이제 바다에 떠내려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두려움, 죄책감, 자기혐오, 불안함, 조바심... 무겁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녀석들이라 들어 올리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마음 근육을 키워 들어 내 보기로 한다. 믿음이라는 돛을 새로 달고 파도에 가끔 물 먹더라도, 가끔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더라도 언젠가는 저 물마루에 가 닿기를. 나만의 가물지 않는 바다에 도착하기를. 이 세상과 지겹게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