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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Park Aug 10. 2023

퇴사 두 달 차, 커닝을 그만 두기로 하다

황금기가 될 것인가 암흑기가 될 것인가

혼자가 된 지 꼬박 한 달이 (벌써) 지나고 두 달 차에 접어들었다. 남편도 있고 강아지도 있으니 '혼자'라는 표현이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커리어 상으론 혼자가 맞다.


한 달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혼자가 된 첫날에 내가 느꼈던 혼란과 길 잃은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도 갑자기 브랜딩이 필요한 친구가 있어서 그 작업을 둘째 날부터 도와주게 되어서 첫 2주간은 혼자인 듯 혼자 같은 혼자 아닌 상태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자연스럽게 (?) 나의 길로 갈아탔던 것 같다.


하루하루 아주 바쁘게 보내고 있다. 남을 위해 일을 해 줄 때보다 더 바쁘다. 남편이 추가 근무를 하고 오는 날이면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 반 - 일곱 시까지 나 혼자인데도 그 시간마저 모자라다는 느낌이 있는 날도 있을 만큼. 뭔가를 늘 바삐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수입이 아직 없어서 그렇지.

그래, 그게 크긴 했다. 매주 내 은행 계좌로 꼬박꼬박 들어오던 숫자들이 정말 자취를 감춰버린 것을 믿기가 좀 힘들었다. 충격이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진짜로 돈이 안 들어오네. 세상이 주는 겁을 그대로 확 먹어버린 것이다. 와, 진짜 나한테 이런 상황이 왔다고? 자의로 스스로에게 이런 상황을 만들어 준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진짜로 이렇게 되니까 덜컥 겁이 난 것이다. 마음속에는 '지금이라도 일을 다시 할까? 꿈이고 나발이고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독백들이 가득 차고 있었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렸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너무 상투적이고 너무 이상적인 말이라서 나는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았고, 실제로 30여 년간 - 아니, 어릴 적 10년 정도는 긍정적으로 살았으니까 20여 년 간은 누가 그렇게 말해도 "응 아냐" 혹은 "뉘예 뉘예" 하고 넘겼더랬다. 마음가짐이 바꿔봤자 뭘 얼마나 바꾼다고.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을, 그 유치한 말을 한번 믿어보려는 중이다. 다른 것은 믿을 게 남아있지 않거든. 이거라도 믿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에게는 종교도 없어서 정신적으로 어디 의지할 곳도 없으니 나 스스로라도 믿어야 하지 않겠냐는 심산인 거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잖은가. 그리고 그런 나 자신도 마음먹은 대로 바꾸기 쉽지 않고 말이다. 아마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프로젝트겠지만.......


얼마 전 친구들로부터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들었다. 누구는 오랜 시도 끝에 드디어 임신이 된 것 같더라, 누구는 드디어 첫 직장을 얻었다더라, 누구는 일을 그만두고 좀 쉬면서 가정에 충실하며 살기로 결심했다더라, 누구는 둘째를 가졌다더라 등등. 그래봐야 서로 간에 몇 년 차이도 안 나는데 인생이 이렇게 다 다른 방향을 향해 간다니. 새삼 사람 머릿수만큼이나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왜 스스로가 불안하고 답답했는지에 대한 많은 이유 중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동안 나는 그래도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다 비슷한 방향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구나. 사람마다 다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깨닫지는 못했구나. 나는 나 역시 그 방향과 속도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커닝하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변화무쌍한 상황에 던져진 나를 보고 당황하는 거구나.' 하물며 평생 같이 인생을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한 지붕 아래 같이 살고 있는 남편마저도 나와는 아주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건데, 그럼 나는 어디를 기준으로 가고 있었던 거지?


나의 인생은 나만이 써내려 갈 수 있는 거고 세상에 남기고 갈 고유한 스토리인데 자꾸 엉뚱한 곳에 초점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뻔한 얘기지만, 새삼스럽지만 이런 생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게다가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들과 가족들까지 덤으로 있다. 이건 또 얼마나 행운인지. 걱정이라는 얼굴을 내세우며 오지랖을 부리거나 다그치는 사람 없이 다들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있는데, 나는 스스로를 응원하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거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안 그래도 많은 생각이 더 많아지게 되어 한 달 전쯤부터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 앱을 하나 깔아서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인데, 어느 날은 내레이터가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당신은 오늘도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명상을 했습니다. 그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칭찬해 주세요." 명상은 고작 5분짜리였는데도 스스로를 돌본 나를 칭찬하라는 그 말이 생각보다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그 후부터는 스스로에게 작은 일이라도 칭찬해 줄 일이 있으면 아끼지 않고 예쁜 말들을 퍼부어 주려 하고 있다. '와, 나는 두 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네? 대단하다!', '와, 오늘도 하려고 했던 일들을 다 해냈네? 멋지다!', '와, 오늘도 30분이라도 운동을 했네? 대견한데?',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건 참 감사할 일인 것 같아.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이렇게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건 아무나 하지는 못하는 거야. 근사한데?', '나는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암흑기이자 공백기로 남길 것인지, 아니면 황금기로 만들 것인지는 나에게 달렸다.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지만 하루하루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그리고 내가 그렇게 원하는 모습의 내가 언젠가 되어 있겠지. 어디에 배치되어 있을지 모를 나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오늘, 지금, 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려고 한다. 불안과 걱정이 가끔 나를 삼키려 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스스로를 진정으로 보살피는 시간을 창조해 내는 요즘이다. 2020년부터 조금씩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나에게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고, 여기까지 오는 데 3년 걸렸다. 스스로를 챙겨줘 본 적이 없이 달리기만 했어서 나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아직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조금 더 천진난만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과 기회들을 '인생 황금기의 시작'으로 빚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2023년 8월의 어느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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