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정상

by Chloe 슬기

회사에서 무료로 심리 상담을 해준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가 뜻밖의 큰 수확을 얻었다.

몇 번의 상담 후 선생님은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성향이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게 큰 것 같다며, 이런저런 상황에서 시각을 약간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도구들을 제안해 주셨다. 그중에서도 매번 목표를 위해 백 프로 이상을 쏟다가, 결국 “Okay I made it here. Now what?” 하고 느끼는 허탈함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목표를 세울 때 달성해야 하는 “골” 대신 궁극적인 “가치”를 향한 흐름을 잡는 것. 이를 위해 먼저 가치를 찾는 숙제를 했다.


1. 아주 작은 단위의 여러 가지 가치 (예를 들면 가족, 열정, 건강, 지위 등)이 적힌 리스트 중에서, 나에게 와닿는 것들을 고른다.

2. 분류 작업: 나에게 소중한 또는 내가 행복을 느끼는 가치 vs 다른 사람을 위해서 또는 내가 가지고 있어야만 된다고 느끼는 가치를 솎아 낸다.

3. 전자의 리스트 중 가장 중요한 3가지를 뽑는다. 나만의 가치, 즉 내가 앞으로 바라봐야 할 정상.


당연하고 별 거 아닌 연습인 것 같지만, 2번에서 머리가 끊임없이 던지는 자기 합리화 대신 내 욕심과 위선을 내려놓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했다. 하다 보니 나는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데 꽤 도움이 됐다. 내가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들 중 그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고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것들이 이리도 많을 줄이야..


그렇게 우선순위가 생기고 뭔가를 이루기보다 가치를 실행하는 것에 더 집중했다. 그러자 한정적인 리소스 안에서 어떤 일에 완벽을 가해야 하는지 앞가림이 제법 늘었다. 하고자 했던 게 끝났을 때 허무함 대신 성취감이 더 컸다. 그다음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길을 잃는 일도 줄었다. 긴 여정에서 하나의 퀘스트를 깼을 뿐, 그냥 같은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내딛으면 된다. 원형 트랙을 뛰는 대신 등산길을 걷게 됐다고 해야 할까?


뚜렷한 가치는 의외로 일상에서도 잘 써먹을 수 있다. 머릿속에서 두 개의 생각이 대립할 때 또는 감정에 휘둘릴 때 “내 가치와 어떻게 정렬되는가. 아니면 가치를 희생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러면 생각보다 답이 명확해진다.


가끔씩 내 가치 순위가 바뀌진 않았는지 나침반도 점검하고 변수를 만나면 흔들리는 대신 잠깐 재정비도 하고. 그렇게 조금 더 내가 주체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라는 정상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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