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풀고 싶은 문제

by Chloe 슬기

미국 테크 업계에서 일하며 늘 듣는 질문이 있다. “이 제품이 세상의 어떤 문제를 푸는 것인가”. 미션 중심적인 자세와 스토리 텔링이 특히 중요한 곳이다. 우리 회사의 미션은 전 세계 인재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문제들을 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름 프라이드를 가지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여름, 작은 수술을 했다. 이것저것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 내가 한순간에 훅 갈 수도 있다는 게 불안했고, 배에 힘주는 운동을 하지 말라는데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선 한 달 동안 몸을 안 쓰고 가만히 있는 것 또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느 때와 같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달랠 겸 산책을 하고 있었다. 느릿한 걸음에 생각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가 멈칫했다. 고작 나도 이런데, 이 세상에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데드라인을 지킨다고 밤늦게 일하고 피 터지는 회의를 하는데, 그들에 비하면 내가 매일 풀고 있는 문제들은 콩알만 하게 느껴졌고 나는 쓸 모 없는 위선주의자가 된 것 같았다. 다 정리하고 그냥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가는 게 더 의미 있을까? 근데 또 내가 의사도 아니고 간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있긴 한가.


한동안 고민하다가 현실적인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받은 수익을 작지만 매달 의미 있는 곳에 보태보기로. 고심 끝에 처음 고른 곳은, 소아암 병원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은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였다. 그런 인생을 고른 것도 아닌데 속수무책 행운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작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를. 이제야 조금 더 세상을 바꾸는 문제를 푸는 느낌이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은 하지 못했지만 세상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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