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대하는 자세

by Chloe 슬기

몇 년 전까지의 나는 여행을 갈 때 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었다. 다시 못 올 것처럼 보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끼워 넣어야 하고 교통수단 대신 대부분을 걸어 다니기 때문에 뚜벅이 동선에 맞게 장소들을 모아 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날씨나 오픈 시간 등도 중요하다. 결국 1일 차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빼곡히 정해진 일정이 생긴다.


한 번은 엄마와 오스트리아 여행을 갔는데, 유럽을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가는 게 처음이라 기대하는 엄마께 나는 최고의 여행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나처럼 하루 3만보를 걷기 힘들 테니 중간중간 어디서 대중교통을 탈지, 앉아서 좀 쉴 만한 카페가 많은 구역은 어디인지, 예쁜 길로 지나가고 위험한 동네는 피해야지, 하는 마음에 구글맵에 수많은 핀을 꽂고 스트릿뷰까지 봐가며 일정표를 짰다. 가보기도 전에 이미 여행 다녀온 것처럼 피곤했다. 막상 가보니, 은근 구경할 게 많아서 한 곳에 오래 머물기도 하고 생각보다 볼 게 없어서 기차 시간이 붕 떠버리기도 하고 찾아놓은 음식점이 너무 맛이 없을 때도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난 다음 계획 생각에 조급하여 현재를 온전히 느끼지 못했고, 엄마는 내가 짠 계획을 존중해주고 싶어 내 눈치를 보셨다. 아, 이게 뭐 하는 거지- 결국 나에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엄마는 딸이랑 단둘이 한 유럽 자유여행을 8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좋았다고 자랑하시고, 나는 조금 미안하다.


이제는 여행하는 방법이 많이 바뀌었다. 혼자 가거나 여러 곳을 찍는 것도 좋은 여행이지만, 누구와 어디서 어떤 순간을 보냈는지가 더 소중해진다.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보고 함께 나눴던 시간들을 마음속에 새기고 나중에 그때 들은 음악만 나와도 찰나를 생생하게 추억할 수 있는 게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다. 좋았던 곳 또 가야지- 하며.

여행이란 꼭 작은 인생교육 같아서, 내 컨디션이라던가 예기치 못한 날씨나 잘못된 정보 등 변수들을 만나고 그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일의 연속이다. 다녀올수록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파도타기처럼 흘러가는 대로 또 나름의 즐거움을 찾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다시 엄마랑 여행을 가야겠다. 물론 습성이란 것 때문에 아무런 계획 없이 가는 건 못하겠지만, 이번엔 "엄마와 내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주가 되는 "그냥 그 도시 스며들기" 여행을 하고 싶다.

이전 10화깊이 묻어둔 조기유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