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군인"이었다. 매일 정확히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운동하고, 출근하고 등의 아침루틴으로 시작해 회사에서의 하루, 퇴근길, 자기 전까지 시간별 루틴은 물론이고 퇴근 후 할 일과 취미생활도 요일별로 정해져 있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어릴 때도 똑같은 시간에 먹고 자고 놀고 숙제하는, 늦잠을 자거나 개근상을 놓친 적이 없는 규칙적인 어린이였다고 하니 아마 날 때부터 이런 성향이었나 보다. 잘 다듬어진 규칙과 예상 가능한 생활이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완벽해지고 싶은 욕심에 루틴이 점점 과해지고 빡빡해질 때마다, 그걸 지켜내려는 강박만큼 나를 갉아먹는 게 없다는 걸 여러 번 몸소 체험하고 이제는 조금 더 유연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스트레칭 대신 침대에서 조금 더 늦게 나오기도 하고, 루틴을 해내지 못한 나를 자책하기보다 내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루틴이 주는 힘을 믿는다.
언젠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가 자신이 게으름의 늪에 빠지고 세상과 권태기가 왔다고 했다. 직장인인 나는 출근해서 내가 할 몫이 정해져 있지만, 친구는 창작이란 분야가 시간을 많이 들여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뭘 해도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때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루틴생활을 제안했었다.
정해 놓은 루틴대로 조금 지내다 보면 내가 나와의 약속을 매번 지키며 살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머리가 복잡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에도 다음 루틴을 지키기 위한 원동력이 생긴다. 때로는 성과는 적더라도 나는 할애한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는 조금의 안심을 주기도 하고, 가고자 하는 목표를 정해놓고 만든 루틴이라면 매일 조금씩 꾸준히 나아가게도 해준다. 그리고 이 것들은 "나는 해내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으로 돌아온다.
몇 달 뒤 친구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계획형이 아닌 그 친구도 이 기분을 느꼈던 듯하여 뿌듯하다.
최근에 점점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 나도 생활계획표를 재정비했다. 다시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의지가 솟았으니, 뭐라도 해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