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의 캐나다 워홀을 마무리하며

혼자 감내해야 할 마음에 대하여(March, 2025)

by 심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외국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캐나다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한국으로의 귀국만을 남겨 놓고 있다. 지금은 혼자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친구들을 만나고 지내다 보면 어쩌면 또다시 잊어버릴 것 같은 지금의 마음과 이곳에서의 나의 경험들을 한 편의 글로 다할 수 없겠지만 담아보려 한다. 친구의 말대로 나는 영어공부는 핑계고 도피성 워홀이 99% 정도가 맞았다. 다만, 그걸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그걸 인정한 순간 내가 나를 한없이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홀로 2024년 4월 밴쿠버로 입국했다.


Hello, Thank you, Sorry, I don't know. 아마도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였던 것 같다. 결국 다 같은 사람인데도 입을 떼어내기가 참으로 무섭고 어려웠다. 그런 내가 처음에는 어쩌자고 대비 없이 무작정 입국하려 했으나 그래도 어학원을 다니는 것이 워홀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조언을 받아들여 3개월 간 현지 어학원을 다녔다. 첫날 영어로 수업을 반나절 듣고는 기가 빨려 근처 성당에 가서 가만히 앉아있었던 것이 벌써 1년 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지만, 2시에 어학원이 끝나면 캐나다 플레이스와 다운타운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걸었다. 매주 수요일 Conversation Club에 가서 똑같은 자기소개만 N번째를 거듭하고, 이후 점차 활동범위를 늘려 무료로 운영되는 모든 Activity에 참가하며 노스밴쿠버의 딥코브 등산을 하고, 잉글리시베이 비치에서 비치발리볼 흉내를 내보고, 놀이공원도 다녀오는 등 다양한 체험을 하고 덕분에 Activity 담당자 친구에게 좋은 곳들을 많이 소개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인 친구들은 "절대" 사귀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이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인 친구들과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렸다. 사실 처음 일본에 대한 약간의 적대감에 망설이기도 했으나, 마음이 제일 잘 통하는 친구들은 같은 아시아계열인 일본인 친구들이었다. 편견이었으나 발음도 문법도 뛰어난 일본인 친구들과 그렇게 열심히 활동들을 참여하고 공부하며 조금씩 영어 실력을 키우는 듯했다.


3개월의 어학원 생활 중 단 3일의 결석이 있었는데, 그중 하루는 시애틀로 대학선배가 출국하는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바로 버스표를 끊고 당일치기로 언니를 만나고 온 것이었다.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호주워홀의 경우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려 영어가 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반면, 캐나다는 다양한 인종이 있어 인종차별이 심하지 않고 주변 국가를 쉽게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는데 처음으로 그 장점을 체감한 날이었다. 미국을 이틀 전에 계획해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는 것에 놀랐던 하루였다. 그리고 영어권 나라가 처음이었던 내가 그렇게 대담하게 미국행 버스를 끊고 육로 국경을 혼자서 넘나들었다는 것에도 아마 조금은 놀랐던 것 같다. 나머지 2일 또한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밴프여행을 다녀온 것이었다. 일본인 친구들의 경우 워홀 비자보다는 코업 비자가 많았고 그에 따라 랭귀지 스쿨을 졸업하고 나면 일주일의 휴식 기간을 가지고 바로 컬리지로 넘어갔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의 선 제안에 일본인 3명과 한국인 2명 여행 멤버가 정해지고 영어로 계획을 세우고 의견을 맞추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밴쿠버에서 밴프까지 우리는 렌터카를 끌고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 다녀오기 전의 나는 렌터카를 끌고 밴프를 다녀오는 것이 멋있고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으나 우리는 쉬는 시간을 포함해 편도 13시간의 밴쿠버-밴프 여행을 성공해 냈다. 중간중간 체력적 정신적 힘듦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캐나다의 모든 친구들에게 밴프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할 만큼 자연만큼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그래서인지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났던 여행이었다. 그렇게 처음 3개월 간 급번개로 다녀온 두 여행은 내가 캐나다에서 워홀을 하면서 여행은 기회가 될 때 떠나야 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7-8월쯤 밴프를 계획했던 나는 어학원이 끝나고 잡을 구하는데 급급해졌고, 이후 한인마트에서 주 5일 일을 하며 3박 4일 여행을 할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었다.


모든 처음 해보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쉬운 일 하나 없었던 어학원 3개월은 결과적으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학원 졸업 후 금방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일자리는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다. 아마도 이미 시작된 성수기에 로컬잡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학원을 다니며 일을 구했더라면 조금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학원 수업과 숙제를 핑계로 일을 함께 다닐 수 없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많았고 파트타임으로라도 일을 시작했다면 어학원에서 배운 영어들을 실생활에서 써보며 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2-3주 동안 레쥬메만 돌리다가 로컬 잡을 포기하고 한인잡으로 눈길을 돌리자마자 나는 마침내 잡을 구할 수 있었다.


어학원을 제외한 9개월 동안 한인마트 Grocery 담당, 로컬 카페(2일뿐이었지만), 한식당 서버, 푸드코트 프런트잡 총 4개의 일을 경험했다. 한인마트의 경우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함께 일한 팀장님과 점장님이 워낙 공과사가 분명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전혀 주지 않는 분들이었기에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 재고정리를 하며 구매담당자 직무에 대한 관심을 갖기도 했다. 추후 주 이동을 결정하며 2개월 만에 그만두긴 했으나 그때 점장님께서 일을 잘해서 그만두는 게 아쉽다며 붙잡아주시고 추후에 종종 팀장님께서 안부연락을 주시며 돌아오라고 해주실 때마다 뿌듯함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로컬 카페의 경우 주 이동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잠시라도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으나 카페 경험이 없고 생각보다 바쁘고 정신없는 곳에서 트레이닝만 2주를 받고 또다시 2주 만에 그만두는 것은 서로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정말 맛보기만 한 곳이 되었다. 토론토로 넘어와서는 밴쿠버보다 비싼 교통비에 도보거리의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또 이곳에서는 팁잡을 해보고 싶었기에 한인 잡을 구하는 한이 있더라도 서버 위주로 지원을 했고 정확히 주이동 일주일 만에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한식당에서 서버를 하며 사장님의 폭언으로 굉장한 마음고생을 했지만 일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기에 쉽게 그만둘 수 없었고 좋은 동료에 힘입어 6개월을 버텨냈다. 동갑내기 서버 친구가 아니었다면, 주방 식구들과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힘든 걸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란 생각에 그들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꼈다. 스케줄 변동성이 큰 한식당 서버잡이 나의 통장을 불안하게 만들 때쯤 로컬 푸드 코트 프런트 잡을 타이밍 좋게 구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네팔, 방글라데시,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다. I love salad로 인터뷰를 보고 시작한 샐러드바는 나에게 토론토 제일가는 맛집이 되었고 마지막 한 달 동안 한국 귀국 소식을 듣고 아쉬움을 전한 코워커들과 마담, 미스터 차이가 있어 행복했다. 이곳에 좋은 타이밍으로 들어와 고정시프트를 늘리면서 다양한 국가의 코워커들과 유대를 나누고 틈틈이 마담이 해오는 음식을 나눠먹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아무리 바빠도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모든 경험들이 소중하고 좋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렇게 어린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음에 아마도 가장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걸맞은 잡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 1년 워홀을 하며 홈스테이, 셰어하우스, 스튜디오, 콘도 다양한 숙박 경험을 했다. 이 역시 계획에는 없던 일이지만 밤늦게 도착한 홈스테이의 내 방은 넓고 큰 창들이 있고 외국의 집이 이런 거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마음에 쏙 드는 방이었다. 필리피노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들과 인사도 주고받고 함께 놀아주며 좋은 시간도 많이 보냈다. 점점 빈약해지는 식사와 5 식구가 10 식구가 되어 8명이서 화장실을 공유해야 하고, 여름이 다가올수록 낮에는 방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탓에 급하게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지만 워홀을 처음 보내며 나의 첫 외국살이를 경험하게 해 준 홈스테이였다. 그리고 다운타운에서 서브웨이로 30분 거리였던 랑가라 그 동네는 홈스테이를 떠나고도 놓치기가 아쉬워 홈스테이에서 차로 5분 거리, 도보 20분 거리였던 같은 동네 셰어하우스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주방에서 먹고 싶은 걸 실컷 해 먹고 친구들을 불러 라운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해 준 최고의 집이었다. 근처의 센터에서 헬스를 하고 수영을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도 안락하고 평화로워서 나의 소개로 함께 살게 된 일본인 친구와의 저녁시간이 소소한 행복이 되었던 곳이다. 주이동으로 1달 연장이 불가해지면서 밴쿠버의 마지막을 다운타운의 스튜디오로 이사 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나는 그 셰어하우스를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고, 넓은 방에 책상과 퀸사이즈 침대가 있고 작은 옷방이 딸려있는 그곳의 분위기가 아직도 포근하게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밴쿠버에서 마지막으로 한 달 정도 머물렀던 다운타운의 스튜디오는 비록 한 방안에 주방이 함께 있고 두 명이서 함께 지내야 했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도심에 사는구나를 느꼈던 곳이다. 도보로 스탠리파크로 조깅을 다녀오고 카페든 식당이든 걸어서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편리함을 느꼈던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토론토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오랜 기간을 머물렀던 콘도는 한 달 먼저 토론토로 입국한 친구의 꼼꼼함 덕분에 다운타운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24시간 운영되는 짐과 스터디라운지가 있는 내가 머물렀던 그 어떤 곳들보다 가장 도시적이고 입지가 좋은 곳이었다. 돈을 내고 헬스를 다닐 필요도 없고 굳이 커피를 사서 카페에 자리할 필요도 없었던. 그리고 한국에서부터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친구와 함께 했기에 친구의 친구가 나의 친구가 되고, 나의 친구가 친구의 친구가 되어 집에서 맛있는 것들을 해먹은 시간들 또한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주었고, 일에 치여 지친 나를 즐겁게 해 준 곳이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이 먼 곳까지 큰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와 준 친구들도 있었다. 밴쿠버로 출국을 하기도 전에 비행기표를 끊었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밴쿠버 6개월 차 내가 계획에 없던 토론토로의 주이동을 하기 직전 시애틀 인 밴쿠버 아웃으로 8일간 함께했다. 그동안은 어학원을 다니고 외국에서 살아가는데 적응하느라 여행하는 마음으로는 한 번도 밴쿠버를 누리지 못한 나와 함께 시애틀과 밴쿠버 여행을 기가 막히게 즐기고 가주었다. 한국에서부터 어떻게 될 줄 알고라며 걱정했던 나를 믿고 밴쿠버로 넘어와 준 친구들에게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준 친구들에게 여전히 고맙고 한국에서도 늘 모여서 영상통화를 걸어주고 챙겨주는 모든 나의 지인들에게 더더욱 감사함을 느끼는 한 해였다. 그리고 아직 오진 않았지만 마지막 토론토 여행을 함께해 줄 20년 지기 친구도 이제 정말 곧 온다는 것에 기대와 벌써부터 아쉬움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친구와 셋이서 20년을 넘게 함께하며 외국여행을 가자고 모임통장을 만든 지 4년 만에 워홀러 2명과 여행자 1명의 신분으로 토론토 여행을 하게 되었다. 늘 생각하고 얘기하지만 정말 어느 하나 같을 것 없는 성격의 세명의 친구들이 초등학교에서 만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와 직장생활을 지나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여전히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토론토의 마지막을 함께 해 줄 두 친구들에게도 미리 고마움을 느끼며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1년 캐나다 워홀들을 되돌아봤을 때 위의 나열된 것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되돌아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열심히 일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많은 순간순간 일로 인한 체력적 힘듦과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힘든 시간도 참 많았다. 그리고 나는 이 힘듦을 때로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그리고 자주, 많이는 연인인 남자친구에게 털어냈다. 홀로 워홀을 왔다고 했지만 애초에 혼자서 온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정말 뒤늦게, 이제 돌아갈 날만 남겨두고 있는 이 시점에 들기 시작했다. 밴쿠버로 입국한 그날부터 나는 사소한 힘듦을 혼자 감당해내지 못했고 그런 나의 힘듦이 스스로 이겨내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게 될 것들을 주변사람들에게 짊어지게 함으로써 그들을 지치고 힘들게 했다. 그리고 너무 뒤늦게 깨달은 지금은 그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실은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나의 힘듦을 봐달라고 나의 짐을 나눠가져 달라고 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 쌓여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동안 나는 여전히 나만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태껏 눈치채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걸 알게 된 지금 어쩌면 이미 타이밍을 놓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르나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은 나의 마음을,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마음을 충분히 되돌아보며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들을 가져보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