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영희 선생님의 <내 생애 단 한번>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롤 모델을 영어 사전으로 찾아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역할 모델이라는 뜻이 가장 먼저 나오고 그 뒤를 이어 나오는 의미가 (존경하며 본받고 싶도록)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
존경하며 본받을 점이 많아 사회에 귀감이 되고, 보다 거리를 좁혀서는 나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인물. 살아오면서 가슴에 품고 본받기를 주저하지 않는 당신만의 롤 모델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의 롤 모델은 누구인가?
롤 모델이라 불리는 인물은 개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저 마다의 신념에 따라 저명한 유명인사나 위대한 리더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의 부모님 또는 지인들 중에서 존경하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새 와서야 롤 모델이라는 세련된 영어로 회자되는 인물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에 우리가 초중고 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서 적어오라던 그 존경하는 인물의 줄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마치 누가누가 위인전을 더 많이 읽었나 내기라도 하듯이 서로 앞다투어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라이트 형제나 파브르 등의 위인들의 이름을 외쳐댔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 역시 에디슨, 헬렌 켈러, 정약용..
그때그때 읽었던 위인들의 이름들을 올리던 시절을 지나왔는데 한 살 두 살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유구한 역사 속 위인들의 이름에도 무뎌져 가며 존경하는 누군가를 품기보다는 더 큰 부와 더 큰 성공을 이뤄낸 누군가를 좇아가듯 앞만 보고 달리던 나만이 남는 것 같았다.
대학을 다니며 오후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어김없이 방학이 오면 백화점과 팬시 전문점을 오가며 하루에도 아르바이트를 2개씩 뛰어다녔던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무언가 내 생애 단 한번 성공이라는 놈을 잡아보자라는 생각에 간절히 매달려 있었고 젊어서는 사서도 한다는 고생이기에 이렇게 땀 흘리는 노동의 경험 역시 쌓이고 쌓이면 무언가 더 큰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정신적으로 가 아닌 물질적으로써의 성장을 이루면 그게 마치 성공인 줄로 알았던 것 같다.
진정한 성공이 무엇일까? 희망은 왜 자꾸 어디로 숨어 버리는 걸까?
'내 생애 단 한번'은 삶에서 위험과 불행은 잠복해 있는 게 당연한 것이니 이에 맞서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불패의 정신으로 살아가야함을 희망으로 들려주는 장영희 교수님의 자전적 에세이다.
지금은 저 하늘 에서 우리를 보고 미소 짓고 계실 故 장영희 교수님. 실로 장영희 교수님은 서강대 영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고, 선친이신 故 장왕록 박사님과 함께 중고교 영어교과서를 집필하신 문자 그대로의 '선생님'이셨다.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에 찾아온 장애로 그녀는 소아마비 1급을 판정받았다. 이 장애 앞에서 그녀 역시 흐느꼈고, 좌절했다. 장애가 그녀를 삼켜버린 시절도 있지만 그녀의 꿈까지 삼키지는 못 했다. 목발을 짚었다는 이유로 박사과정은 물론 학부 학생으로도 장애인은 받지 않는다는 불평등의 기준에 의해 거절을 당했지만 비이성적인 잣대 앞에서 좌절이 아닌 고된 도전을 선택했고 당당히 강단에 섰던 그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거부당하던 킹콩이 바로 자신이었다'라는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회고하면서도 '진짜는 아파도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으며, 살아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며' 살아간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그렇게 본인 역시 장애를 딛고 스스로 부딪히는 용기를 몸소 실천하려 끊임없이 노력하셨다.
그녀가 마주했던 세상과 그 세상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과 마음.
나는 서강대 영문학과 학생도 아니고, 한 번도 그녀의 얼굴 한 번 뵌 적 없지만 그분의 마음들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그녀의 에세이를 읽어 내려가며 이 분의 행간 속에서 내가 이 분의 학생이길 바랬고 나 스스로 그분을 나의 '인생의 선생님'으로 모셨다.
내가 가진 것이 다른 이에 비해 적다는 사실에 세상이 너무나 춥다고 느끼던 내가 만난 달큼한 군 고구마 같은 책 한 권. 내가 만난 선생님의 이야기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오늘 하루를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따뜻한 온기같았고, 세상을 마주하는 나의 시선의 크기를 조금 더 넓게 해 주는 선생님 그 자체였다.
끈을 잇고 살아가는 모든 인연과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희망과 용기의 씨앗을 찾아내던 선생님의 이야기는 내가 가진 아픔과 슬픔이 이 세상 제일 큰 것인 양 처져있던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서른 중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 인생의 성공이 무어냐 묻는다면, 이제는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며 타인의 삶에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이가 되는 것' 이라 말하고 싶다.
이제와 다시 나에게 존경하는 인물이, 롤 모델이 누구냐 묻는다면, 그 질문에 나는 일각의 망설임 없이 장영희 교수님의 '내 생애 단 한번'을 들리라.
'... 나는 결코 은미와 같은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고,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울프나 이장희 같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앞으로도 매일매일 내가 읽는 훌륭한 작가들의 재능을 부러워하고 나의 무능을 한탄하며 영원한 '가작 인생'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색빛의 암울한 겨울을 견뎌내고 고개 내미는 새싹에서 희망을 배운다. 찬란하게 빛나는 저 태양에서 삶에 대한 열정을 배운다.
화려한 꽃향기를 담은 바람에서 삶의 희열을 배운다.
백합 향기에 취해 죽기보다는 일상의 땀 내음 속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 생애 단 한번, 어느 가작 인생의 봄 중에서.
그녀가 노래한 희망과 열정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