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케네디의 스릴넘치는 꿈 찾기 여정 <빅 픽처>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던 변호사 벤 그리고 한때는 벤과 절절한 사랑을 나누던, 작가가 되고 싶었던 벤의 아내 베스. 뜨거웠던 사랑은 차갑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증발되버리고 부부는 서로 등을 돌아서버렸다.
식어버린 베스의 마음을 새롭게 채워준 사진작가 게리, 세 명의 등장인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빅픽처>
자신이 아닌 게리 앞에서만 여성으로 분하는 아내의 외도를 알게된 벤은 분노 속에서 게리를 찾아가고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러나 곧, 우발적이었던 살인의 결과는 뒤덮음을 위한 충분히 자의적인 완전범죄를 꾸미게 만드는데..
변호사의 삶을 살며, 언제나 사진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벤은 가족을 포함한 이 세상과의 절교를 결심하고는 그 자신이 게리로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자신의 진짜 이름인 벤을 버리고 게리로 다시 태어난 벤은 그토록 자신의 가슴 속에서 용트림 솟던 자신의 꿈. 사진을 마음껏 찍으며, 예상치 못한 사진작가로서의 성공 가도 길을 걷는다. 그는 성공에 가속도가 붙을수록 자신이 게리가 아닌 벤 이라는 감춰진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까 전전긍긍하고, 결국엔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게리로서 아니, 게리가 아닌 벤으로서 앞으로의 날들을 어떻게 채울지 고뇌한다.
그렇게 소설은 벤과 베스의 연애시절 부터, 식어버린 부부 관계,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벤의 살인, 게리이자 벤이었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존재의 예기치 않은 성공, 그리고 또 다시 예기치 않게 찾아온 그의 위기를 그린다.
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매우 담담하게 토해내며 쉽게 쉽게 읽히는 문장들에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책에서 쉽사리 손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빅픽처는 마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행적을 좇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이 소설은 책이 출간된지 3년 후 프랑스에서 영화화 되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머리를 해머로 맞은 듯한 놀라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빅 픽처>의 이야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와 결말로 읽는 이의 마음에 흥미진진 이란 단어를 심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꿈을 저버리고 사회적으로 출세의 길에 올라있던 벤이지만, 결국에는 우발적인 살인으로 범죄자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는다. 벤의 여정을 좇아가던 나의 마음 이면에는 알 수 없는 동질감이 스며들어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벤이 세상에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조심, 두근두근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내가 있었다.
그건 왜 일까? 물론 범죄에 대해서는 당연하다 말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자신의 꿈, 사랑을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잃어버린 한 사람에 대한 연민,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응원과도 같은 것 같았다.
사실, 이 세상 속에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중에서 얼만큼의 숫자가..자신의 가슴 속에 묻어둔 것들을 끄집어내어 그의 염원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우선, 이 책을 읽는 내가 그랬다. 생을 다하기 전에 언젠가는 꼭, 내가 끄적거리고 속삭이는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리라..그리 다짐하면서도, 난 작가가, 아니 작가지망생으로서도 살아가고자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없었다.
시 한 문단, 수필 몇 쪽을 쓰려고 몇날 며칠은 앉아 있지 못 해도, 회사의 보고서와 프로젝트 기획서를 쓰기 위해서는 몇 일을 밤새서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실제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임을.
내가 가슴 속에 소망 혹은 소원 처럼 품고 있는 내 꿈이 꼭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반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 역시 내 일을 좋아하고, 일에서 보람을 느끼며 일에서의 성공을 원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은둔 속에서 게리로 살아가며 자유를 느끼는 벤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내내 그가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이 사람의 마음 이란, 나는 당장 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벤이라도 그 자신의 <빅 픽처>를 먼저 그려내길 대신 응원하는 그런..마음은 아니었을까?
빅 픽처는 그냥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꿈에 대한 이야기고 그리고 계속되는 예기치 못함의 이야기다.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서 놓지 못 하게 하는 매끄러운 문장들의 연속..더글라스 케네디는 정말 유능한 이야기꾼이라며 무릎을 치게 되는 벤의 이야기.
이제 와서 가장 참기 힘든게 뭔지 아나?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는 거야.
변화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거나 다른 생을 꿈꿀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리란 걸 알면서도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인 양 살아왔다는 거야.
이제는 더 이상 환상조차 품을 수 없게 됐어.
인생이라는 도로에서 완전히 비껴난 것이지.
-벤의 물음, 49쪽 <빅 픽처> 중에서
더글라스케네디는 벤의 여정의 끝에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제 내 과거는 말끔히 지워졌다.
나는 벤 브래드포드가 아니고, 책임도 없고, 의무도 없고, 인간관계도 없다.
이제 내게 주어진 굳건한 삶은 없었다. 나는 그저 진공상태와 같은 처지였다.
질문. '지붕을 깨끗이 치웠을 때, 얻는 것은?'
답. '텅 빈 지붕'
다른 답. '자유'.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자유, 그 텅 빈 지붕과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밖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란 끝없는 무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영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