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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짙어지면 사랑이 된다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




하루가 멀다 하고 

떠난 그리움이 찾아왔다

나뭇가지에도 함부로 내려앉은 그리움들이

싹을 틔우고

무성한 잎을 자라게 하고

잎맥에 지난 추억들을 새겨 넣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이틀이 찾아오고

헤어진 이튿날에는 지독한 그리움이 찾아왔다

하루치의 품삯이 빠져버린 듯한 그런 날에는 

포장마차에 들러 말간 소줏잔에다 내 그리움을 풀어놓았다

마실수록 고독해지는 시인의 가슴 속에는

무수한 새들이 살고 있어서 언제라도 깃을 들어올리면

떠날 채비를 한다

북극으로 날아가는 새떼들에게

내 그리움을 보내주었다

이틀이 끝나가는 밤에는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서

그대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았다

밤하늘에 누가 총을 쏘았는지 총총총 박히는 탄환의 아픔들이

별꽃으로 피어나고

언젠가는 우리도 유성처럼 지상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소멸하고 말지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이란 내 청춘의 한 때를 점령했다가

쑥 빠져나가는 것

떠나고 나면 슬퍼라

하루 이틀 사흘 계속

빗물이 도랑을 만들어 기억을 지워내고 있는 중이다.











 인연





인연이라면 길을 가다가도 우연히 만나

정이 들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꽃잎 피듯

남몰래 안개를 피워올리며 혼자 젖어 들 때가 있다

사랑은 우연이라고 말하지

필연이라고도 하지

꽃잎이 지는 것

한 때의 붉은 그리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지고 마는 것

그대에게 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꽃잎들이 피고 지고

안개는 도랑을 가득 채운 채 말없이 지나갔다

창가에 일렁이는 불빛에 한숨을 내쉬어본 적도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사랑이 꿈 속에서만 나타나

허황된 약속을 하고 떠나고 나면 

그립다는 말을 가슴 속에 묻으며 돌아눕는다

혼자 우는 낮달처럼

이젠 인연이라도 놓아주어야 할 때

그립다는 말만 가슴에 새기며

놓아주어야 할 때.













옆구리를 베다





두고 온 시간 만큼 옆구리가 아팠다

질긴 인연이라도 눈물을 보이는 것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옆구리에다 눈물을 묻어놓고 왔다

가끔, 옆구리가 아플 적마다

밖에서 꽃잎이 지는 꿈을 꾸었나 보다

오래된 섬으로 가서 이젠 항해를 접어버린 폐선이 되고 싶었다

기억만 남겨놓고 떠난 사랑은 이제

사랑이 아니다

이름마저도 잊혀지기를 

밤새 기도했다

혼자 뒹구는 잠 속으로 떠난 그대가 찾아왔다

미안했노라는 말보다도 잔인한 말은 없었다

나무가 일제히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새들이 높이 날아올랐을 때

공중에서 목놓아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는가

갑자기 떠난 당신이 찾아와 옆구리에 베인 상처를

어루만졌다

떠난 사랑이 위로하기 시작했고

나는 깊은 밤의 자락을 끌어당겨 속으로

울었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니.












. 첫사랑을 찾습니다






누구에게나 뼈아픈 첫사랑은 있다

꽃잎 떨리듯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주앉은 채로 우리는 눈빛으로 수화를 하며

꽃잎 지는 밤하늘에 대하여 혹은 별똥별이 외로워서 혼자 추락하는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사랑하기에 외롭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기로 약속을 했다

황금빛 새가 날아와서 나뭇가지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환희의 아침을 맞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기도 했다

삶이 삐걱거릴 적에도 외롭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한 땀, 한 땀 땅을 기워나가듯 꽃나무를 심으며

저녁에는 새들이 둥지를 찾아 날아들 듯

넉넉한 숲그늘을 만들기로 약속을 하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만나 헤어지는 연습을 하는 이들을 보며

그러지 말자고 약속하곤 했다

섬이라도 외롭지 않을 거라고 밤하늘에다 등대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항해의 꿈을 꾸며 먼 바다로 나아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대 눈빛을 보며 둥지를 찾는 새들의 꿈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기도 했지만

꿈 속에서는 매번 떠나는 그대를 붙잡으려고 쫓아가다가

헛발을 내딛다가 나동그라지면서 눈을 뜨곤 했다

지금은 기억에서 지워져버린 채

빈 곳간으로 남아 있다

누가 가져갔을까

그 애틋했던 보물들을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니. 












광명시장에서





봉자네 순대국집에 가면 사람들의 땀냄새가 난다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맨발에서 땀냄새를 풍기며 손님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돼지머리 우려낸 국물을 막 뜨는 봉자

햇살에 눈 부신 듯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고

약간은 지린 듯한 국물에 다대기를 넣어 휘휘 젓다가

건너편에 앉아 맛있게 떠 먹는 아저씨의 앞에는 소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요즘은 여자들도 혼자서 소주를 마신다

삶이 엉켜버려서일까 키세라세라 혼자 술을 따르며

그윽한 눈빛으로 남자들을 바라보며 술잔을 드는 저 여인의 눈빛은

지금 삶을 비워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입구에 제멋대로 벗어놓은 구두들이 길게 하품을 하며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스르륵 잠이 들어버리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들어오는 사람들과 배불리 한 그릇을 비우고서 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돼지의 부속물들도 저렇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구나

방긋 웃는 돼지머리를 볼 때마다 

열심히 잘 살어라 비웃는 것 같기도 해서

비위가 상했는데 오늘 보니 돼지머리가 웃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열심히 퍼먹어라

열심히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술도 마구 마셔라

꽥꽥거리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 울부짖던 돼지의 절규가

만인의 행복을 외쳤던 것이 아니겠는가 싶어서

슬몃 웃음이 절로 난다

우리는 언제 남들을 위해 저렇게 절규해본 적이 있었던가

오늘도 봉자는 돼지가 남기고 떠난 웃음을 그릇에 퍼 담으며

돼지처럼 잘 먹고 잘 살어라 

신신당부를 하며 웃고 서 있다.










가슴에 품은 사랑





눈 먼 그리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잊어버렸더라면 좋겠다

사랑아

어디로 갈 거니

태양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는지

밤과 낮이 바뀌었다

내 그리움이 떠난 뒤로 가슴이 젖기 시작했으며

멍이 들어서 컥컥거리며 길을 걸어갈 때

달빛이 내 뒤를 따라와서 꽃잎을 뿌려주었다

떠나고 나면 텅 빈 역사 안에서 손가락을 구부리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도 떠나고

이젠 겨울만 남았네

샤갈의 눈 내리는 길목에 서서 오늘도 기다리다가

어둔 골목 안으로 들어설 때에 비로소 발 끝이 흐려진다는 것을

알았네

애꿎은 땅바닥을 끅끅 파며 왜 떠났는지에 대해서

인연이라는 말을 고이 내려놓고 떠난 이유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강가에 일렁이는 바람을 모아 가슴 속에 들이며

따뜻하게 데워주고 싶다

너라도 가슴에 묻은 사랑이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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