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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May 03. 2020

고졸인 나, 선생님이 되다 [2017 필리핀]

시골 마을에서 선생님이 된 이야기

우리동네 아이들. 참 이쁘지 않나요?

 이 섬에 온 지 어언 한 달. 나와 내 파트너는 한 달 내내 집집을 돌아다니면서 의료기반이 부족한 이 주민들에게 혈압을 재주고 아파서 치료를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에서 미리 챙겨 온 약품들로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약을 주었다. 그래서 얻은 신뢰로 인해서 사람들을 우리 교회에 참석하게 마음을 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주인 할아버지는 딸이 있는데 그분은 마을 학교에 교장선생님이었다. 가끔 심심하면 점심시간에 학교로 놀러 가 얘들과 함께 축구를 하기도 했는데, 이 시점 어느 날에 같이 저녁을 먹고서는 나에게 ‘너 우리 학교 선생님이 되어줄래?’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자격증이 없는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냐 라고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자격증은 필요 없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체육시간에 나와달라고 했다. 동네 특성상 이곳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고등학교는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통학을 해야 한다. 초등학교는 일주일에 두 번 마지막 시간이 체육시간이라고 했는데 학년마다 체육시간이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 학년 학생들이 다 같이 운동장으로 나와서 체육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가끔 아이들과 놀아줄 때마다 아이들은 내가 생소한 한국인이라 참 나를 좋아해 주었는데 교장선생님은 그걸 보고 나서는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한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체육시간이 무슨 운동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와 재미있겠는데요. 제가 할게요.’라고 말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되어버렸다. 매주 두 번씩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뛰어놀았다. 그래도 커리큘럼은 있었다.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에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가 있는데 그래서 국민 스포츠가 농구이다. 나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필리핀 경기를 직관했는데 다들 키는 작았지만 기술 농구를 하는 팀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농구를 할 줄 몰랐는데 겨우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내기하던 투 바운드 게임이 전부였다. 나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본인이다. 이 친구에게 농구를 졌다.

 시내로 나가서 축구공을 사려고 했으나 없었다. 사장님 말로는 축구공을 찾는 사람은 내가 최초라고 한다. 그래서 마닐라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축구공 하나 보내달라고. 대략 10일 뒤에 축구공이 도착을 했다. 이걸 보면 로켓 배송되는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다. 그렇다고 공 하나 던져주고 내가 메시 놀이하는 것은 아니었다. 룰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축구 룰을 알려주고 기본을 알려주었다. 심지어 중간고사에 체육시험이 존재했다. 교장선생님은 실기시험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내가 점수를 주는 대로 실제로 성적에 올라가는 것이다! 차마 잘하지 못하는데 점수를 안 줄 수는 없어서 잘하는 친구들은 100점 나머지는 다 80점을 주고 말았다.


이렇게 1학기? 내내 체육선생님을 해보았는데 아이들이 나를 잘 따라주니 정말 정말 즐거운 학교생활이었다. 그러나 2학기에는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 이유로는 무슨 자격으로 이 아이들에게 점수를 매긴단 말인가? 그것이 너무 부담되어서 고사했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아이들과 함께 즐긴다는 것은 참 행복했다. 혹자는 음악을 합법적인 마약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언제나 운동하는 시간이 ‘마약’이다. 체대 입시를 하려고 했던 것 역시 운동이 좋아서였고.


 이 시간들이 지금 돌아보면 참 행복했던 시간인 것 같다. 앞으로 언제 다시 이렇게 청춘에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될까? 코로나 19로 요즘 집콕을 하면서 참 힘든데 이런 사진을 돌아보면서 그때를 기억해 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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