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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옹 Jan 03. 2023

우울한 성인 ADHD 이야기

작심의 이심전심, 에필로그

연말연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새 해를 맞이하며 카운트다운을 하거나 보신각 종 치는 장면은 되도록 보지 않습니다. 작심한 것들은 당연히 삼일 만에 끝이 날 것이고, 미루고 미루다 다음 해로 넘길 때까지 매일을 불안하고 후회하며 자책할 테니까요.


하지만 올 해는 다릅니다. 분명히 다른 것을 느껴요.


마음먹은 일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는데, ADHD 진단을 받고 치료하면서 평범한 작업을 해내며 감격하고 있습니다. 집안일이나, 계획한 일정을 제시간에 해내는 정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울증 치료도 3개월 정도 지나니 평생을 가슴에 지니고 있던 불안과 슬픔을 다시 경험하기 싫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일단 아무 글이나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인생의 큰 변환점인 결혼, 상담을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식으로 브런치에 글을 채워나갈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에필로그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혼식을 올리던 그 해에도 불행한 신부를 자처했습니다. 겉으로는 늘 밝고 에너지가 넘쳤지만, 그 몇 배로 소모되어 나를 갉아먹던 날들이었습니다. 제 결혼식은 연말이었고 흔히 말하는 결혼식의 비수기였습니다.

새 해를 신혼여행지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싸우는 이벤트로 시작했죠. 지금도 연말연시에 그날을 떠올리면 로마의 근사한 식사라도 하고 싸울걸 후회가 됩니다.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곁에 있고, 사계절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음에도 나의 불안은 무게가 느껴질 만큼 커져 털먼지 뭉치가 되었습니다. 남편과의 다툼이 끝도 없는 평생선을 달리는 것처럼 힘이 들 때마다, 이 모든 불행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만 없어지면 모두가 잘 지내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습니다. 결혼의 자격이라는 게 있다면 나에게는 없다고 확신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같은 말도 왜곡해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기저에 깔린 의도를 마음대로 속단하고, 스스로 상처를 받고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은 내가 정신과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반기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반대의 뜻이라 받아들였죠. 그리고 내가 병을 방치하는 것에 대해 남편을 탓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시입니다. 기억하지도 못할 많은 상황들이 있었겠지요.




결혼 전까지는 늘 칭찬받는 소녀가장이었어요.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며 부모를 부양하고, 동생들을 챙기며 더 훌륭하고 착한 소녀가장이 되어야 한다고 격려받고 살았습니다. 속마음은 굳이 꺼내놓지 않았지만 남들보다 가난했고, 마음대로 소비하지 못한 순간마다 마음속으로 나 자신과 가족을 저주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사이코 혹은 소시오패스'인 걸까 생각한 적도 많아요. (가면증후군, 경계성 인격 문제까지 다 내 이야기 같았어요.)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를 다니며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면 이제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닌 건가? 기억의 가장 안쪽 방에 가둬둔 상처는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나를 천천히 묵직하게 누릅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은 그대로 거름이 되어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을 꿈꾸진 않았지만, 반전은 없었다. 세상은 그늘지고 구겨진 아이를 보듬어주지 않았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부부상담을 받게 되었고, 상담의 과정에서 나의 개인 상담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개인 심리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담을 꽤나 여러 차례하고 많은 비용을 들였으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정신과에 가게 되었죠.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나의 병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많은 변화를 체감했습니다. 이 과정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혹은 인지행동치료를 하기 위해) 이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어요.


저는 바운더리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서슴없이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는 방법을 택했어요. 익명의 보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되도록 나를 알아보더라도 모른 척해주시길 바랍니다.


병원에서는 필요한 몇 가지 검사들을 했고, 성인 ADHD와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우울증은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 안에서 살고 있었다고 해요.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ADHD 증상이 심해지고 악순환인 거죠. 회사에서도 점점 업무에 지장이 있었고, 건강도 많이 악화되어 퇴사를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먼저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상담을 병행한다고 합니다. 저는 정반대였지만 결과적으로 약물치료가 필요하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처방받은 약들이 기대하는 만큼 효과적이어서 조금 포장하자면 새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사실은 알고 있던 것 같습니다. 편견이 있었고 그 편견의 대상이 내가 되는 것을 부정했어요. 이 모든 과정의 첫 단추는 부부상담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빨리 치료를 시작했다면 좋았겠다 생각합니다.  신혼 내내 싸우는 날이 싸우지 않는 날보다 많았고, 어느 명절 연휴에 시부모님께서 서울의 서울의 우리 집으로 오시는 도중에 저는 집을 나가버립니다. (명절에 집 나간 며느리가 저..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할게요.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우울해서 근처에도 가기 싫은 사람같이 묘사가 되었는데, 실제로 저를 만난다면 웃음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늘 상대방의 기분을 잘 살피고 밝은 모습으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할 자신이 있어요. (그러니 도망가지 마세요. ㅠㅠ)


치료를 시작할 즈음 지인이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남았네요."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도중에 넘어질 수는 있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내 길을 갈 겁니다.


그저 저의 여정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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