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을 품 안에...
13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두 번째로 밟는 공항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낯설고 설렌다. 하지만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입국 심사였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영어 대사를 반복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Passport please, May I see your passport 어떻게 말을 할지 혼란스럽고 Where are you going to stay? 물으면 딸네 집 주소만 보여줘도 괜찮을지? How long will you stay? 는 3개월 체류가 문제 되진 않을지 온갖 걱정이 밀려왔다.
드디어 입국 심사장 앞 대기 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직원이 손짓하며 Korean은 이쪽이라며 우리를 별도의 줄로 안내했다. 두려움에 떨었던 그 대상 입국심사관은 보이지 않고 대신 자동 입국 게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권을 기계에 스캔하고 인식되기만 하면 바로 통과되는 시스템이었다. 입국 심사는 말 그대로 도장만 '꾹' 찍고 끝. 허무할 만큼 간단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행기에서 잠이라도 좀 자는 건데, 남편은 그걸 놓치지 않고 한마디 보탰다. 3개월 영어 공부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똑같이 통과했다며 농담 섞인 말을 던진다. 순간 민망은 했지만 우리 대한민국 여권의 위상을 확인한 것 같아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사위가 알려준 대로 Baggage Claim 라인을 따라 짐 찾는 곳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이제 남은 절차는 하나, 밖에서 기다릴 손주들을 만나는 것. 커다란 캐리어를 옮겨 수하물카트에 싣고 우리는 출구를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는데, 자동문이 서서히 열리던 그 순간, 할머니! 외침과 함께 손주가 달려왔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드디어 사랑스러운 손주를 품에 안았다. 떠날 때는 품에 쏙 안기던 아기였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몸도 커지고 키도 부쩍 컸다. 사위와 손주만 보이고 딸과 손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놀래 주려고 숨어있나 싶었는데 짐이 많아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짐을 차에 싣고 손주와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딸과 손녀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파리를 여행지가 아닌 손주들이 살아가는 집으로 오다니,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몇 분 뒤면 큰딸과 손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집 문이 열리던 그 순간, 딸이 ‘엄마, 아빠’를 부르며 다와가 우리를 꼭 안아주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마음이 여려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마음이 가는 큰딸이다. 그리고 할머니를 부르며 조용히 다가온 손녀가 나의 품에 꼭 안겼다. 떠날 땐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기가 어느새 사춘기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화상 전화로는 자주 보았지만 이렇게 직접 손을 잡고 안아보는 건 얼마만인가, 그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딸과 사위는 정성껏 준비한 프랑스식 만찬을 식탁 위에 가득 차려 놓았다. 멀고 낯선 타국에서 이제는 익숙한 손끝으로 정갈히 차려낸 음식들을 보는 순간 우리 딸이 참 많이 야물어진 것 같아 뿌듯했다. 그날 저녁 우리 부부는 파리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파리에서의 첫날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여서 더욱더 편안하고 포근했다. 사랑하는 손주들이 있어 더욱더 따뜻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