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간은 지나가지만 함께한 순간은 마음속에 남는다.”
누군가는 퇴직 후 여행을 꿈꾼다.
어쩌면 그건 긴 기다림 끝에 삶이 허락한 너무도 당연한 바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2년 전부터 손주들과 함께 ‘살아보는 여행’을 마음속에 그려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자주 얼굴을 마주했고, 여행을 함께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으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 했었다. 바쁜 일상 틈틈이 마주했던 손주들의 재롱은 우리 부부의 삶에 가장 큰 행복이고 깊은 위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딸네가 파리로 떠나게 되었고 늘 같이 하던 손주들과 일상도 멀어지게 되었다. 마침 독일에 살고 있는 둘째 딸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에 우리 부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짐을 꾸려 먼저 손주들이 있는 파리로 날아갔다. 이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평범한 식탁에 둘러앉아 손주들과 나눈 그날의 소소한 이야기들, 손주들의 등하교를 함께하면서 좁은 골목길을 걸었던 순간들, 파리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마주한 예쁜 파리의 모습들, 함께 호숫가에서 가재도 잡고 그림 같은 산책로를 나란히 걸으며 사진을 찍던 소소한 하루하루의 일상들은 정말 그곳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밤마다 잠들기 전 손녀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위로도 해주고 오늘은 할머니 옆에 내가 자는 날이라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포근히 잠들었던 우리 손주들의 모습은 지금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세 달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한식을 손주들을 위해 정성껏 만들고, 낯선 땅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고마운 딸들과 사위들을 위해 마켓을 오가며 장을 보던 그 일상들은 나를 다시 엄마로, 할머니로,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