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상으로 네 분의 심사자가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를 읽었습니다. 조금 느껴지나요? 여전히 확실하게 잡히는 건 없지만, ‘필’은 조금 올 겁니다. 뭔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흔한 말로 ‘감’이라고 하죠. 그런 감이 좀 올 겁니다. 더불어 네 분의 심사자들 역시 이 시의 미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현대시의 당선작 평을 보면 얼척 없는 이유도 많거든요. 그 역시 다음 주차에 정리해서 한번 올려드릴게요.
아무튼 오늘 심사한 네 분의 심사평은 아주 정확합니다. 그중에서도 신형철 평론가와 이문재 시인의 평을 유심히 보시면 좋습니다. 신형철이 말합니다. “이런 도입부는 분석이고 뭐고 하기 이전에 바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문재 시인이 말하죠. "누가 알겠냐마는" "말하자면" "상관은 없겠지만"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모든 형식 중에서 가장 압권인 표현이 바로 이런 형식이거든요.
당선의 이유로 언급한 표현 외에 제가 몇 개 더 뽑는다면 이겁니다. “그 기분은 누가 알까” “엎질러진 아이나 알까” 이걸 다르게 표현한다면 “ㅇㅇ은 알까?”로 쓰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가지 더 있는데 시에서 행의 어미가 ‘-지’로 끝나다가 다음 행에서 명사형으로 끝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느닷없이 “있니!”로 끝나는 형식입니다. 리드미컬하게 변화를 주는 거죠. 그리고 여기선 ‘말하자면’만 나오지만 이 외에도 ‘그러니까’ ‘이를테면’을 한번 써보세요. 시의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현대시에서 많이 봤겠지만, 그냥 일상적으로 써나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의문형인 ‘-까?’가 나오는 스타일 아실 겁니다. 이는 분위기의 전환으로 아주 그만입니다. 그러니 좀 이상하다 싶어도 갑자기 중간에서 ‘-까’로 한번 바꿔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현대시에서 아주 많이 사용하는 기술이라면 기술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신형철이나 이문재가 언급한 탈락의 사유를 한번 보세요. 말을 저렇게 해서 그렇지, 저걸 조금만 바꾸면 당선의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일테면 신형철의 탈락 사유를 이렇게 바꿔보겠습니다. 앞의 글을 다시 보자면 번거로우니 다시 한번 더 쓰겠습니다. 같이 두고 비교해 보시길.
탈락의 사유-좋은 서사를 만들어낼 능력은 없지만 재치 있고 세련된 문장을 쓰는 일 정도라면 자신 있다, 라는 생각으로 시를 쓰고 있는 응모자가 적지 않다고 느꼈다. 번듯하게 시의 꼴을 갖춘 작품들에서 그런 내심이 감지될 때면 답답함이 커진다. 자기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문장을 써놓고 그 문장이 자신이 투여한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맥락도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주어와 술어를 어색하게 연결하기만 하면 이근화나 신해욱의 좋은 시와 비슷하게 보일 거라 믿는 것일까. 소설에 비해 시가 독자를 속이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사행성 글쓰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탈락의 사유를 다르게 적는다면-「좋은 서사가 없는 밋밋함 속에서도 재치 있고 세련된 문장이라는 게 느껴졌다. 일단 시의 꼴을 갖춘 작품들에서 그런 내심이 감지될 때면 눈에 확 띄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자기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문장이기에 자신이 투여한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맥락도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주어와 술어를 어색하게 보이는 것 또한 이미지의 다변화와 낯설게 하기 측면에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고 있다.」
어떤가요? 분명 탈락 사유였지만 조금만 바꾸니까 당선 이유로 그럴듯합니까? 이문재의 탈락 사유도 마찬가집니다.
탈락의 사유-고양이와 개가 곳곳에서 출현하고 각주(脚註)가 수시로 달렸다. 다양한 서체(書體)를 동원했고, 그럴수록 문장이 길어졌다. 부모나 가족이 등장할 때는 어김없이 대화체였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분량이 길었고, 길어진 만큼 산만했다. 시를 수렴, 확장시키는 중심이 없었다. 무엇을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했다. 쓰기 자체에 대한 열정만 대단해 보였다.
탈락의 사유를 다르게 적는다면- 「고양이와 개가 곳곳에서 출현했다. 다양한 서체(書體)를 동원했고, 그럴수록 문장은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화자에 따라 시점에 따른 대화체가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길었지만, 그만큼 사유의 진폭도 크다 할만하다. 시를 수렴, 확장시키는 중심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무엇을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사방에서 모여들고 분산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응모자의 열정이 대단하다 할 수밖에.」
어떤가요? 이 역시 당선작의 사유로도 충분해 보이지 않나요? 현대시라는 게 이렇습니다. 제아무리 어렵게 보여도 실상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걸 말하고 있죠. 다만, 그 간단한 걸 빙빙 돌려서 쉽게 말하자면 말장난을 하는 겁니다. 시는 ‘말놀이’라더니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늘 말하지만 현대시는 ‘무엇’을 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입니다.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 형식이 중요합니다. 그런 형식은 어떻게 얻는지 이 역시 다음 글에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그럼, 이제 편하게 당선작을 한번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당선작이 어렵다는 생각은 안 들고 재밌게 느껴질 겁니다. 저는 시를 아주 대단한 ‘무엇’으로 보지 않습니다. 각종 글에서 시란 무엇인가? 주제로 쓸데없이 길게 설명한 글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정말 읽으나 마나 한 글이죠. 시를 잘 쓰고 싶다면 본인의 노력이야 필수고, 그 노력 중엔 알게 모르게 배우고 익혀야 할 이 같은 기술(?)도 있습니다. 그러한 기술을 어디 가서 썰로 풀 때는 고고한 문학이니 어쩌니 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잘 쓰기 위해서는 배워야겠죠. 그런 노하우를. 앞으로 여러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모든 당선작이 비슷한 방식으로 쓰이고, 비슷한 이유로 당선됩니다.
참,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이 작품은 2년 후인 2015년 '제3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으로도 뽑혔습니다. 그때 심사평은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 대해 "철학적이고 동시에 실험적이며, 단단하면서 동시에 유연한 시 세계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고 하나마나한 소리였고요.ㅎ 이제 이쯤 되면 현대시의 심사평이 아주 대단한 무엇을 말하는 게 아니란 걸 눈치채야 합니다. 말이 길었네요. 이제 진짜로 당선작을 감상해 보시길요.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
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
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
손가락을 잃은 기타리스트는 알지 흉측한 음악을 만들 바에야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는 걸
발가락이 없는 애벌레는 알지 발가락이 없으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은 곳엔 가고 봐야 한다는 걸
말하자면 비시각적 음표들의 시각적 극대화
그러나 약은 치료하기도 하는 것,
병명보다 더 많은 치료제를 잔뜩 싣고 가던 기차가 마침내 말기에 다다라 포기하고 탈선할 때
눈 내린 들판에 처박힌 기차에서 동그란 알약들이 쏟아져나올 때의 기분이란
그 기분 누가 알겠냐마는 환자들만은 알지,
환자들은 꿈속에서 거기까지 걸어가 그 약을 모두 주워 먹은 다음날 아침 병실에서 깨어나 기차의 차가운 몸을 이해하지 넘어진 채 몸을 뒤로 돌리던 기차를 이해하며 몸을 정확히 당신들 반대편으로 돌리지
현실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오늘밤 그들의 기도가 기차처럼 길어져 결국 지구를 몇 바퀴씩이나 돈 기도들의 속도가 기차를 조금씩 허공에 뜨게 해 마침내 이륙한 기차를 바라보며 철로가 난생처음으로 편안해질 수 있다는 희망,
을 품자마자 기차는 곤두박질치고
지진처럼 지축이 흔들려 복부를 강타당한 남자처럼 철로가 신물을 토할 때 신물 위로 기타가 쏟아지는 기분
그 기분은 누가 알까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꿈에서 엎질러진 아이나 알까
아무리 길게 써도 저 레일에는 모자랄 것이므로 여기서 그만둬도 상관은 없겠지만
고요한 밤, 캐롤을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버린 아주아주 거룩한 밤, 깨진 전구를 뛰어넘어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산타를 엉망진창으로 때려눕히고
지구가 한 바퀴 돌기 전까지 기타를 모두 수리해야 하는 수리공의 마음은 망가진 리프(riff)들을 밤새 고치고 있는 기타리스트밖에 모르지
너에겐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버릴 만한 그 무엇이 있나?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리는 리듬이라도 있니?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리는 리듬을 타고 비옥한 꿈속을 달리다 넘어지는 곳이 늘 절벽 앞이어서 느껴보는
아찔함, 그 뒤에 웅크리고 앉아 그 리듬을 정면으로
견뎌본 적 있니!
구겨진 리듬을 잘 펼치면 과연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을지, 무엇까지 덮어볼 수 있을지를 가늠하며 최대한 붉은 와인을 박스째 주문해
뱃속에 와인을 만 박스나 싣고 가는 기차가 오늘밤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유를 누가 이해하겠냐마는
사랑을 한 박스나 마시고도 제대로 서 있는* 조니 미첼은 이해하지, 어쩌면 술집을 이름표처럼 달고 다니다 이름을 아무 데서나 콸콸 쏟아버리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이해하지
잠시 동안의 짧고 굵은 경악과 모든 최대화에 따르는 극심한 부작용, 그때마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경적을 울리며 긴 열차 한 대 빨려들어오는 느낌, 결국 일망타진 당하고 마는 느낌을
너무 긴 문장에겐 이제 그만, 쉼표를
* Joni Mitchell, 〈A Case of You〉중에서.
** Amy Wine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