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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Oct 25. 2024

문학상) 쓸쓸함의 비결 / 박형권

어제 잠깐 동네를 걷다가

쓸쓸한 노인이

아무 뜻 없이 봉창문을 여는 걸 보았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내 발자국 소리를 사그락 사그락

눈 내리는 소리로 들은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문 밖과 문 안의 적요寂寥가 소문처럼 만났다

적요는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탱탱하여서 느슨할 뿐

안과 밖의 소문은 노인과 내가 귀에 익어서 조금 알지만 그 사이에 놓인 경계는

너무나 광대하여

그저 문풍지 한 장의 두께라고 할 밖에

문고리에 잠깐 머물렀던 짧은 소란함으로

밤은 밤새 눈을 뿌렸다


어제오늘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관하여

나직나직하게 설명하는 저 마을 끝 첫 집의 지붕


나는 이제 기침소리조차 질서 있게 낼만큼

마을 풍경 속의 한 획이 되었다

나도 쓸쓸한 노인처럼 아무 뜻 없이 문 여는 비결을

터득할 때가 되었다

실은 어제 밤새워 문고리가 달그락거렸다


문고리에 손 올리고 싶어서

나는 문을 열었다



2015 제17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먼저 이 시를 당선작으로 뽑은 심사자들의 평을 보겠습니다.


  「쓸쓸함의 비결」은 자연의 변화와 기운이 하나의 사물 속에서 감지되는 순간,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무심한 몸짓 속에 감춰져 있는 순간을 행복하게 포착한 수작이다. 이 시는 그 순간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이 광풍처럼 지나간 자리, 욕망과 희망과 기대가 사라져버린 자리에 남는 쓸쓸함이 사실은 얼마나 풍요로운 세계인가를 슬쩍 내비쳐 보여준다.


  노인이 봉창문을 여는 순간에 갑자기 생기는 안과 밖의 광대한 경계, 노인과 나를 가르는 낯선 경계,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아득한 경계들이 “문풍지 한 장의 두께”로 압축되는 과정은 음미할만하다.


  시적 자아가 사라져서 하나의 풍경 속에 조화롭게 녹아드는 희열의 경험, 세속적인 모든 것들의 가치와 의미가 무화되는 지점에 대한 종교적 미학적 원리를 한 노인이 문을 여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에서 이끌어내는 방법은 탁월하다.




  심사평을 읽고 다시 작품을 읽어보면 딱 맞는 심사평입니다. 누구라도 고개가 끄덕여지죠. 그러면서 여러분도 다음에 이렇게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런데 심사평을 볼 때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심사평은 그야말로 심사평일 뿐이라는 거죠. 당선작을 어떻게든 설명해야 하니까요.


  우선 이 작품을 보면 시가 어렵지 않죠. 그러니 독자들도 심사평을 수긍하기에 용이합니다. 심사평에 시비를 걸만한 게 1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번 작품과는 다르게 잘 읽히지 않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한번 읽어서는 잘 모르는 작품의 심사평을 읽을 때입니다. 제가 이 같은 말을 하는 이유는 심사평을 참고는 하되 맹신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당선작이 발표되면 최종심에서 탈락한 작품의 탈락 이유를 본 적 있을 겁니다. 혹시라도 본인이 그런 경우라면 탈락 이유에 괘념치 마시길 바랍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당선작은 단점이 있어도 장점만 적는 것이고, 탈락한 작품은 장점이 있지만 단점만 말하는 거니까요.


  사설이 길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쓸쓸함의 비결」의 당선 이유의 절반은 제목입니다. 여러분도 느꼈겠지만 ‘쓸쓸함’과 ‘비결’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거든요. 제목부터 시가 시작된다는 걸 이 작품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시도 드물 듯합니다. 제목만 읽어도 가슴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지 않나요? 저는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내용은 읽지도 않고 제목만 한참 곱씹던 기억이 납니다. 심사자들도 제목을 보는 순간 절반은 마음이 풀린 상태였을 겁니다. 심사자도 시인인데 이런 제목에서 혹하지 않을 자 몇이나 될까요. 작품이 기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심사자는 자신이 평소 생각하는 모든 쓸쓸함을 다 가져와서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혔을 겁니다.


  그리고 어필했을 시어나 표현으로는 ‘봉창문’, ‘OO이 소문처럼 만났다’, ‘문풍지 한 장의 두께’, ‘짧은 소란함’, ‘나직나직하게 설명하는’, ‘OO조차 질서 있게 낼만큼’, ‘~때가 되었다’, ‘문고리에 손 올리고 싶어서/ 나는 문을 열었다’ 이쯤일 겁니다. 여기서 ‘소문처럼 만났다’나 ‘짧은 소란함’은 제목과 유사한 효과를 줍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더 들자면 한 문장이 몇 행으로 이루어졌는지, 호흡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고, 행의 끝맺음이 언제쯤 명사형으로 끝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선 2연이 명사형으로 끝나면서 분기점의 역할을 하네요. 모든 시가 마찬가지겠지만, 이 시는 특히 행을 끊고 맺는 호흡에서 아주 안정적입니다. 1연을 보면 3행까지가 한 문장인데 그런 식으로 분류를 해나가면 이렇습니다. 1연은 3-1-1-2-1-1-3-2행으로 이뤄졌네요.


  숙련된 분들은 다들 이런 기조로 쓰겠지만, 초보자(?)가 가장 크게 실수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런 호흡법이죠. 4나, 심지어 5로 쓰기도 하니까요. 가장 무난한 것은 이처럼 1과 2로 나가다가 가끔 3으로 나가는 게 가장 안정적인 호흡법이라는 걸 이번 기회에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현대시는 이런 호흡법에서 살짝 빗겨나 있습니다. 그래서 운문시로 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산문시로 풀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땐 시어로서 적절한 리듬감을 줘야겠지만요.


  정리해 보면 제목의 중요성과 적절한 시어와 호흡법이 이 시의 핵심입니다. 그랬을 때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쓸쓸함은 더욱 증폭되니까요. 아마도 다른 작품에서 ‘봉창문’을 봤다면, 혹은 관념어인 ‘적요’라든가 ‘탱탱’, ‘광대’, ‘쓸쓸한 노인’, ‘비결’, ‘터득’과 같은 시어를 썼다면 낡았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낡은 느낌보다는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순전히 ‘쓸쓸함’과 ‘비결’을 합친 제목 덕분입니다.


  이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는 아래 링크 1처럼 2017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목판화」를 들 수 있습니다. 좀 억스러울지 모르지만, 이 작품 역시 「쓸쓸함의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썼대도 괜찮을 듯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죠. 목판화를 통해서 화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그런 점에 비춰본다면요.


  링크 2의 2023 제10회 석정촛불시문학상 당선작인 「침묵을 몰고 오다」 역시도 쓸쓸함과 같은 관념어인 침묵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작품도 「침묵의 비결」로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혹은 오늘 소개한 「쓸쓸함의 비결」을 「쓸쓸함을 몰고 오다」로 바꿔봄 직도 하네요. 이게 모두 우연일까요? 아니죠. 당선작을 보면서 공부하는 겁니다.


  더위도 가고 이제 가을이 오려 합니다. 사방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이제 여러분도 아무 뜻 없이 시 쓰는 비결을 터득할 때입니다. 시는 순간의 포착에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길을 걷고, 사물을 보는 훈련이 필요한 건 그래섭니다. 이 늦더위도 겨울이 오면 못내 그리울 겁니다.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을 만큼 값진 무더위 보내시길요.


링크 1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10201033312000001


링크 2 https://blog.naver.com/junwooah/22323949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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