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2014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첫 작품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입니다. 지난날 당선작을 공부할 때 가장 기억에 남기도 했고요. 대개의 당선작을 보면 최소 20행이거나 23~4행인데 반해 이 작품은 11행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죠. 그런데 어떤가요? 짧은데도 할 말을 모두 다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시는 다 말하지 않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는데 말이죠.
이 작품에서 심사자들의 눈에 든 건 뭐니 뭐니 해도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없어도 반짝이겠다’ 이런 형식이었을 겁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시를 길게 쓸 필요가 ‘없겠다’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겁니다. 비단 제목이 반가사유상이어서가 아닙니다. 불교적 소재여서 그 아득함이 더 배가 되어 느껴졌을 뿐, ‘~이겠다’는 표현을 다른 소재에서도 핵심적인 의미로 녹여낼 수 있다면 분명 심사자의 눈에 띌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시를 쓸 때 ‘~이겠다’는 표현을 한번 써보세요. 솔직히 많은 걸 쓰려면 더 힘들잖아요. 이렇게 쓰면 심사자 입장에서 볼 땐, 쓸 말은 아주 많지만 그만 줄이겠으니 알아서 해석하시라는 도발로도 읽힐 겁니다. 그런 도발이 의외로 먹히는 거고요. 물론 이 작품은 다른 행에서도 최대한 말을 절제하려는 게 느껴집니다. 여백의 효과를 극대화한 셈이죠.
실제로 아래 링크 걸어둔 2020 불교신문 당선작을 보면 이를 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오늘은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있다’, ‘없다’, ‘~이겠다’라는 형식을 자신의 습작시에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티 나게 따라 하진 마시고요. 본인이 쓴 시에 적합하게 활용해 보세요. ‘~이겠다’에서 ‘이’를 빼고 ‘~겠다’로 바꿔 주도적으로 밀고 갈 수 있다면 전체적인 느낌이 확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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