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남자와 만나는 게
가성비 좋다고
금방 가버리니까
우리는 카페에 모여 누구 남친이 먼저 죽을지 내기를 한다 이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 눈가의 주름 개수가 연봉보다 중요했다 워터파크는 꿈도 꾼 적 없고 알 수 없는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계곡을 바라보며 능이백숙 허벅지 안쪽 살점을 뜯어 먹었다 날개는 오빠 앞접시에 올려뒀어 펄펄 날아가라고
오빠와 아빠를 번갈아 부르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되고 우린 정말 손만 잡고 잠이 들었다 불이 꺼지면 그의 적막한 정수리에서 태어나는 한방샴푸의 요정 기다란 지팡이를 흔들자 배꼽 틈으로 두 발 달린 올챙이들이 걸어들어온다 다들 이렇게 태어난 거지
인생을 네 컷으로 조각내주는 기계 안에서 오빠는 영정사진을 찍는다 하늘색 배경에 분홍 리본 머리띠를 쓰고 김치나 치즈 같은 단어를 옹알거리며 이십 년은 젊게 나온 것 같다는 말에 숨넘어갈 듯 웃었고
나는 웜톤이라 얼룩진 남자가 어울리고
인화동의 나이트클럽에서
가장 늙어 보이는 남자와 키스했다
* 전북 익산시 인화동의 나이트클럽
2025 제12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작
심사자의 평은 이렇습니다.
“간결한 언어에 담긴 풍자와 유머가 돋보이고 젊은 감각으로 현실을 재치 있게 풀어낸 작품으로 시적 완성도가 높아”
작품의 전반적인 어조는 가볍고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 깃든 냉소와 불안, 그리고 공허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네요. 사랑의 상품화라는 현 세태를 풍자하면서도 이조차 청춘 여성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략으로 비칩니다. 그렇기에 화자는 일인칭 ‘나’이지만, ‘우리는 카페에 모여’라는 시구를 통해 또래 여성들의 집단적 주체로 확장되는 거겠죠.
사실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블랙코미디적 장치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기에, 지나치게 무겁게 해석하기보다는 작품의 리듬과 감각을 즐기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심각한 주제를 가볍게 말할수록 현실의 비정함은 더 선명해진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겠기에 소개합니다.
‘적막한 정수리’로 남성의 노화를 상징하는 거라든가, ‘배꼽 틈으로 두 발 달린 올챙이들이 걸어들어온다’는 식으로 성과 출산을 비트는 방식, ‘인생을 네 컷으로 조각내주는 기계’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간단하게 해체될 수 있는지, 더불어 겉모습만 중시하는 이미지적인 세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설령 그것이 ‘영정사진’일지라도 말이죠.
관계 속의 연애와 욕망은 ‘가성비’로 설명되고, 특히 ‘누구 남친이 먼저 죽을지 내기를 한다’는 시구는 죽음조차 놀이가 되고, ‘눈가의 주름 개수가 연봉보다 중요’해지는 세계에서 젊음과 노화는 철저히 거래 조건으로 기능합니다. 초라한 풍경들도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워터파크 대신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계곡이라든가, 능이백숙의 허벅지 살점, 날개를 오빠의 앞접시에 올려두는 장면은 어딘가 비틀려 있죠.
낭만을 꿈꾸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한 현실을 자기 연민이나 체념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그려냅니다. 그런 점에서 ‘오빠’와 ‘아빠’가 뒤섞이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오빠는 애인이고 아빠는 보호자임에도 그 경계가 흐려지면서 관계의 권력성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익산시 인화동 나이트클럽에서 가장 늙어 보이는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은 생존하기 위한 화자의 선택이자 전략으로 읽히는 거겠죠.
다만, 아이러니와 풍자를 전면에 내세운 방식이어서 전통적인 서정시나 감각적인 현대시와는 결이 달라, 호불호가 갈릴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작품의 개성을 분명히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꼽자면 저는 제목인 ‘샴푸’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샴푸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거든요.
노화에 따른 냄새도 없애주고, 기름기도 없애주죠. 간단히 말해 현실은 시궁창인데 샴푸는 그러한 현실을 향기롭게 덮어줍니다. 특히나 ‘한방 샴푸’는 탈모나 두피 강화제 역할로 ‘적막한 정수리’와 연결됩니다. 이는 곧 젊은 여성 화자와 대비되는 늙은 남성을 상징하기엔 딱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단순히 자극적이거나 도발적인 작품이 아니라, 나이 든 남성과의 관계를 소재로 삼아, 청춘의 욕망과 불안이 어떻게 소비의 언어로 환원되는지를 냉소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