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마음 이야기 : 워킹맘의 비애

“선생님, 제가 지금 갈 수 없어요."

by 뽀롱마미

나는 결혼을 한 후 교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쌍둥이 엄마가 되어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낯선 용어를 익히고 수십 권의 책을 읽고 기록하며 일을 배웠다.

쌍둥이가 유치원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업무량을 해내야 하는 상황으로 머릿속과 마음은 분주하고 행동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우진이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우진이의 울음소리에 아침 준비를 하던 나는 다급하게 방으로 달려갔다.

“우진아, 왜 울어?”

하염없이 울고 있는 우진이를 안아주려는데 우진이의 온몸이 뜨거웠다. 체온계를 가져와 열을 재보니 38도였다. 해열제를 먹고 조금은 안정을 찾은 듯한 우진이에게 아침을 먹어보자고 말했다. 그러자 우진이는 옅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엄마가 먹여줘. 나 힘들어.”

따뜻한 국에 밥을 말아서 주면 목 넘김이 쉬울 거 같아 한 숟가락 입에 넣어 주었는데 갑자기 우진이가 구토를 했다.

아침 식사를 멈추고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 딸에게 이야기했다.

“보영아, 우진이가 아파서 병원 가야 하거든 그래서 오늘은 유치원에 혼자 가야 할 거 같은데...”

보영이는 두 입술을 삐죽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엄마, 나 혼자 유치원 가기 싫어. 나도 우진이처럼 엄마랑 집에 있을래.”

결국 나는 많이 아파하는 우진이를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어 보영이와의 대화를 멈추고 두 아이와 함께 소아청소년과로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청진기로 우진이의 장 소리와 폐 소리를 들으시고 카메라로 귀, 코, 입 안을 살펴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우진이 장염이네요. 로타바이러스 같아요. 일단 수액 맞고 며칠 지켜봅시다.”

우진이는 회복하는 과정에서 세 번의 고열, 삼일 동안의 복통에 밤낮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밤에는 아들의 병간호, 낮에는 혼자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딸의 보육으로 신랑과 나는 잠을 설치며 하루하루 정신적, 신체적 체력이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장염에 걸린 지 나흘 차. 우진이는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청소기처럼 흡입하기 시작했다.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아프기 전보다 밥을 더 잘 먹었다. 손바닥만 한 귤을 한 움큼 입 안으로 넣는 순간 아들의 환한 미소, 생기 있는 피부색, 맑은 음성이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아들의 잘 먹는 모습을 보고 내일은 드디어 쌍둥이들을 유치원에 보낼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날 아침. 딸의 표정이 좋지 않다. “엄마, 나 배 아파.”를 외치며 계속 누워있었다. 그 순간 나는 절망에 빠졌다. ‘이번에는 너니?’ 나의 의욕과 열정은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언제 공부하고 언제 일하지?’

딸은 다행히 심하지 않은 장염이다. 먹는 것만 조심하면 괜찮아진다고 한다. 아들 간호할 때보다 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무엇인가가 주르르 바닥에 흐르며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되는 느낌이 들었다.

몇 주 후 쌍둥이들이 감기에 걸려 또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런데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늘 오후까지 업무를 마무리해서 회사에 넘겨주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에 상사에게 자료를 늦게 보내드려야 할 거 같다는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하면서 어느새 나의 두 눈이 뿌옇게 변했다.

‘어떻게 말하지? 오늘 꼭 보내드려야 하는 중요한 자료인데...’

‘아이들도 빨리 데리러 가야 하는데... 어쩌지?’

결국 나는 상사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전화기 너머로 상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꽂혔다.

“이번에도 또 아이 핑계입니까?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언제까지 아이 핑계 댈 겁니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상사의 질타에 나의 마음은 더 작아져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일은 하긴 했어요? 아이가 아픈 게 맞나요?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혹시?”

나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상사의 말에 순간 나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며 대답했다.

“일은 거의 마무리 지었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약속된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요.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나는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할 뿐 더 이상 상사에게 나의 상황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결국 상사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됐고요 오늘 오후까지 꼭 서류 보내주세요.”

툭! 전화가 끊기자마자 나는 펑펑 울었다.

‘이제... 어쩌지?’

쌍둥이를 데리러 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훔치는 와중에 문득 팔 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교사 시절. 매일 작은 사고가 발생했었다. 그중에서 나를 제일 당황하게 했던 일은 아이들이 열이 나고 아플 때였다.

환절기 시기 감기가 유행했던 어느 늦가을. 영호가 갑작스레 열이 나기 시작했다. 순간 겁이 났다. 아픈 아이가 생기면 최대한 힘들지 않게 쉴 수 있도록 보육해야 했는데 상황이 녹록지는 않았다.

‘내가 잘 돌보지 못해 아이가 더 아프면 어쩌지?’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자신만의 놀이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는 그때. 영호가 갑자기 구토를 했다. 너무 놀란 나는 황급히 학부모님께 연락했다.

“어머니, 영호가 열이 많이 나고 구토해요.”

어머니께 전화하면 당연히 바로 아이를 데리러 오실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선생님, 제가 지금은 갈 수 없어요. 해열제 먹여주세요.”

어머니의 말에 당황한 나는 해열제를 먹이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다시 교실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아이가 아픈데 왜 데리러 못 오지?’

교실에서 놀이도 못 하고 계속 아파하는 영호를 보면서 안쓰러웠다. 그리고 학부모님의 이해되지 않은 행동이 나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교실로 돌아온 나는 누워있는 영호에게 안쓰러운 듯 이야기했다.

“영호야, 엄마가 지금 못 오시는데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어?”

영호는 가냘픈 한마디를 내뱉고 울기 시작했다.

“네...”

그런 영호의 모습에 더 마음이 아팠던 나는 이 모든 것이 영호의 엄마 탓이라는 듯 영호에게 말했다.

“영호야, 엄마가 빨리 안 와서 속상하지? 엄마 너무 하신다. 영호 많이 아픈데 빨리 데리러 안 오시고...”


쌍둥이 부모가 된 지금의 나는 이제야 영호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거 같았다. 그리고 문득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어머니의 마음과 상황을 조금만 더 이해했었다면 좋았을 텐데...’

바로 데리러 오지 못하는 영호 어머니에 대한 원망보다는 아픈 영호가 조금이라도 힘이 날 수 있는 말을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영호에게 그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영호야, 엄마가 지금은 바빠서 못 오시지만 아마 엄마도 빨리 영호 보러 오고 싶으실 거야.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영호는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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